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의 걸음마

by쿼카의 하루

대학생 시절에 혼자 있는 것이 죽을 만큼 싫었던 공간이 있는데 바로 구내식당이었다. 내가 식판을 들고 걸어가서 군중과 동 떨어져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을 누군가로부터 발견되는 것이 큰 고역이었다. 차라리 의자와 의자 사이에 칸막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점심을 먹는 시간 혼자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웠다.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말도, 도움이 안되는 조언에 불과했다. 새내기가 된 해에는 고통과 수치심에 압도되기 전에 차라리 밥을 먹지 않는 것을 택했다. 너무 배고픈 날에는 캠퍼스 안을 걸어가면서 혹은 사람들이 많지 않은 건물의 화장실에 들어가 칸막이 문을 걸어 잠그고 밥버거나 김밥 따위로 허기를 달랬다.


나에게는 흡사 알러지 반응과 같았다. 당시 내게는 트라우마가 있었다. 중학생 시절에 반 친구들과 조금 떨어져서 밥을 먹고 싶은 마음에 다른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누군가가 나를 보고 ‘왕따’라고 큰 소리로 놀렸다. 순간 주변이 웃음소리로 왁자해졌다. 교통사고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 일을 겪고 나서 급속도로 웃음을 잃었다. 수심은 깊어지고, 몇 달 동안 우울한 마음에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기분은 나아졌으나, 깊이 뿌리 내린 상흔이 있었다. 뿌리를 건드리는 일을 겪으면 통증은 여전했다.


처음에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먹는 것부터 시작했다. 취식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먹었다. 사실 그것부터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서 전자레인지에 데우지도 않고 포장지를 뜯어 밥을 우걱우걱 재빨리 씹어 넘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에는 혼자라는 사실을 주목하는 사람도 없었고, 20대인 듯한 점원은 내적인 친밀감이 쌓여 있었기에 점점 편해졌던 것 같다.


그 다음 과제로 스스로 정한 것은 혼자서 학교 근처의 카페에 가는 것이었다. 당시 커피는 집에서 믹스커피만 타서 먹었지만 카페에는 혼자 가는 사람도 간혹 있는 것으로 알았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혼자 앉아서 노트를 펼쳐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이 2층에 걸쳐 여럿 있었다. 나는 왠지 어른스러워 보이는 그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기로 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도서관에서 빌린 바카라을 펼쳐 읽으며 한껏 자연스러워지기를 기다렸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나는 금세 카페라는 공간을 좋아하게 됐고, 커피는 투 샷을 넣은 쓴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게 됐다.


다음으로는 샌드위치나 컵라면 같은 것을 점심 시간이 끝나가는 한적한 시간에 구내식당 구석 자리에 앉아서 먹었다. 캠퍼스 안에 총 세 군데 있는 구내식당 중 가장 한산한 곳을 골라가며 큰 마음을 먹고 진행한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시간이 지나자 아무렇지 않은듯 익숙해졌다. 사실 처음에는 멋쩍은 기분이 들어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는 척을 했는데, 구내 식당의 밥이 그만 너무 맛있어보였고 실제로 먹어보니 저렴한 가격에 비해 정말 맛있었다. 그래도 북적이는 점심시간만은 피했는데, 경험이 쌓이고 먹어본 메뉴들이 내 입맛에 맞을수록 점점 대범해졌다. 학생들로 붐비는 점심시간에 당당히 식판을 들고 먹기 시작한 것은 그 다음의 무렵이었다.


구내식당은 나에게 극복해내야 하는 어떤 과제같은 무언가였다. 그것은 마치 아이들이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는 희열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과 같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면서 점점 과거와는 멀어졌다. 그리고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나는 이제 와서 왜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면서, 혹은 수치스러워하면서 불편하게 살아왔는지 의문을 가지지는 않는다. 사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엔 과거의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저 하나의 추억이지만. 그렇게 아파하고, 힘들어한 것도 사실 상처 입은 연한 살을 외부에 드러내는 일이었던 것 같다. 다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그 과정 가운데 스스로를 천천히 격려하며 실행한 나를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나라는 사람을 무척 칭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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