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하루

by이지원

브레이크가 아니었다.

덜덜 떨리는 오른발이 짓누른 것은 액셀러레이터였다. 굉음과 함께 튀어 나간 차체가 앞차의 후미를 들이받았고, 시야가 어지럽게 뒤집혔다. 산산조각 난 앞 유리가 눈보라처럼 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푹 꺼진 에어백에 이마를 박은 채로 숨을 헐떡이던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조수석에 타 있던 남자의 터진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피범벅이 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야, 강산아. 이강산.

네 인생도 이제 나랑 똑같아.

같은 시궁창이라고.


그날, 한 사람이 죽었고 두 사람이 불구가 되었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남자의 조소, 차창을 두드리는 수많은 손바닥과 비명, 귓속으로 날카롭게 꽂히던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모든 게 강산을 덮쳤다. 그는 온몸을 떨며 눈을 떴다. 캄캄한 방의 천장이 눈에 들어오고 나서야 현실감이 돌아왔다. 침대에서 한동안 숨을 고르다 휴대폰을 들어 날짜를 확인했다. 일요일 오후 8시.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다.

두둑하게 부푼 쓰레기봉투가 현관 한구석에 놓여 있었다. 강산은 쓰레기봉투를 들었다. 음식의 양념이 붉게 남은 배달 용기와 빈 페트병들이 서로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볼캡을 깊게 눌러쓴 그는 도어스코프에 눈을 바짝 붙였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이라면 아무도 마주치지 않을 것이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눈을 질끈 감고 문을 밀어내자마자 오른편에서 익숙한 전자음이 터져 나왔다.

삐비빅.

또 옆집이다! 어김없이 그의 발이 굳었다. 그러나 이미 나온 이상 다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는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벽에 붙었다. 계단으로 내려갈 것을 고민했으나, 묵직한 봉투를 들고 7층을 내려가는 것은 무리였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끔찍하게 긴 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정적을 깨고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산은 볼캡 속에 얼굴의 반을 파묻은 채로 시선을 소리가 난 쪽으로 돌렸다. 노란 카디건을 입은 여자가 팔 하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그녀 역시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모양으로, 한껏 부푼 쓰레기봉투가 손에 들려 있었다. 강산은 고개만 희미하게 끄덕였다. 이쯤에서 그녀가 조용히 해주길 바랐지만, 그의 바람은 깔끔하게 꺾여버리고 말았다. 출소 후 이 아파트에서 지낸 지도 벌써 2년째인데 그녀의 패턴은 마주칠 때마다 늘 똑같았다.

“쓰레기 버리러 가시나 봐요.”

강산은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쇳소리가 섞여 나왔다.

“···네.”

그녀는 앞장서서 분리수거장으로 걸었다. 그 뒤를 강산도 주춤주춤 따랐다.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 그녀는 손을 탁탁 털며 다시 말을 걸었다. ‘밥은 먹었어요?’, ‘오늘은 뭐 했어요?’ 같은 시시콜콜한 말들이었다. 그녀의 미소가 자꾸만 시선에 걸려, 얼른 눈을 떨구었다.

704호 현관문 앞에 멈춰 선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고 이후로 거의 닿아본 적 없는 ‘좋은 하루’. 그는 그 말을 천천히 입속으로 굴리며 캄캄한 집으로 들어갔다. 들을 때마다 껄끄러운 말이었다.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집으로 돌아온 강산은 현관문에 등을 붙인 채로 서 있었다. 볼캡을 벗어 바닥에 던지고는 숨을 골랐다. 집은 늘 그렇듯이 어둡고 어지러웠다. 현관 오른편에는 아직 버리지 못한 택배 상자들이 쌓여 있었고, 바카라상 위에는 제멋대로 구겨진 종이와 먼지를 뒤집어쓴 액정 태블릿이 놓여 있었다. 바카라장에는 언젠가 읽기 위해 산 만화바카라이 꽂혀 있었다. 그는 고개를 젖혔다. 천장의 얼룩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이곳은, 희망아파트 703호.

