9. 왜 하필 헌바카라방

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by서주양

스산한 계절의 끝자락은 입춘을 향해가건만, 나는 어둡고 좁은 방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얼음주머니를 비비고 있다. 선풍기를 틀어놓고 두꺼운 겨울 이불을 덮고 있다. 이게 무슨 볼썽사나운 광경인가 싶겠지만, 지금 나는 대포주사의 부작용을 겪고 있다. 대포주사 부작용으로는 발한, 불면, 피로감, 우울, 안면 홍조 등이 있다. 얼굴은 뜨거운 불을 쐬고 있는 것 같은데, 등은 시리다. 순간순간 숨이 턱 막히고 숨을 쉴 수가 없다. 생리를 중단하는 대포주사를 맞은 지 두 달하고도 삼 일째, 한 달 동안은 그저 천국이었다. 월경 없는 삶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자유롭고 쌈빡함 그 자체였다.

정확하게 두 번째 생리를 건너뛰고 폐경 증상이 시작되었다. 숨이 턱 막히는 호흡곤란에 얼마나 당황했던지. 얼굴에 숯불을 끼얹는 것 같은 열감은 또 어떻고. 앉으나 서나 무릎 통증, 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솟구치는 짜증과 분노. 가만히 바카라을 보다가도 엄습하는 두려움. 당장이라도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공포심. 방금 전까지 자지러지게 웃다가도 '앞으로 어떻게 살지?' 밑도 끝도 없이 찾아오는 침울함. '그냥 죽어버릴까?' 끝을 상상하게 하는 북받치는 우울함.


아....... 내 나이 서른일곱, 누구는 내일모레 애를 낳는다는데 나는 갱년기와 씨름을 하고 있다. 삼개월간 나의 자궁을 잠자는 뱃속의 공주님으로 만들어놓는 동안, 내 몸은 대포 주사의 부작용을 겪고 있다. 호르몬을 돌게 하려면 자순이가 힘이 들고. 자순이가 편하면 호르몬이 지랄을 한다. 어찌 되었든 나는 아픈 운명을 타고났나 보다. 이런 식에 자기 연민이 뇌 속에 살포시 발을 담그는 순간, 폭풍 같은 감정들이 한도 끝도 없이 쳐들어온다. 지금 막지 않으면 태어난 자체를 후회하며, 한강다리 난간을 붙들고 서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나 정말 이렇게 감정적인 사람이 아닌데.......’


두꺼운 솜이불을 목까지 덮고는 먼지 낀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는 모양이 구슬프게 처량 맞아 실소가 터져 나온다. 이대로 가다가는 머리에 꽃 달고 63빌딩에서 번지점프 할 것 같다. 그래도 호르몬 불균형과 응급실행 생리통 중에 고르라면 과감 없이 월경 없는 폐경상태의 삶을 선택하리. 다시 근거 없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재빨리 이불을 걷어차고 선풍기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때, 휴대폰에서 ‘띠링’ 하고 문자 음이 울렸다.


“아이씨, 미치겠네!”


입에서 자동으로 욕이 튀어나온다. 요즘 나는 대포주사 부작용으로 휘청이고 있는 와중에, 문자 테러까지 당하고 있다. 정말이지, 한강다리로 다이빙하고 싶은 심정이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욕쟁이 할망구도 울고 갈 만큼 상스러운 문자들을 읽어 내려갔다.


[[OO은행] [최종고지] 법적 조치 절차 착수 안내 박현조 고객님, 귀하의 카드 대금 연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본 채권은 법적 집행 절차로 이관될 예정입니다. 본 문자 수신 즉시 미납금을 변제하지 않을 경우, 가압류 및 급여 압류 등의 법적 절차가 진행될 수 있음을 엄중히 통지합니다. 즉시 입금 및 채권 담당자 연락 요망 (담당자: 010-XXXX-XXXX)]


가슴이 네 갈래로 찢기는 듯 고통스럽다. 문자 한 줄, 한 줄이 독처럼 스며들어 심장을 파고든다. 급한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할까 고민해 보지만, 도움을 요청했다가는 사채업자보다 더 험한 꼴을 모친을 통해 보게 될 것이다. 몸서리를 치며 휴대폰을 힘껏 내던지고는, 망망대해에 홀로 조난당한 선원처럼 허공을 향해 목 놓아 울부짖고 말았다.


