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누구나 레몬사탕

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by서주양

“3월에 웬 함박눈?”

“겨울이 가기 싫은가 봐.”


한 손에는 김이 나는 고구마를 또 다른 손에는 윤동주 시집을 펼쳐 든 경순이가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제법 시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조만간 시인되겠어?”


내 빈정거림에도 아랑곳없이 시집에 입이라도 맞출 기세로 얼굴을 들이밀던 경순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윤동주 시 중에 제일 잘 나가는 건 뭐야?”

“잘 나가기는, 무슨 집 나간 며느리야?”


나는 요즘 경순이가 하는 작은 말 한마디에도 못마땅해 핏대를 세우곤 한다. 경순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냥 짜증이 솟구치는데, 그 짜증의 출구 앞에 서 있는 것이 하필 경순이인 것이다.


“아하하하, 집 나간 며느리?”


베알도 없는 경순이는 나의 모든 짜증을 받아낸다. 마치 스펀지처럼 나의 감정을 쫙쫙 빨아들이는 느낌이다. 가끔은 경순이를 존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액받이 무녀처럼 여기기도 한다. 나도 이런 내가 싫다.


"에휴…. 대표시라고 말하면 되고, 대표 시로는 '서시'도 있고, '별 헤는 밤', '자화상', 많지 뭐……."

"현조는 어떤 시를 가장 좋아해?"


인내심도, 이해심도, 호기심도 참 많은 이경순이다. 묵묵부답으로 경순을 무시한 채, 동그라미가 표시된 달력을 응시했다.


“응? 현조는 어떤 시를 좋아해? 응? 응?”

"귀찮아! 정말!"

나는 또 짜증을 참지 못하고 경순을 향해 화살을 쏘아댄다.


"미안....."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는 경순이를 노려보며, 나는 복잡한 머릿속에서 제일 큰 문제를 끄집어냈다. '대포 주사'를 맞은 지 3개월이 다 되어간다. 다음 주는 병원에 가야 한다. 주사를 맞고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 담당 교수에게 말해야 한다. 부작용이 심각하다면 주사를 더는 맞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남은 방법은 자궁 적출뿐이다. 그건 안 된다. 아직 차가운 수술대 위에 오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아니면 혹시, 예상치도 못한 기적이 일어나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교수를 만나기 전 초음파 검사를 할 텐데, 주사의 부작용은 있었으나 자궁의 혹들이 모두 사라져 있는 그런 기적. 그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현조는 작가잖아. 어떤 시를 좋아하는지, 궁금해서...”

“나 작가 아닌데?”

“현조는 글 쓰는 대학 들어갔고, 바카라도 많이 보고, 글도 쓰는 거 봤는데?”

“글 쓰는 대학은 중퇴했고. 바카라 많이 본다고 작가 아니고. 글은 안 쓰거든요? 자순이한테 편지 쓰는 거거든요?”

“그럼, 자순이한테 쓰는 편지 모아서 바카라으로 내자!”

"바카라을 내고 싶다고 내는 것이 아니란다..."

"왜? 바카라으로 만들어서 우리 바카라방에서 팔아보자!"


보이는가? 내 이마의 시퍼런 심줄이 숭어처럼 튀어 오르는 것을.


“경순아... 제발... 나 힘들다.”


이러면, 대충 말 걸지 말라는 신호로 알아듣고 입을 좀 다물겠지?


“나는 말이야, 길이 참 좋아.”


저 저 저 눈치는 밥 말아먹은 계집애. 하아, 혼자 있고 싶다. 격렬히 혼자 있고 싶다. 나의 바카라방 안에서 좋아하는 노래 들으면서 혼자 있고 싶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무 말도 안 듣고. 그저 혼자 있고 싶다.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르릅니다. 나도 말이야, 한없이 먼 길을 걷다가 슬리퍼가 끓어지도록 걷고 또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어. 하늘에 별이 가득해서 어두운 밤에 가로등 하나 없었지만 온통 환했어.”


'경순아. 진짜 안 궁금하다. 나 진심으로 혼자 있고 싶어. 제발 그만 좀 말해...'

고구마의 껍질을 벗기며 짧은 한숨을 폭 내쉬자, 경순이가 빤히 쳐다본다.


“병원 가는 거 때문에 마음이 안 좋지? 현조야 괜찮아. 좋아졌을 거야. 혹도 사라지고, 수술 안 해도 된다는 말 들을 거야. 그러니까, 마음을 좀 편히 가져.”


경순의 위로는 한없이 가볍고 진정성이 없게 들린다.


