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품은 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by김별


기원전 2만 3천 년쯤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빌렌도르프에서
11센티미터의 여인이 발견되었다


풍만한 몸
두터운 배
가슴과 엉덩이

얼굴은 없었다


얼굴이 없는데도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
아이를 품고

먹이고

죽음 속에서도
다시 생명을 이어가는
대지다



그때 인간은
아직 성전을 짓지 않았다

경전을 쓰지도 않았다

하늘의 왕을 부르지도 않았다



그저
먹고, 사랑하고, 낳고
죽으며 살아갔다

그래서였을까


인간이 처음 올려다본 신은
하늘의 지배자가 아니라

땅의 어머니였는지도 모른다


씨앗을 품는 대지

비를 받아
곡식을 키우는 땅

아이를 품는
여인의 몸


생명은
품음으로 시작되었으니까



훗날
이시스가 나타났고

데메테르가 나타났고

아스타르테와
키벨레와
수많은 여신들이

생명과 풍요의 이름으로
인간 곁에 머물렀다


우리는 모른다

그들이 정말
인류 최초의 신이었는지

그 슬롯가 모계슬롯였는지도


그러나

전쟁보다 생존을 걱정하던 시절

약탈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중요했던 시절

힘으로 지배하기보다
함께 살아야 했던 시절


신도 어쩌면
칼을 든 신보다

생명을 품은 신에 가까웠을 것이다





농경이 시작되고

재산이 생기고

영토가 생기고

지켜야 할 것이 많아졌다


그리고 인간은
신의 얼굴도 바꾸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품에서
아버지의 권위로


대지에서
하늘로


생명에서
법으로


그리고 어느 순간
신의 손에는
칼과 번개가 들려 있었다


신들의 세계에도
인간의 역사가
비치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과 정복이 중요해질수록
신도 강해졌다


영토를 지키고
적을 물리치고
복종을 명령하는 신


가부장적 질서와 함께
힘의 신학이 자라났다.





나는 지금
빌렌도르프의 작은 여인을 생각한다.


인간은 처음부터
누군가를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이 너무 신비해서

그 생명을 낳고 품는 힘 앞에
고개를 숙였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최초의 기도는


비가 내리게 해주세요

곡식이 자라게 해주세요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오늘도
우리가 살아 있게 해주세요


거기에는
정복도 없고
승리도 없다


그저

생명을 이어가고
서로를 지키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은

가장 오래된 마음이 있었다


어쩌면 그 마음이
인류가 처음 만난

신의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작은 여인 하나가
수만 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의 우리에게 말한다



신은
강한 자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품는 마음속에서
처음 태어났다고



오스트리아 빈 자연사 박물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11cm의 소형 조각상으로 약 3만 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 유물로 추정된다.

1908년 8월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근교의 구석기 시대 지층에서 발굴되었고

현재 오스트리아 빈 자연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특징은 가슴, 배, 엉덩이 등 여성의 신체 부위가 매우 풍만하고 과장되게 묘사되어 있다.

얼굴 표현은 생략되어 있고 모자를 쓴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다.



#여신 #모계슬롯 #빌렌도르프비너스 #생명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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