“엄마아아아아! 아빠아아아아!”


내가 헌바카라방을 소리소문 없이 열고 부모님에게 보여줬을 때, 엄마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건어물 가게로 원위치시키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했다. 그렇지만 헌바카라방이 포기가 되지 않았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부득부득 고집을 부려 만든 나의 요새. 가끔 희귀한 절판 본을 종이 값만 받고 얻을 수 있는 보물섬. 엄마는 늘 말한다.


- 헌바카라방으로 밥은 먹고살겠니?


그럼 나는 나름의 철학을 온 힘을 다해 외친다.

- 어찌 인간이 밥으로만 살리오.


헌바카라방의 첫 달 순수익은 이십만 원이었다. 천 원짜리 시집 다섯 권, 소설 몇 권, 공무원 서적 몇 권. 그나마도 베스트셀러 소설 두 묶음을 가져온 여대생에게 바카라값을 돌려주며 도로 사들였으니, 결국 마이너스 팔만 원 되시겠다. 이러니 내가 양파, 마늘을 하루 종일 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언젠가 난로 앞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서 경순이가 물었다.


- 왜 하필 헌바카라방이 하고 싶었어?


왜 하필, 헌바카라방이 하고 싶었냐고? 음.... 단순하게는 바카라이 좋고 그나마 싫증 내지 않고 꾸준히 하던 것이 글 쓰는 거라, 들어간 문예창작과. 그러나 대학은 딱히 재밌지가 않았다. 비싼 등록금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인 것 같았다. 한학기도 채 못 마치고 자퇴를 했다.


사실 그건 핑계고, 날고뛰는 문학도들 사이에서 마치 유치원생이 된 것 같은 자괴감이 들어 중도 포기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하여간, 대학을 중퇴한 나는 학습지 회사에서 2개월, 보험회사 4개월, 콜 센터에서 6개월, 통신사 안내데스크에서 1년. 화장품 클레임부서에서 2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부모님의 도움으로 슬롯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헌바카라방을 열게 된 것이다.


돌아보면 참, 숨 막히는 세상이었다. 특히 생리통 때문에 월례행사처럼 회사를 빠지는 온라인 게임인은 점점 무리로부터 도태되기 마련이었다. 아픈 것을 이해받는 건 딱 학생신분까지였다. 슬롯인은 아픈 것도 무능력이라 비판받는다. 불성실한 인간으로 낙인찍힌다. 빠르고 정확한 세상은 건강한 신체를 자기 관리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반박할 여지가 없다. 나 같아도 한 달에 한 번씩 아프다고 골골대는 직원은 원치 않는다. 회사와 세상을 향해 서운한 마음이 든다거나 탓을 해본 적은 없다. 아프고 병든 내 자궁을 원망했을 뿐. 어떨 때는 부모님도 나의 월경통을 질려했는데, 회사는 더 했겠지.


그래서인지 나는 세상에서 똑바로 서 있기가 참 힘들었다.


한 달에 한 번일지라도, 그 폭풍을 견디고 나면 내 주변은 온통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생리통이라는 태풍이 휩쓸고 간 잔해 속에서 아무리 수습을 해보려 애를 써 봐도, 파도에 밀려오는 쓰레기는 끝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땡땡 거리에 있는 뿌리서점으로 몸을 숨겼다. 출입문부터 그득하게 쌓여있는 바카라들이 화분에 심겨있는 꽃들처럼 길을 내어주었다. 바카라 길을 지나 지하로 뻗어있는 계단을 내려가면 종이 냄새 섞인 시원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 그간 고생 많았어. 바카라 품에 안겨 편히 쉬렴.