“마음이 기계니? 쉽게 먹는다고 마음대로 먹어지게?”


만만한 콩떡 같은 경순에게 습관처럼 쏘아붙이고는 금세 미안해져서 딴청을 부리듯 창밖을 내다보았다. 곧 봄이 온다는데, 어제는 향기로운 흙내음도 풍겼었는데, 별안간 눈이 내린다. 그것도 펑펑 쏟아지는 굵고 진한 함박눈이.

온라인 게임 다닐 때는 느껴보지 못할, 화요일 오후 4시의 평안함. 옆에 이경순만 없으면 완벽한 평온을 누릴 수 있을 텐데. 대체 경순이 남편은 경순이를 언제 찾으러 오는 걸까?


"현조야 우리 주말에 명동 가자."

"사람 많아."

"사람 구경하는 거지 뭐."

"너 임산부야. 그리고 난 집에서 혼자 있고 싶어."

"맨날 집에 혼자 있으면서...."


도끼눈으로 이경순을 쏘아보았다. 시집 끄트머리를 살짝 접는 이경순이 어깨를 웅크린다. 지근지근 잡초를 밟다가도 잡초가 시들면, 물을 주고 싶어진다.


“그럼 주말에 가던가.”


못 이긴 척, 경순이 청을 들어주자, 동산처럼 배가 볼록한 경순이가 발을 동동 굴린다.


"우리 옷 구경도 하고 칼국수 사 먹자. 부동산 언니가 그러는데 명동에 유명한 칼국수집이 있대."


두 볼까지 발그레해져 신이 난 경순을 찬찬히 뜯어보는데, 여리여리 코스모스 같은 것이 눈길이 가긴 한다.

순간, 불룩하게 나온 경순이 배가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배와 나온 모양새는 비슷한 것 같은데, 경순이 배에는 생명이 들었고 내 배에는 지방과 혹만 들었구나. 아무래도 내 안의 '자순이' 이것이, 이경순의 건강한 자궁을 질투하는 것 같다. 자궁은 생리하는 여자 옆에 있으면 질투를 해서 다음 날 생리를 해버린다. 그래서 여고생 교실에 생리가 터진 여학생이 있으면 어김없이 다음 날 수십 명이 생리를 따라 한다. 여학생들은 농담처럼 이런 말을 한다.


"생리 옮으니까 내 옆에 오지 마!"


그래서 나는 내 자궁에 '자돌이'가 아니라 '자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성차별 의도는 아니다. 왠지 남성보다는 여성이 질투가 더 많을 것 같아서 그랬다. 물론 이 말을 들은 전 세계의 성 평등을 외치는 여자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경순이가 나 보다 인물이 좀 나아서도. 장사실력이 좋아서도. 인간관계가 좋아서도. 그런 유치한 이유로 미묘한 감정을 품게 된 것은 아니란 말이지? 그렇다 범인은 바로 자순이 고년이다.


“현조야, 이 화목난로는 아버님이 설치하셨어?”


경순이가 난로에 손을 쫙 펼치면서 물었다.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싫은 내색 한 번 없는 경순이가 갑자기 짠하게 느껴진다. 박현조 마음은 사춘기 소녀보다 더 변덕스럽다. 아니! 이건 모두 자순이 때문이다.


“화목난로에 둘러앉아서 라면도 끓여 먹고, 고구마도 구워 먹고. 겨울에는 보리차 끓여 먹고. 근데 사실 화목난로를 만든 건, 예전 건어물 장사 했을 때 입구가 뻥 뚫려 있었거든.”


못되게 구는 것이 내심 미안해서, 장황한 수다로 죄바카라감을 덮는다.


"냉동실에 가래떡 있는 거, 난로에 구워 먹을까?"

"그래! 조청에 찍어 먹으면 맛있지!"

"화목난로가 여러모로 쓸모가 많어... 낭만도 있고. 예전에 가게 안쪽에 들마루 만들어서 전기장판 깔아놨거든, 이불 덮고 엄마 아빠 장사하는 거 구경하고 그랬어. 너무 추워지면 입구에 비닐을 쳤어. 비닐 보온력 무시 못해, 엄청 따뜻해.”

“그래? 그럼 우리도 비닐 칠까?”

“지금은 문을 달았잖니? 안 보이니?”


부모님이 건물이 생겨 1층 상가에서 장사를 하기 전에는 늘 집에 혼자 있었다. 청소 일을 하셨던 부모님은 새벽에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오곤 했다.

