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그를 놓아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슬픔을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슬픔은 그를 떠나지 않았다.
- 이승우, 「만든 눈물 참은 눈물」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만 같다.
때로는 우린 슬픔이 뭔지도 모르고, 혹은 뭣 때문에 슬픈지도 모른 채로 슬픔 그 자체에 침잠되어 간다.
왜 우리는 때로 슬픔을 끝내 놓아주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어떤 슬픔은 고통이면서 동시에 내가 한때 누군가를 아꼈었다는, 혹은 사랑했다는 마지막 증거이기 때문이 아닐까.
슬픔을 버리는 순간 그 사람도, 그 시절도, 그때의 나도 함께 사라질 것만 같아서. 그래서 사람은 나아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아물지 않게 놓아둔 상처의 가장자리를 가끔씩 혼자 만져보곤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더 깊이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거기에는 겉으로 드러내기는 부끄럽지만 아주 인간적인 욕망 하나가 있는 것 같다.
“나를 좀 보아 달라는 마음“
내가 이렇게 아팠다는 것을,
내가 이만큼 사랑했다는 것을,
내가 당신 때문에 이토록 오래 흔들렸다는 것을..
그러니 적어도 나라는 사람이 당신의 생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하지는 말아 달라는 것을..
이승우 님의 저 문장을 읽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오랜 기간 슬픔이 나를 붙잡고 있다고 생각하며 우울감을 품고 살아온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떠나간 사람이 나를 붙잡고 있고,
지나간 시간이 나를 붙잡고 있고,
끝내하지 못한 말들이 나를 붙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피해자 코스프레에 익숙했고, 늘 그 마음에 스스로 빠져 슬픔을 느끼곤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씻을 수 없는 원죄이고, 내가 감당하며 살아가야 할 숙제라고 말이다.
사람이 떠났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느냐고,
마음이 그렇게 쉽게 정리될 수 있는 것이냐고,
시간이 많이 흐른다고 모든 것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그런데 저 글귀는 잔인할 만큼 조용하게 나를 꾸짖는다.
슬픔이 나를 놓아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슬픔을 놓아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라고.
그렇다면 묻게 된다.
나는 왜 그것을 놓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