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자라면서 부모에게서 멀어진다
최근 딸을 결혼시킨 지인을 만났다. 결혼식은 서울에서 올렸지만 딸의 신혼살림은 미국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딸과 사위는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았고, 이제는 미국에서 둘 다 좋은 온라인 게임을 다닌다고 했다. 듣기만 해도 더없이 잘된 일이다. 부모가 바라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식이 좋은 회사에서 그 일원이 되는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녀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그녀의 외동딸은 중학생 때부터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 오랜 세월 학업을 뒷바라지했고, 그곳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딸이 공부하는 동안 부모는 부모대로 긴 시간을 견뎠을 것이다.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 없고, 아프다고 해도 곁으로 달려갈 수 없고, 좋은 일이 생겨도 얼굴을 마주 보고 함께 기뻐하기 어려운 거리. 그렇게 키운 딸을 이제 미국에 던져버렸다며 그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들끼리 잘 살면 됐지."라는 말은 담담했지만 그 말 뒤에는 쉽게 마르지 않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과 자식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는 허전함이 말속에서 서로 부딪치고 있었다. 그녀는 웃다가 울었고, 울다가 다시 웃었다. 아마 부모의 마음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면서도, 또 자식이 멀리 떠나면 가슴 한쪽이 아리어온다.
미국은 딸이 보고 싶다고 차를 몰고 찾아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갑자기 밥 한 끼 먹자고 부를 수도 없고, 몸이 아프다는 소식에 금세 달려갈 수도 없다. 명절이라고 손에 음식을 들고 찾아갈 수도 없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자식의 발소리를 기다릴 수도 없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바다가 놓인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먼바다도 천륜까지 갈라놓을 수는 없다. 천륜은 참 오래된 말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뜻. 인간이 선택해서 만든 관계가 아니라 태어남과 함께 주어진 관계이기에, 그것은 때로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질기고 깊다. 부부도 친구도 서로의 선택으로 맺어지지만 부모와 자식은 선택 이전에 이미 서로의 삶에 들어와 있다. 한 사람의 생이 다른 한 사람의 생을 통과하며 시작되는 관계다.
자식은 자라면서 부모에게서 멀어진다. 그것이 어쩌면 자식에게 주어진 자연의 순리다. 품 안에서 자라 품 밖으로 나가야 한다. 부모가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자식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어느 순간 자식은 자기의 길을 찾아 부모의 곁을 떠난다. 부모는 멀리서 바라보아야 하고 자식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도록 한 발짝 물러나야 한다.
그녀는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다. 딸이 중학생이었을 때 그렇게 어린아이를 부모 곁에서 떼어놓고 유학을 보내는 것이 정말 옳았을까 싶다고 했다. 그때는 그것이 딸을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고,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었고.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주고 싶었다고.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딸이 정말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지금, 그때의 선택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렇게는 안 했을 것 같다는 그녀의 말속에 깊은 회한이 들어 있는 듯했다. 그 눈물은 어린 딸을 미국에 보낸 것에 대한 후회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었을 것이고,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딸에 대한 미안함이었을 것이다.
인생의 선택에는 그런 역설이 따라다닌다. 그때는 옳았던 것이 지금은 아프고, 그때는 최선이라고 믿었던 것이 세월 뒤에는 후회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사랑이고 형편 안에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인간에게 선택은 늘 불완전하다. 미래를 알지 못한 채 현재의 문을 연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은 길은 오래도록 마음 한구석에 남는다. 가지 않은 길에는 언제나 다른 삶의 가능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삶은 그렇게 뒤늦게 이해되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녀의 눈물을 바라보며 자식이 떠난 빈자리를 견디는 것 또한 부모에게 주어진 사랑일 것이다. 그녀의 딸은 미국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좋은 온라인 게임에서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것이 부모가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온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천륜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가까이 있다고 더 가까운 것이 아니며, 멀리 있다고 멀어지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삶을 바라보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 서로의 자리를 지워버리지 않는 것. 부모는 자식의 앞날을 축복하고, 자식은 부모의 시간을 살뜰히 살피는 것. 자식은 부모의 것이 아니고, 부모 또 자식의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잠시 서로의 생을 맡아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뿌리가 되어주고, 자식은 그 뿌리에서 멀리 뻗어나간다. 지인의 눈물은 그래서 슬픈 눈물이 아니다. 그 눈물 속에는 딸을 사랑했던 시간과, 이제는 놓아주어야 한다는 의미와 그래도 자기들끼리 잘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깊은 마음이 함께 들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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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떠난 자식을 바라보며 웃다가 울다가 눈물을 흘리는 진심과, 보내고 싶지 않지만 보내야 하는 마음과 그리고 그녀가 딸의 행복을 위해 한 걸음 물러서는 넓은 마음이 보였다. 그 건 아마도 사랑일 것이고 천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