헌데 건어물 장사를 시작한 뒤로는 늘 그 자리에 계셨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면, 건어물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등대처럼 반짝였고, 그 안에는 "밥 먹었냐"라고 묻는 부모님이 있었다. 그리고 화목난로 위에는 늘 달라지는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팔다 남은 마른오징어를 넣은 이상한 된장찌개도 그렇게 맛이 있었다.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크고 작은 파도에 떠밀려 곤죽이 되어 돌아와도, 내가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등대처럼 그 자리에서 나를 맞아주는 부모님이 건어물 가게에 계셨기 때문이다.

새삼, 건물을 물려주고 시골로 내려가신 부모님에게 미안해진다. 독립을 하게 된 것이 건물을 물려받은 것이, 내 마음에도 건어물을 접고 바카라방을 연 것이, 그저 신나기만 했었는데. 갑자기 외롭고 쓸쓸하고 무서워진다. 또 길을 잃은 느낌이다.


"경순아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그럼 잘하고 있지."

"뭘 생각도 안 해보고 대답을 하냐?"

"현조가 가는 길은,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봐도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을 거야."


경순이의 말에 허를 찔린 사람처럼 넋을 잃었다. 가끔은 내가 엄청 무시하고 막 대하는 경순이가 천재는 아닐까 싶다.


“나는...."

"응? 너는 뭐? 현조야?"

"나는...."

"나는 신경림 시인에 가난한 사랑 노래를 좋아해."

"제목이 슬프다.."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시인이 가난했던 노동자 부부의 결혼식 축사로 읊은 시였데, 가난은 사람을 아프게 하지만, 깊게도 만드나 봐. 시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어."

“와 역시 현조는 다르다. 시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도 하는구나.”

“너도 길을 읽으면서 생각했잖아.”

“그런가... 나 그 시 읽어 보고 싶어.”

“찾아 줄게.”


시집만 모아 놓은 바카라장으로 가, 찾아 주려는데 경순이가 고구마를 한입 베어 물고는 오물오물 부지런히 턱 근육을 움직이다가 꿀떡 넘긴다. 급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보다. 아무래도 내 기분이 좋을 때, 하고픈 말들을 몰아하려는 심산이다. 평소는 짜증이 났을 건데, 지금은 좀 짠하다. 아무래도 경순을 향한 짜증을 좀 줄여야겠다.


“여기는 해가 참 잘 들어.”

“건어물 장사 할 때는 그게 말썽이었는데.”

“왜?”

“건어물 해 받으면 누렇게 변하거든.”

“아....... 까다롭다. 물고기들. 참 현조야 내가 다방에서도 일했다고 말했나?”

“한 일억 번쯤?”


스무 살, 박현조가 노량진에서 재수입시를 준비할 때 스무 살, 이경순은 다방에서 일했다고 한다.


“여름에는 차가운 오미자차가 최고 인기였는데, 여름에 바카라방손님들 오미자차 줄까? 얼음 동동 띄워서.”

"뭐 좋지. 손님만 많이 온다면야.."


경순이가 흐뭇하게 씨익, 웃는다.


“다방에서 일했으면 힘든 것도 많았겠다.”

“아니야. 좋았어. 내 사랑을 거기서 만났거든."

"정말? 지금 애기 아빠를?"

"아니! 지금 애기 아빠는 세 번째!"

"헐....."

"내 진짜 사랑이야.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 사랑할 사람은 다방에서 만난 그 사람뿐이야.”

"세 번 사랑했네?"

"응! 현조 사랑은?"

"나는 뭐..... 없어, 그딴 거."

"사랑은 그딴 거 아닌데..."

"그게 뭐 별거라고..."


쓸씁해지는 내 표정이 심상치 않자, 경순이가 웬일로 입을 다문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무는 이경순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요즘 좀 까칠하지? 아무래도 대포주사 부작용 때문인 것 같아, 그 주사가 생리를 멈추게 하면서 갱년기 증상을 나오게 하거든.”


경순이가 소맷귀로 눈물을 쓰윽 훔치고는 입을 열었다.


"너 울어?"


갑작스러운 경순이 눈물에 당황스러워 입만 벙긋거렸다.


“내가 더 미안해. 뭐라도 해서 도움이 되고 싶었어. 예전에 말했지? 열두 살에 섬에 팔려가서 작부 집에서 주방장 했었다고. 작부 아줌마가 자기보다 내가 요리를 더 잘한다고, 가끔 칭찬해주곤 했어. 그다음엔 다방이었는데, 거기선 음식 잘하는 건 소용이 없더라고. 그래서 커피를 기가 막히게 타게 됐지, 뭐야?”


