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에게는 '낭만'
"왜 굳이 그렇게까지 뛰는 거야?"
가족도, 회사 사람들도, 아니 러너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이런 질문은 익숙했다.
중국에서 유학했다고? 중동에서 승무원을 했다고? 그런데 개발자가 됐다고? 근데 거길 왜 나왔어?
이번에도 나는 그저 웃음으로 질문을 넘겼다.
첫 풀코스 이후 울릉도, 춘천, 상해까지 네 번의 마라톤을 완주하는 동안, 기록은 크게 욕심낸 적이 없었다. 그 대회만의 분위기와 그 도시의 풍경을 느끼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실컷 즐기고 나니, 나의 '처음'이었던 서울마라톤에서 4시간이라는 기록에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기록에 욕심이 생겼다.
혼자서 겨울 훈련을 시작한 지 한 달, 출근길에 후진하던 차에 부딪혔다. 2주를 쉬고 다시 뛰어볼까 하던 찰나엔 발뒤꿈치에 이물질이 박혔다. 다시 뛸 수 있게 되었을 땐 이미 대회가 한 달 남은 2월이었다. 4시간이라는 목표는 물 건너갔고, 병원에서는 완주를 걱정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뛰지 못했어도, 내 겨울은 온통 그날을 위해 보냈다.
그리고 다시, 출발선에 섰다.
얼마 전에 받았던 편지가 떠올랐다. 1년 전 크루 연말 행사에서, 1년 후의 나에게 썼던 편지였다. 막상 열어봤을 별말은 없었다. 셀프 응원 몇 줄이 전부였지만, 기분이 묘했다. 1년 전의 나는 '행복하게 잘 뛰고 있지?'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어쩐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아프지만 말자고, 웃으며 행복하게 완주하자고 다짐했다.
4시간 33분. 목표와는 한참 먼 기록이었다. 크루에서 출전한 스무 명이 넘는 주자들 중 제일 마지막으로, 그것도 한참 뒤에야 들어왔다.
북적이는 결승선을 빠져나와 짐을 찾고 나오자, 크루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해 뒤뚱거리는 나를 보며 다들 환호했고, 왜 이렇게 늦게 오냐는 핀잔 섞인 장난을 던지기도 했다. 크루에서 친한 언니는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너는 완주할 줄 알았어."
왜 굳이 그렇게까지 뛰냐고 물으면, 나는 아직도 답을 잘 모르겠다.
다만, 참가했던 모든 대회의 사진과 영상 속 내 모습은 항상 웃고 있었다.
굳이? 응, 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