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남성, 땅은 여성을 의미해서 새 하늘은 완성한 남성, 새 땅은 완성한 여성을 의미한다(계21/1).
<시사와 문화> 쳅터에서 언급한 대로 천지개벽이란 기울어진 지구가 바로 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아완성하여 바로서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상통 : 上通
위 상(上), 통할 통(通)
위(하늘이나 근원의 차원, 높은 경지)와 막힘없이 통함을 뜻한다.
신령통 : 神靈通
신 신(神), 신령 령(靈), 통할 통(通)
신령한 세계나 신의 기운, 영적인 차원과 깊이 맞닿아 그뜻을 서로 통함을 뜻한다.
상통(하늘과 통하는 것 즉 자아완성)과 신령통(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고 느끼고 대화하는 것)은 정신문명의 세계에서는 '거기서부터'라는 즉, 그 수준은 되어야 적응을 하고 살아갈 수 있는 세계다.
오늘은 역사에서 상통과 신령통에 가까이 간 이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역사 속 성인과 도인들이 절대자 혹은 궁극적 실재(신)와 마주한 방식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표현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거짓된 자아(에고)의 해체와 내면의 합일’이라는 공통된 궤적을 그린다. 이들이 신을 만난 대표적인 수행 방식과 경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부정의 길과 완전한 무심(無心) '내가 아니다'라는 철저한 부정과 비움을 통해 신의 본질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기독교 신비주의)
13세기 독일의 수도사 에크하르트의 정신세계는 동양의 유불선과 힌두교의 경지에 닿아 있다.
그의 경지는 '초탈( 내려놓음)'과 철저한 자기 비움이다. 그는 피조물에 대한 집착뿐만 아니라 인간이 머리로 만든 신의 관념조차 버려야 한다고 보았다.
영혼의 가장 깊은 밑바닥(영혼의 기저)까지 자아를 비워낼 때, 인간의 영혼의 기저와 신의 기저가 하나로 만난다. 에크하르트는 "신을 위해 신을 떠나라"라고 역설하며, 자아가 완전히 침묵할 때 신이 영혼 안에서 스스로를 탄생시킨다고 보았다.
샹카라 & 라마나 마하르쉬 (아드바이타 베단타)
'네티 네티(Neti Neti,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와 끊임없는 자아 탐구( "나는 누구인가?")이다. 육체, 감각, 생각, 감정은 모두 변하는 대상일 뿐 참된 자기가 아님을 분별해 배제한다.
관찰 대상이 되는 모든 거짓 자아를 벗겨내면, 마지막에 남는 순수 의식이자 절대 실재인 '브라흐만(Brahman)'과 참나인 '아트만(Atman)'이 본래 둘이 아니었음(불이, 不二)을 자각한다.
2) 헌신과 사랑을 통한 에고의 용해
절대자를 향한 극단적인 사랑과 헌신으로 자아의 경계를 녹여버리는 방식이다.
루미 & 카비르 (이슬람 수피즘 및 인도 신비주의)
절대자를 '궁극의 연인'으로 바라보며 타오르는 갈망과 춤(세마), 시, 염송(지크르)을 통해 자아를 잊는 수행이다.
'파나(소멸)'의 단계에 이르러 개인적 자아의 경계가 타버리고, 오직 신의 현존만이 남는 '바카(신 안에서의 영존)'를 경험한다. 루미는 "연인의 품에 안겨 두 존재가 하나의 숨을 쉴 때, 내가 사라지고 신만 남았다"라고 고백했다.
십자가의 성 요한 & 아빌라의 테레사 (스페인 신비주의)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는 내적 침묵 기도이다. 감각의 위안과 지성적 이해마저 완전히 메마른 고통스러운 정화 과정을 거친다.
인간적 기대와 의지가 전적으로 소멸된 자리에서 영적 혼인이라 불리는 신비적 합일이 이루어진다.
3) 직관적 관조와 한 생각의 멈춤(연기·자연과의 일체)
관념의 분별을 멈추고 우주적 질서(법, 로고스)와 실시간으로 동화되는 방식이다.
석가모니 (불교)
극단적 고행과 쾌락을 모두 버린 중도(中道) 위에서, 호흡을 관찰(아나파나사티)하고 몸과 마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응시(위파사나)했다.
샛별을 보는 순간 일체의 분별심이 끊어지며, 독립된 고정 불변의 '나'는 없고 모든 것이 얽혀 존재하는 연기(緣起)의 법칙을 꿰뚫었다. 인격신을 만난 것이 아니라, 우주의 본래 실재이자 절대적 진리(법, 다르마) 그 자체가 되었다.
노자와 장자 (도교)
'좌망(坐忘, 앉아서 모든 것을 잊음)'과 '심재(心齋, 마음의 재계)'이다. 인위적인 지식, 도덕, 판단을 비우고 마음을 맑은 거울처럼 비워둔다.
