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에 대한 묵상 -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

by전영칠

'근원에 대한 묵상'시리즈는 묵상하고 살면서 문득 스치는 느낌(생각)들을 쓴 것입니다.




77.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



인간의 역사가 겹겹이 쌓여가는 이 현상 세계는 환상의 무대다. 환상이 아닌 실체의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 말뜻을 조금 더 쉽게 풀어내자면, 우리 중 그 누구도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세상에는 "나는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차고 넘친다. 인류 80억 명 중 단 0.1%에 해당하는 800만 명의 고지, 그 성공의 반열에 올라 한 분야의 일인자가 된 사람들. 돈으로, 권력으로, 혹은 명예로 거대한 성취를 이뤄냈다는 그들의 성공담은 서점 매대와 방송 화면에 매일같이 쏟아진다.


최근의 풍경도 다르지 않다. 글로벌 테크 기업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 젠슨 황은 무려 250조 원의 자산을 가진 세계 최고의 재력가다. 그가 지난 가을 잠시 앉아 치맥을 즐겼다는 서울 삼성동의 어느 치킨집 테이블은 '성공의 기운'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결국 가게 사장은 그 자리에 '1시간 이용 제한'이라는 기묘한 규칙을 두어야 했다.

진풍경은 이어졌다. 지난 2026년 6월 5일, 젠슨 황은 한국의 내로라하는 재벌 총수들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함께 홍대입구역 근처의 작은 삼겹살집에서 회동을 가졌다. 서글서글한 성격의 그는 고깃집 탁자 위에 분필로 이런 흔적을 남겼다.

JENSEN WAS HERE. LOVE LOVE LOVE (역 : 젠슨 황 여기 다녀감. 사랑을 담아)

세계 시장을 움직이는 거물들이 둘러앉아 소주잔을 부딪친 그 삼겹살 탁자에는, 이제 또 얼마나 지독한 시간 제한의 빗장이 걸리게 될까.


성공한 이들은 재력과 권력, 그리고 명예를 한 손에 쥠으로써 세상의 부러움을 산다. 그렇기에 온 세상은 그 0.1%의 고지에 오르기 위해 오늘도 피가 터지는 각자도생의 경쟁을 벌인다. 그러니 일단 성공하고 볼 일이다. 성공은 분명 좋은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게 전부일까. 화려한 직함이, 수백 조의 재력이, 무소불위의 권력이 과연 인간의 실존을 구원해 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성공과 구원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다. 성공지상의 세계는 겉보기엔 화려하나 결국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를 들어야 하는 시한부적 행복, 즉 환상의 세계다. 반면 구원지상의 세계는 조건이 없는 영원한 행복, 즉 실체의 세계다.


어떤 이들은 "현 세상에서 0.1%의 성공을 먼저 거머쥔 후, 구원의 세계까지 통째로 취하겠다"는 야심 찬 이론을 세우기도 한다. 말은 좋다. 그러나 인간의 일생은 너무나 짧고 두뇌의 용량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사람은 동시에 두 개의 우물을 깊게 파지 못한다. 구원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든 것을 비워내는 ‘빈 접시’의 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세상의 성공은 그 0.1%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손에 피를 튀기며 ‘쥐고 또 쥐어야’ 하기 때문이다. 손을 움켜쥐는 동시에 손바닥을 완전히 비워내기란 성인(聖人)의 경지가 아닌 이상 불가능에 가깝다.


'온전히 비어 있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과 '손바닥을 완전히 비워내니 모든 것을 움켜쥘 수 있다' 는 것은 같은 의미다. 그것은 신(神)의 세계이자, 공(空)의 세계이다.


동양의 사상서나 예언서가 역사를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으로 가르는 개념 역시, 결국은 환상의 역사와 실체의 역사를 구분 짓는 안목일 것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지금 우리가 딛고 선 이 세상은 물질과 경쟁이 극에 달한 선천의 끝자락, 소멸의 벼랑 끝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경전과 성현들이 입을 모아 말했던 신세계, 즉 진정한 후천의 실체 세계는 도대체 언제쯤 오는 것일까. 정말 그런 세계가 실재하기는 하는 걸까.


그 도래의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진실은 있다. 250조를 쥔 젠슨 황이든, 그의 자리에 앉기 위해 줄을 서는 보통의 인간이든, 이 환상의 무대 위에서 숨 쉬는 한 우리는 누구나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다리는 후천의 신세계는 어느 날 우연히 뚝 떨어지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80억 인간이 손에 쥔 성공이라는 허상을 스스로 내려놓고, 각자의 영혼을 ‘빈 접시’처럼 맑게 비워낼 때 비로소 우리 내면에서부터 차오르는 우주적 실재일 것이다. 움켜쥐려는 손을 펴고 *'우주가 보내는 본연의 비(雨)' 를 수용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선천의 야만을 끝내고 단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진짜 삶의 문을 열게 된다.

(2026.06.15)





*'우주가 보내는 본연의 비(雨)' :


우주가 보내는 본연의 비는 <비 오는 날 음악한곡과 시한잔 B> 11화에 썼던

'산(山)은 빈접시가 되어'라는 시의 산은 / 빈 접시가 되어/ 비를 받는다 는 내용을

연결한 것이다.



산(山)은 빈접시가 되어

전 영 칠




주는 대로 받는다

내어 맡기고 산을 오른다


산은

빈 접시가 되어

비를 받는다


나뭇잎, 비, 바람이 살랑대고

거역이 없으니

함부로 꾀하는 혁명도 없다


주는 대로 받는다

내어 맡기고 산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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