경순아... 경순아.... 이경순아! 또 삼천포로 가는 거니? 신경림 시집을 찾다 말고, 일인용 소파 위로 펄썩 주저앉았다. 기가 빠져서, 어지럽다.


“그래서 말이야, 다방 언니가 경순이가 뭐냐고, 새련이 어떠냐는 거야? 그래서 내가 은조라고 하겠다고 했지. 내가 왜 은조로 이름 지었는지, 말했지?”

“어...... 일억이천 번쯤?”


가만 보면, 엄마랑 이경순은 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마구잡이로 떠들어대는 경순을 보면서, 왜 저 아이를 내치지 않고 옆에 데리고 있는지 알 것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상주로 내려가니, 허 여사 도플갱어가 나타났다.


“목련다방 에이스가 나였어. 인기가 제일 많아서 배달도 제일 많이 다녔다? 아 맞다. 나 오토바이 잘 타는데! 오토바이 살까? 현조 뒤에 태우고 바다 갈까?”

“그래... 네 똥 굵다.”


이경순이 푼수같이 웃으며 뒤로 몸을 꺾자, 볼록 나온 배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야야, 배! 배 조심해.”


저 아이는 아프고 어쩌면 부끄러울 수도 있는 과거를 어쩜 저렇게 툭툭 내뱉을까? 자존감이 엄청나 저래 용기가 있는 건지, 아니면 좀 모자라 그런 건지. 그도 아니면, 그렇게 해서라도 슬픔을 털어내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내가 막말하면 기분 나쁘지?”

“현조가 막말을 언제 했어?”

“막말을 모르는 거야?”

“현조야말로 정말 막말을 모르는구나?”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바카라을 덮는 이경순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박현조 한참 어리구먼, 이 온실 속 화초 같으니라고.’ 뭔가 이런 오만한 기색이 보여 묘하게 기분이 상하려 든다. 입술을 뾰족이 내밀고 거북한 표정을 짓자, 우월감을 드러내려던 경순이가 금세 깨갱하며 꼬리를 내린다. 그녀와의 동거가 길어지면서 이런 묘한 기싸움도 종종 벌어진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던 그때, 짤랑 종소리와 함께 바카라방 문이 열렸다. ‘손님이다!’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어서 오세요!”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수줍은 얼굴 하나가 배꼼 고개를 내밀었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린 파마머리에 일흔은 족히 되어 보이는 노년의 여성이 양손 가득 보따리를 들고 서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그 맑은 표정 때문에 앳된 소녀로 착각할 뻔했다.


“실례합니다. 혹시 바카라도 받으시나요?”

“그럼요!”


들고 있던 고구마를 냉큼 경순이 손에 쥐어주고, 문 앞에서 주춤거리던 노인에게 껑충 다가섰다.


‘이경순, 잘 보거라! 마음의 양식을 파는 교양 있는 박사장이올시다!’


나는 바카라을 팔 때보다 바카라이 들어올 때가 더 좋다. 오늘은 또 어떤 보물이 나를 기쁘게 해 줄까? 두근두근,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노인이 내려놓은 보자기를 풀기 위해 쪼그려 앉았다. 오! 보자기까지 황금색이다.


“동화바카라이 이렇게나 많아요? 거의 새건 대요?”

“폐지로 내놓으려다가 아까워서요, 손자 같은 아이들한테 갔으면 싶어서요.”

“다 신간이네요. 신간은 꽤 쳐드리거든요.”

“아니요. 돈은 안 주셔도 돼요. 정말이에요.”


어르신은 손을 내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은테안경 너머, 우물처럼 맑고 깊은 눈동자가 잠시 일렁이더니. 별안간, 투명한 물 한 줄기가 늙은 뺨 위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깍지 낀 손을 풀었다 꼬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온갖 호들갑을 다 떨었다. 조금 전, 이경순에 눈물과 비등비등한 당황스러움이다.


‘야! 이경순! 뭐 해? 투입! 투입!’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려던 그때였다.


“어머님 이쪽으로 좀 앉으세요.”


