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6년 노르만 정복과 배틀 애비의 흔적을 따라
잉글랜드 남동부의 해안 도시 헤이스팅스(Hastings).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웨스트 힐(West Hill)에 올라 영국 해협을 바라본다.
Count William came from Normandy to Pevensey on Michaelmas Eve.성 미카엘 축일 전날, 윌리엄은 노르망디에서 바다를 건너 페번시에 도착했다.— 《앵글로색슨 연대기(Anglo-Saxon Chronicle)》, 1066년 기록
1066년 가을,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은 바로 이 바다를 건너 잉글랜드에 상륙했다. 그해 10월 14일,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언덕에서 잉글랜드군과 맞붙었다. 그곳의 지명은 배틀(Battle). 이름 그대로 ‘전투’다. 윌리엄은 왜 바다를 건너 잉글랜드의 왕과 싸우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그해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참회왕(Edward the Confessor)이 자녀 없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를 둘러싼 다툼이 시작되었다. 세 명의 강력한 인물이 저마다 왕관을 요구했다.
1066년, 왕위를 둘러싼 세 사람
첫 번째는 잉글랜드의 해롤드 고드윈슨(Harold Godwinson)이다. 앵글로색슨계 유력 귀족으로, 에드워드 사후 귀족들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두 번째는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William of Normandy)이다.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왕위를 약속했다고 주장했고, 교황의 지지를 얻어 잉글랜드 원정을 준비했다.
세 번째는 노르웨이 국왕 하랄드 하르드라다(Harald Hardrada)다. 후대 노르드 사가에 따르면 그는 과거 노르웨이와 덴마크 왕가 사이에 맺어졌다는 왕위 계승 약속을 근거로 잉글랜드 왕위를 주장했다.
한 왕좌를 놓고 세 사람이 맞섰다.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 바이킹의 최후
1066년 9월, 하랄드 하르드라다는 대군을 이끌고 잉글랜드 북부를 침공해 요크를 위협했다. 잉글랜드 왕 해럴드는 즉시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진군해 9월 25일 요크 인근 스탬퍼드 브리지 전투(Battle of Stamford Bridge)에서 그를 무찔렀다. 하랄드 하르드라다는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러나 해롤드가 북쪽에서 승리한 지 사흘 뒤, 남쪽 페번시 해안에는 윌리엄의 군대가 상륙했다.
해롤드는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