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5분혁신.가정행복]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한 부부의 싸움이 법정에서 다시 재생된다. 남편은 이미 죽었다. 아내는 그의 죽음을 둘러싼 재판을 받고 있다. 녹음 속 두 사람은 돈과 육아, 글쓰기와 커리어, 누가 더 많이 포기했는지를 두고 격하게 부딪힌다. 영화 <추락의 해부>의 한 장면이다.
이상한 건 싸움의 내용보다 기억의 차이다. 같은 집에서 같은 시간을 살았는데 결혼에 대한 기억은 딴판이다. 한쪽은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말한다. 다른 쪽은 그것이 스스로 내린 선택이었다고 맞선다. 같은 시간을 한 사람은 희생으로, 다른 사람은 선택으로 기억한다. 같은 결혼 생활, 각자 다른 기억. 이유는 무엇일까.
결혼 전에는 사람을 본다. 성격은 어떤지, 돈을 대하는 태도는 비슷한지, 생활습관과 가족관계는 어떤지 살핀다. 좋은 사람을 고르면 좋은 결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주식을 고를 때 좋은 회사를 찾는 것과 닮았다. 투자라면 꽤 합리적인 접근이다. 투자자는 회사를 분석하고 돈을 넣는다. 그 뒤에는 회사가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본다. 투자자가 매일 출근해 회사의 문화와 사람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결혼은 다르다. 배우자를 고르는 순간부터 두 사람은 서로의 삶 안으로 들어간다. 한쪽의 말이 상대의 반응을 부르고, 그 반응이 다시 한쪽의 태도를 바꾼다. 함께 사는 동안 두 사람은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는다. 존중받는다고 느끼면 마음을 더 열고, 무시당한다고 느끼면 조금씩 마음을 거둔다. 믿음을 받으면 더 바카라임지려 하고, 반복해서 의심받으면 자신을 지키는 쪽으로 변한다. 함께 사는 동안 서로의 말과 반응은 상대를 조금씩 바꾼다. 그래서 결혼은 투자보다 공동 창업에 가깝다.
결혼은 완성된 회사를 골라 지분을 사는 일이 아니다. 두 사람이 만나 전에 없던 삶을 함께 만드는 일이다. 출발할 때 누구를 만났느냐도 중요하다. 하지만 몇 년 뒤 두 사람의 모습은 처음 누구를 골랐느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함께 내린 결정과 선택, 서로에게 건넨 말과 행동이 둘 사이를 바꾸어서다.
처음에는 늦는다고 연락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기다리는 사람은 몇 시쯤 오느냐고 물었고, 늦게 돌아온 날이면 식탁에서 도란도란 하루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순간 연락은 “늦어” 한마디가 됐다. 기다리던 사람도 더는 귀가 시간을 묻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다리던 사람이 참았던 말을 꺼낸다. “요즘 너무 늦는 거 아니야?” 돌아온 말은 “또 시작이네.” 처음에는 왜 서운한지 더 설명한다. 몇 번을 말해도 달라지는 게 없으면 설명을 포기한다. 말이 줄고, 부탁이 줄고, 기대도 줄어든다. 더는 불만을 꺼내지 않으니 늦게 들어오는 사람은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 문제가 끝난 게 아니다. 끝난 건 서로 간의 대화다. 어쩌면 신뢰까지도.
시간이 더 흐른다. 한쪽은 기대를 거두고, 다른 쪽은 그 거리를 냉담함으로 받아들인다.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묻는다. “왜 이렇게 차가워졌어?” 얼마 후 둘은 비슷한 결론에 닿는다. “말이 안 통해.” 그런데, 정말 원래부터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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