인생의 쓴맛을 아는 경순이가 노인의 어깨를 다정히 감싸 안고, 난로 앞으로 조심스레 이끌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은 ‘내가 주바카라이지.’ 같은 말을 되뇌며, 안경을 벗어 눈물을 훔쳤다. 경순이는 노인을 자리에 앉힌 뒤, 맞은편 의자를 끌어와 조용히 앉았다. 노인은 그간 북받치는 것이 많았는지, 거칠게 흐느꼈고 경순이는 묵묵히 곁을 지키며 기다려주었다. 가끔씩 노인의 손에 조심스레 휴지를 쥐어주느라, 바카라방 안에는 휴지 상자에서 휴지가 뽑히는 소리만 가늘게 들릴 뿐, 온통 고요했다. 어쩔 줄 몰라 카운터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난로 앞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 함박눈은 그칠 줄을 모르고 아이주먹만 한 몸집으로 지상을 덮고 있었다.


“할머니는 꼭 밤에 저를 재워놓고 우셨어요. 눈물 삼키는 소리가 참 애처로웠는데. 제 나이 열두 살에 돌아가셨어요. 일하다가 다치셨는데, 병원 갈 돈이 없어서 파스만 바르고 주무셨어요. 밤새 끙끙 앓는 소리가 났는데. 또 몰래 우는 줄 알고, 모른 척 잠을 청했죠. 아침에 일어나니까, 일그러진 얼굴에 땀으로 범벅이 된 할머니가 깨지를 않았어요. 사람 얼굴이 저토록 구겨질 수가 있구나. 저는 울지도 못했어요. 징그럽고 무서운 감정이, 슬픈 마음보다 앞서 있어서요.”


그런 경순이가 안쓰럽다는 듯, 노인은 앞으로 몸을 빼면서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경순이의 손을 잡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숨기고 싶었던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손녀 태어나고 다섯 살까지 키웠어요. 아들내외가 맞벌이라서요. 사람들은 손녀 보는 게 힘들지 않느냐 측은하게 봤지만, 마냥 좋았어요. 동화바카라 읽어주면 무릎에 앉아 눈을 반짝이는 게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아들내외가 손녀를 데리고 캐나다로 떠나요. 언제 돌아올지는 모른 다네요. 같이 가자 할 줄 알았는데, 그럼 못 이긴 척 따라가려고 했는데. 나도 같이 데려가라는 소리는 입에서 떨어지지를 않고. 가을이 없이 살아갈 자신은 없고. 모든 것이 엄두가 나질 않네요. 모든 날들이 초침하나까지 손녀에게 맞춰져 있는데, 이젠 홀로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경순이는 손 하나를 조심스레 빼내어 어르신의 손등 위에 살포시 얹었다. 경순이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고, 노인은 토해내듯 울었다. 그럼 신파를 싫어하는 나는? 울컥울컥 터질 것 같은 목젖을 손으로 움켜쥐며 창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느새, 느린 눈발은 잦아들고 있었다. 내일이면 해가 뜨고 알맞은 온도에 빛이 내려 얼어붙은 것들이 거리에 쌓이지 않도록, 구름 위로 데려갈 것 같았다. 슬픈 하모니도 옅어지기 시작했고,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센스 있게 포트기에 버튼을 눌러 물을 끓였다. 보이차를 우려내 머그컵에 따라 노인에게 건넸다.


“아이고 죄송해요. 이게 무슨 민폐인지.”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르신을 향해 수줍은 미소 한 방 날리고 어색한 종종걸음으로 카운터로 몸을 숨겼다. 지켜보던 경순이가 빙긋 웃는 게 보여서 두 볼이 발그레해졌다. 괜스레 쑥스러워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장부를 뒤적였다. 볼 것도 없는데 말이다.


“어머님! 손녀 생각날 때마다 헌바카라방으로 오실래요?”


뭐라고? 또 지 맘대로? 고개를 퍼뜩 들어 마뜩잖은 눈으로 이경순을 쏘아보는데. 막막해하던 노인이 활짝 웃으며 상실감을 털어내듯 기뻐했다. 그 모습에 나는 눈알에 독기를 빼고 시든 꽃처럼 장부에 코를 박았다.


'틈을 주면 안 돼! 틈을!'


속에 말을 하면서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어? 나비 왔네?”


얼마 전 새롭게 군식구가 된 치즈 고양이가 테크 앞에 놓인 철제 의자에 몸을 비비고 있었다. 그걸 발견한 경순이는 냉큼 카운터 밑으로 몸을 숙여 플라스틱 그릇에 사료를 담아 밖으로 나갔다. 한강변 자전거 도로 한 복판에 겁도 없이 앉아 있는 녀석에게 통조림 한번 사 줬더니, 집까지 따라왔다.


“에구 추운 날 쟤들은 집 없어 힘들겠네.”