강산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낡고 좁긴 했지만 ‘희망’이라는 단어와 숫자 ‘7’이 좋았다. 그래, 언제까지나 희망찰 줄 알았지. 5년여 전 이 아파트에 처음 발을 들인 날, 그는 창가에 바카라상을 놓고 그곳에서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라 생각했다. 계속은 개뿔, 벽에 걸린 달력의 연도는 재작년에 멈춰 있었다.

그는 신발을 벗었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이불에 몸을 던졌다. 휴대폰의 화면을 켜 보았다.

[(광고) 상품권 즉시 지급]

[(광고) 하락장 살아남기 내일부터 추천주 오후 2시]

[(광고) 대리운전 첫 이용 7000점 적립]

마지막 문자에서 강산의 손가락이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이내 하나씩 지워나갔다.

이번에는 메신저 앱을 켜 보았다. 가장 상단에는 일주일 전 엄마에게 보냈던 메시지가 올라와 있었다. 채팅창에 들어가 보았다.

[엄마, 잘 지내?]

‘읽음’ 표시가 있었지만, 답은 없었다. 강산은 메신저 앱에서 나왔다.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벽 너머로 희미한 TV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대라면 705호의 아저씨는 개 산바카라을 시키러 나가고, 706호에서는 저녁을 먹고, 윗집의 아이가 피아노를 친다.

강산은 희망아파트 주민들의 생활 패턴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마주치지 않으려면 알아야 했다. 경비 아저씨가 언제 아파트를 청소하시는지, 엘리베이터가 붐비지 않는 시간대는 언제인지. 물론 방금 마주쳤던 704호 여자의 출퇴근 시간대도 알고 있었다. 오전 8시, 오후 9시 반. 출소 후 2년 동안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고 살기 위해 터득한 것이었다. 운이 안 좋으면 오늘처럼 마주치는 날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거실에 누운 그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사람 좋은 미소, 붙임성 있는 성격. 기가 쭉 빨리게 만드는 그 말투. 괜히 받아줬다. 그냥 계단으로 내려갈걸.

좋은 하루. 한때는 그걸 비롯한 평범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았다. 마감일 안에 웹툰 한 회차를 내놓으면 담당자가 ‘수고했다’라고 말해주었고, 독자들은 다음 회차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잘 되었을 땐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축하받았다. 휴대폰을 켜는 것이 귀찮을 만큼 메시지가 쏟아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전부 과거일 뿐이었다.

강산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목이 말랐다. 냉장고의 문을 열어보았다.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한 편의점 도시락에 눈길을 주고는 반쯤 남은 플라스틱 생수병을 꺼냈다. 작은 컵에 물을 채운 다음 벌컥벌컥 마셨다. 내일은 편의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뱃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머리를 굴려 보았다. 오후 1시쯤이면 온라인 게임인들도 학생들도 전부 제 일을 하느라 바쁠 시간대였다. 그때 모자를 눌러쓰고 재빠르게 다녀오면 어떨까.

재빠르게. 체력이 바닥을 기는데 뛸 수 있기나 할까? 편의점 직원과 마주치는 것도 생각해야 했다. 그는 머리를 저었다. 차라리 배달주문을 하는 게 낫지.

배달앱을 켜고 컵라면 여섯 개와 생수 여섯 병을 담았다. 결제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주문이 완료되자 바깥에 나갈 이유가 없어졌다. 강산은 안도했다.

할 일을 마친 휴대폰 화면은 강산의 얼굴만을 비추고 있었다. 기름진 머리카락, 푹 꺼진 볼. 강산은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창문에는 암막 커튼이 매달려 있었고, 가로등의 불빛 한 줄기도 방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는 어둠과 하나가 되어 생각했다. 내일도 아무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다음날이 밝았다. 휴대폰에는 배달이 완료되었다는 알림이 도착해 있었다. 강산은 배달된 컵라면과 생수 묶음을 집 안으로 옮겼다. 컵라면은 찬장에, 생수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컵라면 하나의 뚜껑을 반쯤 열고 수프를 부었다. 물을 끓이며 그는 뜻 없이 날짜를 확인했다.