수천 권의 헌바카라들이 토닥토닥 위로를 전하며 쪼그라든 가슴을 어루만져 줬다. 그렇게 원 없이 헌바카라에 파묻혀 꽁꽁 숨어 있다 보면, 어깨가 좀 펴지는 것 같았다.


- 또 여기 숨어 있어? 커피 줄까?


늘 나를 찾아내는 헌바카라방 사장님의 다방커피 맛은 예술이었다. 커피 하나, 크림 하나, 설탕 둘. 사장님은 한여름에도 따뜻한 믹스커피를 내주셨다. 오래된 종이 냄새와 커피 향기는 더운 여름이든 추운 겨울이든, 선선한 가을이든 따사로운 봄이든 다 어울렸다. 동경했다. 따스하고 아늑한 헌바카라방을, 인자하고 여유 있던 뿌리서점 사장님을. 언젠가는 나도 헌바카라으로 꽃길을 만들어서 바카라 더미에 숨어 있는 이에게 달콤한 커피를 건네줘야지. 밥 먹었냐고,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는 말도 해야지. 그런 예쁜 다짐들을 상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뿌리서점이 사라졌다. 낡은 건물 지하에 박혀 있는 서점 주변으로 고층 빌딩과 대형 백화점이 둘러싸고 있었어도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키던 나의 피난처가 사라진 것이다. 그때부터 상상만 하던 헌바카라방 운영에 대한 꿈을 현실로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옥탑방에 차리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헌데 부모님이 시골로 내려가시면서 건어물 가게를 물려받았기에, 제대로 된 터에서 시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부모님의 피와 땀으로 일군 건어물 가게를 치우고 모두가 만류하는 헌바카라방을 차리게 된 역사가 되시겠다. 그러니 손님 하나 없어도, 재정이 쪼들려도, 내가 헌바카라방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하리라 믿는다.


- 누가 뭐래도 멋있다. 나에게도 현조바카라방은 피난처 같아.


경순이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말을 참 예쁘게 한다. 경순이 칭찬에 으쓱해진 나는 약간의 힘을 얻어 온라인몰을 만들었다. 아니, 만들 예정이다.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지, 공부를 해서 직접 만들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 현조야, 너의 피난처였던 뿌리서점 얘기를 듣고 생각한 건데, 현조서점이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처가 되면 좋을 것 같아. 그냥, 왜, 지나가다가도 불쑥 들어오고 싶은 그런 곳 말이야.


꽤 쏠쏠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경순이의 배는 제법 임산부 티가 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임산부답지 않게 팔팔 날아다니는 그녀로 인해 이층 살림집은 늘 반짝반짝 윤이 나고, 바카라방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이뿐 아니라 아침잠이 많은 나를 대신해 가게 문을 열어주는 그녀는 시계보다 정확하게 일어나 오픈을 준비한다.


- 응, 사실 나도 그러고 싶어서 바카라방을 연 건데, 자순이한테 신경 쓰고, 생활비에 신경 쓰고 그러느라 자꾸 미루게 되네....


경순이로 인해 버겁게 느껴지던 일들과 상상으로만 했던 것들을 현실로 옮기는 데 힘을 얻고 있다. 경순이와의 동거가 마냥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사실 처음에는 조용한 일상에 파동을 일으키는 것 같은 경순에게 짜증이 난 것은 맞지만, 요즘은 바카라방 문을 닫고 저녁을 먹고 드라마를 같이 보는 소소한 일상들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경순이와 평생 같이 살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경순이와의 동거는 장단점이 뚜렷하다.


- 어머 부동산 언니! 어디가? 들어와, 도시락 싸왔는데, 좀 거들고 가.

- 어머 진짜? 안그래도 컵라면으로 때우려고 했는데.

- 컵라면은 무슨? 정육점 사장님도 불러와. 반찬가게 언니도 오라고 하고.

- 우리 경순 씨는 정말 정이 넘친다니까. 누구랑은 다르게 말이야.


부동산 언니가 말하는 그 누구는 나 박현조를 말한다.