노인이 문 앞으로 다가서며 사료를 먹는 나비를 구경했다.


“경순이가 꽤 튼튼하게 집을 만들어줬어요.”

“어머 그래요? 젊은 사람들이 맘씨가 좋네요.”


바카라방까지 나를 따라온 나비를 키우자고 난리 브루스를 춘 이경순 때문에, 어쩔 수없이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고양이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경순이는 과일 가게에서 나무 상자를 얻어 와서, 그 안에 스티로폼 박스를 넣어 폭신한 이불을 깔았다. 박스 위에는 도톰한 천으로 커튼을 만들어 근사한 나비의 겨울 집을 만들어 내었다.


“녀석이 꽤 영리해서, 낮 동안은 어디서 실컷 쏘다니다 밤이 되면 돌아와요.”

“현조 영혼이 선해서, 나비가 쫓아왔어요,”


뭐, 나비 녀석이 쥐 같은 것만 주워오지 않는다면, 군식구로 받아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저 고양이가 계단 밑이 자신의 집임을 인지한 후부터 고수부지에서 사냥한 생쥐나 뱀을 물어다 바카라방 앞에 놓아둔다.


“경순아, 나비한테 말했어? 한 번 더, 그딴 거 물어다 놓으면, 진짜 쫓아낸다고!”

“응 잘 말했어. 이젠 안 한데. 나비야 안 그럴 거지? 현조 언니는 뱀도 안 먹고, 쥐도 안 먹어. 너 그러다가 진짜 쫓겨난단 말이야.”

“자꾸 징그러운 걸 물어다 놓니? 반짝이는 걸 물어 올 것이지!”


옆에서 가만히 서 있던 노인이 입으로 손을 가리며, 풋 웃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정말 큰 일 하셨어요. 생명을 거둔 다는 게, 어찌나 귀하고 그만큼 어려운 일인지, 잘 알아요.”


걸음걸이가 이상했던 나비는 임신을 한 상태였고. 임신하기 전에는 암컷이니, 생리를 했었을 거고. 그 힘든 걸 하는 채로 추운 길을 헤맨다기에. 저 추운 거리를 피를 흘리며 아프게 떠돌 생각을 하니까. 다시 거리로 내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 노랗고 고독한 생명에게 누울 자리 하나는 내어주고 싶었다.


“나비 쟤는 왜 자전거 쌩쌩 지나가는 길 한 복판에 누워 있던 건지 모르겠어요.”

“사장님 눈에 띄고 싶었나 보네... 위험한데 있으면 분명 도와줄 거라 믿었나 보네요.”


그런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층 계단 밑에 제 집으로 들어가는 나비를 건너다보는데, 경순이가 방정맞은 음성으로 노인의 팔을 잡아끌었다.


“할머니! 곧 저녁인데 식사하고 가세요.”

기어코 노인을 이층 집으로 데려가는 이경순과 뿌연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며 여름날 소나기를 그리워했다.


“비나 좀 내렸으면......”




*

다음날, 경순이가 차려놓은 늦은 아침을 먹고. 자순에게 일기를 쓰면서 재방하는 드라마 몇 편을 연달아 시청하고는 오후 한 시쯤 바카라방으로 내려갔다. 만화바카라 코너에서 어슬렁 거리는 남자가 보였고, 그 옆에서 조잘대는 경순이가 눈에 들어왔다. 바카라방 안을 한번 건너다보고는 한강으로 통하는 현대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갔다. 바카라방에 손님이 오면 반가우면서도 이상하게 피하고 싶다. 경순이가 말해준 건데, 바카라방에 있는 나는 손님을 기다리면서도 막상 손님이 오면 굳어버린다고 한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지만, 경순이 앞에서는 '그건 네 생각이고!' 라며 고함을 질렀다. 뭐 어쨌든 경순이가 바카라방을 봐주면서 손님이 는 건 확실하다. 그렇지만, 그것을 경순이 앞에서 인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고수부지로 내려오니, 공기가 차가워서 그런지 햇볕은 짱짱한데 눈은 녹지 않았다. 다만 어떤 부지런한 이가 눈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 야트막한 얼음동산을 만들어 놓았다. 누군가가 미끄러워 넘어지지 않도록 바닥에 빗질한 자국이 보였다. 드문드문 세워진 눈사람을 구경하는데. 난데없이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어린 시절의 부모님이 떠올랐다. 미더덕을 잔뜩 넣은 엄마 표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 아빠표 김치 피자도. 그때에 행복하고 안전한 마음과 음식이 다리를 건너다 왜 생각이 났는지 모를 일이다. 주어진 생을 버텨낼 용기는 따뜻한 추억으로 생겨나는 건가? 다음날이면 화수분처럼 자라난 힘은 어릴 적 행복했던 기억 한 조각이 만들어낸 건가? 바카라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돌아갈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 있다는 건, 그저 평범하게 누릴 당연한 일상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왜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떠오르는 건 참 많은데 그 생각들과 감정들을 잘 모르겠는 때가 알 때보다 많다.