10월 16일.

10월.

그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사고가 난 것이 3년 전 가을이었다. 자신은 1년을 살고 나왔고, 형은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형도 언젠가는 세상으로 나온다.

주전자에서 김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불을 끌 수 없었다.

형이 나온다면, 이 집의 주소를 알게 될까? 부모님은 형에게 이 집의 주소를 알려줄까?

강산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 부모님이 먼저 알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형이 집요하게 묻는다면? 누구 하나라도 이 집의 주소를 알려주지 않을까? 늘 그런 식이었으니까.

“네가 엄마 아빠의 소중한 아들이듯이, 강호도 엄마 아빠의 소중한 아들이야.”

강호는 그 말 아래에서 번번이 용서받았고, 강산은 입을 다물었다. 어릴 때부터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었다. 형이 사고를 치고, 물건을 던지고, 손을 올려도 결국 돌아오는 말은 같았다.

네 형이잖아, 가족이잖아. 네가 참아야지.

강산은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주전자에서 새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소리 사이로 다른 소리가 끼얹어졌다. 누군가의 구둣발 소리였다. 강산은 어깨를 떨었다. 구둣발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강산의 귀에 형의 목소리가 꽂혔다.

강산아, 형이야.

이런 데서 살고 있었어?

강호의 비릿한 웃음이 눈앞에 보이다 사라졌다. 강산의 이가 딱딱 부딪쳤다.

“아, 아니야···아니야!”


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몸이 기억하는 공포를 누를 수 없었다. 강산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웅크렸다. 떨림이 온몸으로 번졌다. 구둣발 소리는 현관문 앞에서 멈추었다.

“으, 윽, 윽···!”

강산은 다급하게 서랍을 뒤졌다. 과도의 손잡이가 잡혔다. 흉터가 우툴두툴하게 남은 왼쪽 손목을 향해 과도를 치켜들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무시했다. 그러나 종소리는 한 번 더 울려 퍼졌다.

그는 과도를 한 손에 꽉 쥔 채로 인터폰을 확인했다. 노란 카디건, 둥글고 커다란 눈. 옆집 여자다. 그녀가 무언가를 양손에 들고 찾아온 것이다. 형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는데도 떨림이 누그러지지 않았다. 강산은 주전자의 불을 껐다. 물이 끓을 대로 끓어 가스레인지로 넘치고 있었다. 그는 주춤거리며 다시 인터폰을 향해 다가갔다.

“어, 어쩐 일로···.”

“아, 다름이 아니라 반찬을 너무 많이 만들어서요. 괜찮으시면 좀 드실래요?”

그녀는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반찬통을 들어 보였다. 누가 이렇게 반찬을 해다 준 게 얼마 만이었더라. 엄마가 해주신 반찬을 먹어본 지도 오래되었는데. 그렇지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정반대였다.

“아, 안 돼요.”

“네?”

“저···괜찮아요. 이런 거 안 주셔도 돼요.”

“그러지 말고 드세요. 여기 놓고 갈게요.”


그녀는 정말로 반찬을 놓고 돌아갔다.

가져오지 말아야 한다. 남이 해준 반찬을 먹을 자격 따위 자신에게는 없다. 그러나 며칠간 즉석식품으로 연명해 왔던 위장이 강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강산은 인기척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현관 앞에 놓인 반찬통을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안으로 들였다.

사각의 통 안에는 간장 양념이 자작하게 배어든 불고기가 들어있었다. 먹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혀뿌리부터 올라오는 침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젓가락으로 불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달착지근한 양념이 혀에 감겼다.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맵고 시큰한 감정이 가슴에서부터 번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