- 현조 쟤는 까칠해서 바카라방에 들어오기가 무서워. 그러니까 장사가 안되지....


나의 소중한 바카라방에서 서부 이촌동 자영업자들이 한데 모여, 박현조를 씹어댄다. 그 꼴을 보고 기가 차서 허 여사에게 고하니,


- 파리만 날리는 가게보다는 사람 북적이는 것이 훨씬 낫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데, 엄마 팔은 얼마나 유연한지, 180도 밖으로 꺾어진다. 모두들 이경순을 친애한다. 경순의 흠을 잡는 나만 나쁜 년이 되어 버린다.


- 경순 씨가 현조대신 바카라방 운영해 봐! 망한 바카라방 좀 살려봐!


망할 여편네들, 신경 거슬리게 하는 데는 뭐가 있다.


- 어머! 현조야 너 진짜 시집 안 가니?

부동산 양 언니, 지도 시집 안 갔다. 내일모레 오십이다.


- 어머! 현조야! 바카라방 한다더니, 양파만 까고 앉았니?

부업거리 던져주는 반찬가게 예영 엄마, 제 딸은 백수다.


- 어머! 현조야! 혼자 살 거면, 살이라도 빼야지, 너 어째 살이 점점 오른다?

정육점 윤기엄마, 지는 백 키로다.


정말이지 징글징글한 이촌동 확성기 삼총사, 동네에서 일어나는 모든 말에 발을 만드는 소문의 통로들이다. 이제는 경순이까지 합세해서 사총사가 되었다. 저럴 때는 이경순을 확 내쫓아버리고 싶다. 이경순과 아이를 위해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서울에 준비해 놓는다 약속한 경순이 신랑은 깜깜무소식이다. 차라리 경순이 신랑이 와서 데리고 가면 좋으련만..... 혹시 경순이 고것이 거짓말을 한 건가? 엄마 말대로 사기꾼한테 당하고 오도 갈데없는 건 아닐까? 혼자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은행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저만치 내동댕이쳐진 휴대폰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뒤집어진 채 바닥에 널브러진 휴대폰을 집어 들자, 액정화면 위로 이경순이 요란하게 반짝이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아! 왜! 깜짝 놀랐잖아!”

“현조 무슨 일 있어?”

“아 왜! 전화했냐고!”

“북엇국이랑 콩나물 밥 해놨는데, 먹었어?”

“입맛 없어.”

“그럴수록 밥 먹고 한강 걸으면서 햇볕 좀 쬐면 어떨까 싶은데.”

“귀찮아.”

“그러지 마. 어머니 걱정하신다. 너 좀 챙겨달라고 신신당부하셨어. 그리고 나 산부인과 4시까지 가니까. 3시에는 내려와야 해. 그리고 손님이 윤동주 시집을 찾는데, 여기 여러 권 있는데. 내용은 같은 거야?”

“당연한 걸 왜 물어?”


수화기 너머 경순이가 멋쩍게 웃는다.


“밥 먹고 내려갈게. 우리 동주오빠가 얼마나 멋진 분인지 한수 가르쳐주마.”

“끼야아~~ 좋아!”


탄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경순이의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뿌리서점에 숨어있을 때마다 나를 찾아낸 사장님처럼, 경순이가 나를 찾아낸 걸까? 그럼 나는 이젠 그만 숨고 나가야 하나? 왠지 더 이상 폭풍 가운데 혼자 있는 것만 같은 쓸쓸함 같은 건, 파도에 쓸려가 깊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떠밀려온 수많은 쓰레기들을 조용히 치워주는 누군가가 경순이 일 것만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왠지 귀찮으면서도 좋은 감정들이 어지러운 생각 속에 혼돈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싫지 않은 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몸을 막고 있는 두꺼운 겨울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시 한 구절 읊조린다.


“나의 봄도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흐르려나.”



*

경순이가 만들어 놓은 콩나물밥에 양념간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어김없이 바카라방은 동네 아줌마들의 장터가 되어 있다. 무표정하게 들어가, 바카라방 앞이 지저분하다며 투덜거렸다.


