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가뭄은 하늘이 내리지만 기근은 사람이 만든다

8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2026년 이란까지, 가뭄과 기근의 기록을 마치며

by이월
처음 이 연재를 시작하게 만든 건 짧은 탄식 하나였습니다.
"한 번의 가뭄에서 파생된 기근으로 1,000만 명이 죽었고 나라가 멸망했다고? 왜 학교에서는 이런 역사를 안 가르쳐줄까?"

그 의문을 붙들고 8만 년 전 아프리카의 거대한 가뭄에서 출발해, 첫 번째 온라인카지노북 17편과 두 번째 온라인카지노북 29편을 지나 오늘의 30번째 글까지 왔습니다. 이제 긴 여정을 한 번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하나의 질문에 답해 보려 합니다.

먼 길을 돌아보면

인류의 역사는 가뭄과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8만 년 전 아프리카를 덮친 열대 거대 가뭄 속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인구가 약 1만 명까지 줄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4,200년 전에는 최소 100년 넘게 이어진 가뭄이 고대 문명들을 뒤흔들었습니다.

기원전 1198년 무렵 아나톨리아의 3년 연속 가뭄은 히타이트 제국이 몰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야 문명은 50년마다 되풀이된 메가 가뭄 속에서 도시를 비워 갔습니다.


16~17세기에는 화산과 소빙하기가 가세했습니다. 1600년 페루 후아이나푸티나 화산 폭발의 여파로 러시아에서는 200만 명이 굶어 죽었고, 1630년 인도 데칸 대기근에서는 최대 740만 명이 숨졌다는 기록이 남았습니다.

조선에서는 경신대기근과 을병대기근이 나라의 뼈대를 흔들었습니다. 일본의 덴메이 대기근, 인도의 찰리사 대가뭄, 1791년 도지바라 가뭄을 지나며 첫 번째 바카라은 '대엘니뇨'와 화산의 시대를 건너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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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바카라에서는 인류세로 들어섰습니다. 1809~1815년 조선의 화산성 소빙기 대가뭄,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최소 3,000만 명이라는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홀로코스트', 중국의 정무기황과 1906년 대홍수가 이어졌습니다.

그다음에는 1921년 소련 기근, 1928년 중국 대기근, 미국의 더스트볼, 세계대전 중 아시아의 기근들, 대약진 운동, 사헬과 에티오피아가 나왔고, 호주의 밀레니엄 가뭄과 2026년의 유럽·이란에서 글을 마쳤습니다.

하늘은 방아쇠를 당겼고, 총알은 사람이 만들었다

이 긴 기록에는 반복되는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가뭄은 하늘이 내렸지만, 그것이 기근이 되는 과정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뭄의 방아쇠는 대개 지구 자체의 리듬이었습니다. 엘니뇨와 라니냐, 화산 폭발이 뿌린 황산염, 태양 활동의 변화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같은 방아쇠가 당겨져도 결과는 달랐습니다. 1921년 소련은 가뭄과 기근을 인정하고 미국 구호기구의 도움까지 받아들였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같은 소련의 우크라이나에서는 기근이 공식적으로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외국의 도움은 거절됐고, 굶주린 사람들은 마을 밖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흑토 위에서 약 390만 명이 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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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대륙에서도 구조는 비슷했습니다. 인도에서는 식민지의 세금과 곡물 수출이, 에티오피아에서는 독재 정권의 강제 이주와 곡물 수탈이, 중국 대약진 때는 부풀려진 생산 통계와 숨겨진 사망이 가뭄을 기근으로 바꾸었습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은 기근이 식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식량에 닿을 권리를 잃을 때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론이 자유롭고 선거로 정부를 심판할 수 있는 나라에서는 대기근이 일어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굶는 사람의 목소리가 권력에 닿지 않는 슬롯에서, 가뭄은 가장 치명적이 됩니다.

기근이 끝난 뒤에도 남는 것들

기근은 사람이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28년 중국 북부에서는 허기를 달래려고 흙까지 먹었습니다. 1930년대 미국 대평원에서는 먼지 폭풍에 쫓겨 200만 명이 고향을 떠났습니다. 대약진 기근의 타격이 가장 컸던 지역의 생존자들은 평생 교육 성취에서 최대 3.8년의 손실을 겪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사헬의 가뭄 때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모리타니의 수도 누악쇼트는 1970년 4만 명에서 2000년 70만 명 이상으로 불어났습니다. 가뭄은 도시의 모양과 사람들의 인생, 그리고 후손의 삶까지 바꿔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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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연재를 쓰는 동안 가장 놀랐던 것은 마지막 글들을 과거형으로 쓸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2026년 8월 현재 유럽은 관측 사상 유례없는 폭염과 가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란에서는 한때 중동 최대의 소금호수였던 우르미아 호수가 바닥을 드러냈고, 수천 년 이어진 지하 수로가 말라 3만 개가 넘는 마을이 버려졌습니다. '물 파산'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시대가 된 것입니다.

게다가 올가을 태평양에서는 매우 강한 엘니뇨가 자라고 있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엘니뇨는 세계 곳곳에 가뭄과 홍수를 나눠 주는 기후의 시소이고, 18세기 말 인도를 덮친 도지바라 가뭄도 '대엘니뇨'와 맞물려 있었습니다.

물론 전망은 전망일 뿐이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지난 글들에서 본 풍경이 낯설지 않은 날이 올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다르게 할 수 있는 이유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많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니뇨는 몇 달 전에 예측되고, 위성은 지구 곳곳의 가뭄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국제 구호 체계도 갖춰져 있습니다. 더스트볼 이후 미국이 토양을 지키는 제도를 만들었듯, 아픈 경험에서 배워 바꾼 슬롯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아는 것과 움직이는 것 사이의 거리입니다.

하늘이 내리는 가뭄은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뭄이 기근으로 번지는 것은 사람이 막을 수 있습니다. 정보를 숨기지 않고, 도움을 거절하지 않고, 가장 약한 사람이 가장 먼저 굶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8만 년의 기록이 남긴 가장 단순하고도 가장 어려운 교훈입니다.

긴 이야기를 끝까지 함께 걸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