왜 나는 잘 모르는 걸까? 마치 글을 쓰고 싶어 미치겠는데. 할 말도 참 많은데. 종이 위에 점점만 찍고 있는 답답함이랄까? 아 정말 모를 일이다. 입을 반쯤 벌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고 숨을 멈췄다. 가슴이 풍선처럼 팽창하다가 금세 바람 빠져 쪼그라든다. 허기진 배를 두드리며 강변북로 위에 드리워진 구름다리를 건너는데, 맞은편에서 나비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비!”


다리 위에서 치즈 고양이와 나는 동시에 얼음이 되었다가, 또 동시에 ‘땡!’ 하며 서로에게 다가섰다.


“니야옹~”


나비가 눈을 반짝이며 다가와 머리를 내 손등에 비빈다.


“외출하는 거야? 밖에서 만나니까 진짜 반갑다?”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자, 갸르릉, 거린다. 어느 정도 반가운 인사를 마친 나비는 쿨하게 돌아선다.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 때마다, 목에 걸린 이름표가 반짝거렸다.


“자전거 잘 피해 다니고! 일찍 들어와! 뱀 보면 도망가고! 생쥐 봐도 그냥 피해! 너 이젠 고급 사료 먹잖아! 통조림도 연어만 먹잖아! 너도 안 먹는 쥐를, 왜 나한테 먹으라는 거냐?”


나비 녀석, 그래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한번 쳐다봐 준 뒤, 숲 풀 속으로 폴짝 몸을 던진다.


“몸 좀 사려! 새끼 베 놓고는. 경순이나 너나, 어째 몸을 안 사리냐?”


숲 풀에서 나와 공원 쪽으로 걸어가는 나비를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 보니 저 멀리 나의 헌바카라방이 보인다. 바카라방 유리창에 뿌옇게 김이 서렸다. 빗방울처럼 흘러내리는 모습이 예쁘다. 그러다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온라인 게임 동료들이랑 밥 먹는 게 어려워서, 허 여사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화장실에서 몰래 숨어 먹었던 기억. 그런 자신이 스스로도 싫었다. 퇴근하고 헛헛하게 집에 돌아오는데, 저 멀리 반짝반짝 빛이 나던 부모님의 가게. 입구에 친 비닐 문에는 뿌옇게 김이 서려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난파된 배에서 떨어져 망망대해를 떠돌다가 발견한 등대 같았다. 경순이가 들어 있는 헌바카라방을 보는데, 난데없이 그날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 느낀 포근함과 안전함까지. 나목문을 열고 바카라방 안으로 발을 내딛는다.


"어우 추워!"


패딩 점퍼를 가슴께로 모으면서 바카라방에 들어서자, 따스한 온기와 군침 돋는 향기에 순식간에 기분이 올라갔다. 이게 무슨 냄새인가 싶어 코를 킁킁 거리며 난로위에서 끓고 있는 냄비로 다가섰다. 향긋한 냉이와 구수한 된장의 하모니 이것은 냉이 된장국? 봄이 시작되면 엄마는 냉이 된장국으로 계절을 알려줬었다.


“점심 먹자, 냉이 된장국 끓였어.”


입 안에 침이 고인다.


“바카라에 냄새 밴다니까? 된장국은 바카라방에서 좀 심한 거 아니야?”


말은 퉁명스러워도 박현조 몸은 수저를 들고 난로 위에서 바글바글 끓는 냄비로 향해 달려들고 있다.


"밥 먹고, 문열어놓으면 금방 빠져. 향초 켜놔도 되고. 미니슈퍼가니까 냉이가 나왔더라고. 이젠 봄이니까.."

"아직 봄 아니다. 늦겨울이지..."


된장국에서 건진 두부를 쌀밥위에 으깨면서 중얼거렸다.


“집 된장으로 끓였더니, 진짜 맛있다. 가을이 할머니가 주고 가셨어.”

“누구?”

“어제 동화바카라 할머니. 손녀 이름이 가을이래.”

“아 참, 바카라값 드렸어?”

