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버베나(Lemon Verbena) -공기를 바꾸다

생각이 많아질 때, 먼저 공기를 바꾸다

by이소연


오늘은 레몬버베나를 꺼냈다.


찻잎을 손에 쥐면

먼저 밝은 향이 튀어 오른다.

날카롭지 않고,

억지로 기분을 끌어올리지도 않지만

공기를 바꾸는 힘은 분명하다.


나는 가끔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공기가 탁해졌다고 느낀다.

해야 할 일은 쌓여 있고,

생각은 많고,

몸은 크게 힘들지 않은데

괜히 무거운 날.


그럴 때 필요한 건

거창한 위로나 깊은 통찰이 아니다.

창문 하나 여는 일이다.

[사진출처 pixabay]

레몬버베나는 그런 허브다.


끓는 물을 부으면

방 안 공기부터 달라진다.

상큼하지만 가볍지 않고,

맑지만 허전하지 않다.


신맛은 거의 없고,

단맛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시고 나면 숨이 길어진다.


허브를 오래 다루면서 느낀 건

기분을 바꾸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는 깊이 내려가는 것.

다른 하나는 공기를 바꾸는 것.


레몬버베나는 두 번째에 가깝다.


억지로 긍정하지 않는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냥 말없이

지금의 공기를 정리해준다.

[사진출처 pixabay]

나는 요즘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공기를 바꾸려고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끓이고,

찻잔을 데우고,

레몬버베나를 한 스푼 넣는다.


그 짧은 준비 과정이

생각의 속도를 낮춘다.


향이 올라오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어깨가 조금 풀리고,

눈이 덜 날카로워진다.


그제야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오늘 안에 끝내야 하는 것’이

구분된다.


밝음이라는 건

크게 웃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또렷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레몬버베나는

기분을 들뜨게 하지 않는다.

대신

명료하게 만든다.


오늘의 감정 처방은 이렇다.


무거워지기 전에

공기를 바꾸자.


깊이 생각하기 전에

먼저 환기하자.


우리는 때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다가

창문을 여는 일을 잊는다.


레몬버베나 한 잔은

대단한 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 방 안의 공기를

조금 더 밝게 만든다.


그 정도면

오늘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