자연의 거대한 흐름인 '도(道)'에 자아를 내맡겨(무위자연, 無爲自然), 천지만물과 내가 하나로 통하는 경지(천지여아병생, 만물여아일체)에 들었다.
4) 고독한 직면과 전적 항복
광야나 산속의 철저한 단절 속에서 절대자의 부르심에 온 존재로 응답하는 방식이다.
모세 (시나이산의 떨기나무와 정상)
익숙한 문명과 안락에서 벗어나 가나안을 목표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다. 시내산에 올라 40일을 금식했다.
타지 않는 떨기나무 앞에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자신의 권리와 자아의 기반을 내려놓으라)"는 음성을 듣고, "스스로 존재하는 자(I AM THAT I AM)"라는 절대 의식의 선언을 직접 마주했다.
성인과 도인들이 전하는 신과의 만남은 시공간을 초월해 외부에서 신을 찾아낸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짓누르고 있던 에고의 허상을 완전히 털어내어 내면이 완전히 '빈 접시'가 되었을 때, 본래부터 그 자리에 가득 차 있던 궁극의 실재를 확인한 사건이었다.
영계를 보거나, 천사세계, 신과 대화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으려면 어떤 방법으로 그 경지를 갔는지, 실재 그 경지에 간 사람들의 체험담을 보자.
영계나 천사, 신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경험했다고 기록을 남긴 인물들은 역사 속 신비주의 전통에서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전하는 수행 방식과 구체적인 체험 기록은 크게 환상·영시 중심의 전통과 깊은 내적 침묵 전통으로 나뉜다.
1) 에마누엘 스베덴보리 (1688~1772)
자연과학자이자 광산학자였던 그는 50대 중반 이후 영계를 출입하며 영들과 대화했다고 기록했다.
스베덴보리는 어린 시절부터 호흡을 거의 멈추다시피 하는 '내적 호흡' 상태에 익숙했다고 술회했다. 외부 감각을 완전히 차단하고 의식이 고요의 극치에 머물 때 영적 감각이 열린다고 보았다.
1745년 런던에서 식사 중 방 안이 어두워지며 빛 속에서 한 존재를 보았고, 이후 약 27년간 물리적 육체에 머물면서도 수 없이 유체이탈을 하여 영계를 견학하고 영인들과 천사들과의 일상과 대화를 《천계와 지옥(Heaven and Hell)》 등에 방대하게 기록했다. 그는 "천사들은 인간의 언어가 아닌 사유와 감정이 결합된 영적 언어로 소통하며, 공간 이동은 물리적 거리가 아닌 영적 상태의 변화로 일어난다"라고 묘사했다.
2) 아빌라의 테레사 (1515~1582)
가톨릭 신비주의의 대표적 성인으로, 천사와의 만남과 영적 엑스터시를 자서전에 상세히 남겼다.
그녀가 제시한 핵심 통로는 '관상 기도(觀想祈禱)'였다.
관상기도는 기독교 전통 영성에서 언어나 분별적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현존을 고요히 바라보며 일치를 이루는 침묵의 기도를 의미한다.
《영혼의 성》에서 영혼을 일곱 개의 궁방으로 비유하며, 생각과 상상을 멈추고 하느님의 현존에 마음을 모으는 ‘정념의 기도’와 ‘합일의 기도’를 통해 영적 차원에 진입한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자서전에서 불타는 화살을 든 세라핌(치품천사)을 목격한 순간을 기술했다.
"내 곁 왼쪽에 천사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서 있었다. 그는 매우 아름다웠고 얼굴은 불타오르는 듯했다. 그의 손에는 끝에 불이 달린 긴 금화살이 쥐어져 있었는데, 그것으로 내 심장을 여러 번 꿰뚫는 것 같았다. 고통은 극심했으나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영적 감미로움이 넘쳐흘렀다."
3) 야콥 뵈메 (1575~1624)
독일의 평범한 구두 수선공이었으나 일련의 신비 체험을 통해 신과 우주의 구조를 직관했다고 전해진다.
의도적인 신비 훈련이라기보다는 깊은 경건성과 내면의 기도, 그리고 번민 속에서 자아의 고집을 완전히 꺾고 신에게 전적으로 매달리는 과정에서 상태가 촉발되었다.
어느 날 햇빛이 주석 그릇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것을 바라보던 중, 갑작스럽게 의식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 그는 만물의 본성과 신의 내적 작용, 빛과 어둠의 원리를 한순간에 꿰뚫어 보았으며, "천국의 본질과 삼위일체의 신비를 물리적 눈이 아닌 내면의 눈으로 직접 관통해 보았다"라고 회고했다.
(26.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