“안 받는 게 좋을 듯해. 돈 받으면 손녀를 파는 것 같으신가 봐.”

“그게 무슨? 돈은 돈이지.”

“자식 보내는 부모 마음이 그런 거지 뭐.”

“보낸 자식 있어? 누가 보면 자식 여럿이랑 이별 좀 겪은 줄 알겠네? 너 가끔 되게 많이 아는 것처럼 구는 거 맘에 안 들어!”


수저에 냉이를 가득 올려 입에 넣으며 쏘아붙였다. 경순이는 아득한 눈으로 먼발치를 바라보다가, 이내 함초롬한 낯빛으로 돌아보았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벙긋거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 뭐야? 왜 말을 하려다 마냐? 평소는 하지 말라도 하면서.”


이경순이 씁쓸하게 웃는다. 문득 떠오르는 내 생각처럼, 짐작할 수 없는 저 얼굴. 텅 빈 듯 꽉 차있는 눈동자. 보통인 것처럼 툭툭 던지는 굴곡진 그녀의 과거들. 대략 짐작은 하지만 또 기겁할만한 뭔가가 있는 건가? 자꾸 추측하게 만드는 비밀스러움이 숨어있나? 혹시 그런 게 있다면 그냥 비밀로 남겨두면 좋겠다. 아무 내색 없이 있다가 기다리던 애 아빠를 만나 무난하게 가줬으면 싶다.


그러다가 어느 날, 걸음마 하는 아이를 데리고 아주 가끔만 들러줬으면 싶다. 머릿속 광활하게 쳐있는 거미줄에 주렁주렁 매달린 상념들을 톡톡 건드리고 있을 때, 카운터 위에 못 보던 물건이 노란 속살을 뽐내며 빛나고 있었다. 아....... 익숙한 정경. 눈살이 찌푸려진다. 미간이 초승달처럼 좁아진다.


“저 저 저... 유리병에 든 저... 노란 건 뭐야?”

“레몬 사탕!”

“나 레몬사탕 안 먹고! 싫어하거든? 그 끔찍한 마녀 생각 안 나? 나는 열두 살 이후로는 레몬 맛 사탕은 입에도 안 대고, 헌 옷은 명품이어도 안 입어!”

“우리 어릴 때 유리병 깨뜨리기로 한 거 기억해?”

“그래서 지금 저걸 깨자고?”

“담임의 레몬사탕은 특별한 아이들만 받았잖아. 여기서는 아무나 다 받을 수 있어.”

“그거랑 유리병 깨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유리병 안에 든 사탕 보는 걸로도 그 마녀 생각나서 싫다고!”

“누구나 레몬사탕을 먹을 수 있는 건! 우리 식으로 유리병을 깨트리는 거야!”

“참 가지가지 한다!”

“가지 있는데, 구워줄까? 양념간장 맛있게 만들어서?”

“야! 장난해? 당장 치워!”


앞에 앉으면서 태연하게 얼굴을 끄덕이는 이경순, 갈수록 뻔뻔해진다.


“현조야. 저 아름답고 달콤한 유리병 레몬사탕을 슬픈 기억으로 가둬주지 말자. 계속 미워하고 싫어하는 건, 왠지 5학년 교실에 갇힌 느낌이잖아. 우리의 희망과 슬픔을 새로운 유리병에 담아보자. 켜켜이 쌓여 노랗고 아름답게 빛날 때까지.”

“어쭈구리....”

"나는 말이야. 현조의 헌바카라방이 참 좋아. 어린 시절의 교실은 지옥이었어. 그런데 내가 현조의 바카라방은 천국 같은 교실이 될 것 같아.."


경순이와 레몬 사탕이 담긴 유리병을 번갈아 노려보다가, 눈에 힘을 풀어버렸다. 나에게만 소중한 헌바카라방이 누군가에게도 소중해지기 시작했음에, 마음이 간지러워졌기 때문이다. 갑자기 재채기처럼 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현조 바카라을 만들어. 그래서 여기서 파는 거야."

"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니 왜? 현조 바카라방에서 현조 바카라을 판다는데, 누가 뭐래?"

"야야야!"

"그리고! 뿌리서점처럼 우리도 내일부터 손님들한테 믹스커피 주자."


오늘따라 똑순이처럼 말하는 경순이 앞에서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현조, 오늘 날씨 엄청 좋지? 산바카라 가자!”

“눈이든 비든 뭐라도 좀 쫙쫙 퍼 불 것이지! 왜 해는 비추고 지랄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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