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고향
"오늘 시간 어떠냐."
수영장을 가려고 준비 중인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오전에는 수영장 다녀오고, 오후에는 괜찮아요."
"그럼 점심 먹고 외가 다녀오자."
며칠 전부터 엄마는 고향이 가고 싶으셨다고 하셨다. 살던 집이 그리웠고, "지금도 나는 울 엄마가 보고 싶어야"라며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때마다 말끝이 가을바람처럼 아득하게 흩어졌다.
우리는 아버지와 엄마, 얼마 전 정년퇴직한 동생, 조카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차창 밖 하늘은 오래 올려다보면 눈시울이 시릴 만큼 맑고 푸르렀다.
길가의 벼는 노랗게 익어 고개를 숙인 채 햇살 아래 황금빛 물결로 일렁였다. 논길을 따라 달리는 동안, 마음에 켜켜이 쌓여 있던 일상의 소란도 어느새 가라앉았다.
마당에 들어서자 우리 입에서 약속이나 한 듯 탄성이 터졌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외삼촌 부부가 세상을 떠난 뒤 한동안 비어 있던 집이었다.
그 근처에 정년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온 외사촌 오빠네 부부가 새 집을 짓고 집보다 더 다정한 정원을 가꾸어 놓았다.
잔디 마당은 정갈했고, 한쪽에는 나무 테이블과 벤치가 놓여 있었다. 툇마루 아래와 마당 구석구석에서는 갖가지 꽃이 우리를 반겼다. 담장 가에는 장독과 사기항아리가 줄지어 서서 옛 외가의 얼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툇마루에 앉아 하늘과 산자락을 올려다보니, 마치 누군가 내 어깨를 어루만지는 듯했다. 햇살과 꽃에 둘러싸인 그곳에서는 시간마저 걸음을 늦추는 것 같았다.
집 뒤 정원에는 분홍빛, 자줏빛 코스모스와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꽃잎이 수줍게 흔들렸다. 그 사이를 천천히 걷는 엄마의 뒷모습 위로, 어린 시절의 엄마가 겹쳐 보였다.
엄마에게 외가는 단지 살던 집이 아니라, 삶의 가장 맑은 날들이 깃든 뿌리다.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벼가 익는 것을 보며 자란 땅, 저녁 짓는 연기 속에서 이름이 불리던 마당. 그 한가운데에 엄마의 부모님,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계셨다.
이제 그분들은 계시지 않는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도 "왔느냐" 하며 반겨 줄 목소리가 없는 고향.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곳. 어쩌면 엄마는 이곳을 늘 가슴 한편에 그리움의 정원처럼 간직하고 있었으리라.
엄마의 고향을 지키고 있는 사촌 오빠의 마당에는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엄마는 툇마루에 앉아 한참 말이 없으셨다. 꽃밭을 바라보는 눈가가 촉촉했다. 고향에 여전히 사람의 온기가 살고 있다는 것, 그 땅을 돌보는 손이 대를 이어 남아 있다는 것이 엄마의 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오빠네 부부는 우리를 그냥 보내지 않았다. 빨갛게 빻은 고춧가루, 볕에 단맛이 오른 단감, 앙증맞은 사과대추, 향긋한 깻잎, 병마다 고소한 냄새가 밴 참기름, 그리고 닭장에서 막 꺼낸 달걀까지. 보따리가 하나둘 늘더니 트렁크가 가득 찼다. 달걀을 건네받는 손바닥에 따뜻함이 남아 있었다.
차가 골목을 빠져나올 때까지 오빠네 부부는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백미러 속에서 꽃밭이 점점 작아졌다. 뒷좌석의 조카들은 어느새 잠이 들었고, 트렁크에서는 참기름 냄새가 은은히 번져 왔다. 엄마는 말없이 창밖을 보시다가 가만히 웃으셨다. 고향을 두고 오는 길이 아니라, 고향을 싣고 가는 길 같았다.
정원을 가득 채운 꽃들은 그저 땅에서 피어난 것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앞으로 올 날들에 대한 다정한 축복처럼 보였다.
시리도록 푸른 가을날, 우리는 외가의 꽃 정원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트렁크 가득 고향을 안고 돌아왔다. 고향은 떠난 사람의 기억 속에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남아서 지키는 사람의 손끝에서 해마다 다시 피어나는 것이었다.
"글 쓸 공간이 필요하면 언제든 지 와. 편백나무로 만든 찜질방이 참 좋아야."라는 오빠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