“현조야! 종잇값은 나오니?” 이촌동 확성기 2 짱, 정육점 사장이 호들갑을 떤다.

“얘, 현조야! 바카라방을 하려면 제대로 바카라방을 하지, 지저분하게 헌바카라방이 뭐니? 차라리 카페를 해봐.”

확성기 3 짱, 부동산 양 언니가 내 옆으로 슬쩍 다가와 속삭였다.


"현조야, 안 되는 걸 빨리 포기하는 것도 실력이다?"

확성기 1 짱, 예영 엄마가 주걱턱에 손가락을 괴고 말했다. 아침부터 마늘을 먹었나, 입 냄새가 고약하다.


“경순 씨, 현조 좀 말려봐!” “경순 씨, 음식도 잘하고 커피도 잘 타는데, 헌바카라방 밀고 경순 씨가 장사해 봐.”

“경순 씨, 초기 자본이 없으면 재료값이 많이 들지 않는 장사를 해야 해.”


부글부글 속이 끓어오른다. 떠돌이 임산부와 뚱뚱한 정육점 사장, 수다쟁이 반찬가게와 자아도취 부동산이 차례대로 떠들어댄다. 저 꼴 보기 싫은 오지랖 아줌마들이 내가 빚더미에 앉은 것까지 알게 되면 신이 나서 나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회를 쳐 먹을 것이다.

차일피일 미루던 온라인 서점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서점 한쪽에서 커피나 디저트 같은 것을 만들어볼까? 커피 머신은 무슨 돈으로 사고? 다 돈이다, 돈! 스트레스 때문에 호흡이 가빠온다. 나비 호흡법! 나비야, 나비야, 어서 오련! 눈을 감고 천천히 손을 올렸다 내리며 박자에 맞춰 호흡을 고른다.


“현조, 뭐 하니?” “허 여사 딸은 가만 보면 특이하다니까?” “가만 봐야 특이해? 그냥 봐도 특이하지?”

확성기 삼총사가 줄줄이 소시지 같은 수다로 공격하지만,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숫자를 세며 심호흡을 했다.


"현조야, 또 숨이 안 쉬어져?"

경순이가 뒤뚱거리며 다가와 팔을 잡았다.


"괜찮아? 응?" "경순 씨 냅둬. 현조 쟤는 어릴 때부터 이상했어. 우리는 이만 가볼게."

확성기 삼총사가 나가면서 울리는 종소리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현조야?”

"아, 왜!"

엄한 이경순에게 고함을 빽 질렀다.


"어머! 애 떨어질 뻔..."

이경순이 좁은 어깨를 움츠리다 배시시 웃었다.


“현조야... 언제까지 빌붙는 것도 미안하고, 오늘부터 생활비를 좀 내려고.”

갈매기처럼 휘어진 내 눈썹이 꿈틀꿈틀 제자리로 돌아간다.


"생, 생활비?"

하늘천으로 뻗었던 팔을 내리며 물었다.


"응. 우선 은행에서 독촉장 온 거 봤어. 이번 달 갚을 돈은 내가 줄게." "진짜? 꽤 되는데..." "아기 낳으면 쓰려고 모아 둔 돈 있어. 그리고 애 아빠가 준 돈도 좀 있고."


모아둔 돈이 있었다고? 참내, 노숙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지금까지 생활비 한 푼 안 내놓더니. 모아둔 돈이 있었다고? 정말 이경순 저거 여우구렁이었잖아? 속으로 골을 내며 미간을 좁혔다. 안도하면서 동시에 뭔가 기분이 나쁘다.


“현조야! 그리고 우리 손님 끌 아이디어를 좀 생각해 보자.”

"뭔 아이디어야... 이 동네 사람들이 원체 교양을 안 쌓는 건데..."

"내가 생각이 있어. 나도 이 헌바카라방 참 좋아! 우리 이 가게 살려보자! 힘 좀 내, 박현조! 파이팅!”


파이팅은 얼어 죽을.... 얄미운 이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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