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에서

<스테르담 마음 에세이>

by스테르담

대학교 시절, 어느 동네 보습학원에서 영어 강사를 한 적이 있다.

어느 한 여중생이 수업이 시작한 지 10분 늦게 허겁지겁 들왔고, 나는 판서를 하고 뒤를 돌아보다 그 두 눈과 마주했다. 미안한 눈빛이었다. 아이에게 미안함을 주고 싶지 않았다.


부드럽게, 상대방이 편안해할 만 어조로 나는 말했다.

"가을이 왔구나."


그 아이의 이름은 가을이었다.

이름이 참 예쁘다 생각했다. 마침 그때가 9월인가, 10월인가 그랬다. 여름의 싱그러움이 사그라들고, 스산하지만 상쾌한 공기가 귀뚜라미소리와 섞인 지금과 같은 그즈음이었다.


가을이의 성이 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김'이라 해도 좋고, '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을마다 나는 그 순간을 떠올린다. 아니, 내가 그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가을의 문턱에선 언제나.


인생을 사계절로 나눈다면, 중년은 아마도 가을 즈음이 아닐까 한다.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와 노년기로 삶을 나눈다면 찰떡같기도 하다. 인생의 4분의 3 지점을 지나는 지점. 나는 지금 가을을 지나고 있다. 하나 둘, 수확하는 것들이 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만큼 놓아야 할 것들도 많아진다. 봄의 싱그러움과 여름의 뜨거움 같은 것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다시 잡으려 애쓰지 않는다. 무언가를 붙들고 있던 손에 힘을 빼는 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에서도. 지나가는 젊음을 마냥 안타까워하지 않는 이유다. 행복의 기준이 낮아지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진 지금이 싫지 않다. 고로, 나는 이전보다는 더, 분명히 행복하기 때문이다.


피어나는 꽃도, 떨어지는 잎사귀도.

자연의 섭리다. 계절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피어야 할 때 피고, 져야 할 때 진다. 그때를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아는 건, 뭐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림자를 앞서가려는 우둔함은 자연과 계절의 섭리 앞에 무용하다. 그 무용함을 추구했던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가을 앞에 고백한다.


오늘 아침, 반팔을 입고 나서다 스산한 공기를 마주하며 나는 또한, 이렇게 읊조렸다.

"가을이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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