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잘 맞는 사람이라는 환상

마음의 힘, 관계의 흐름 - 2

by류겸

15-1. 잘 맞는 사람이라는 환상


사람들은 좋은 인연을 이야기할 때 흔히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말이 잘 통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하며,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뜻일 것입니다. 취향과 가치관이 비슷하고 함께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관계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처음 만나 대화가 잘 통하고 공통점이 많으면 우리는 쉽게 “이 사람은 나와 정말 잘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관계가 힘들어지면 정반대의 말을 합니다. “우리 둘은 아무래도 안 맞는 것 같아.” 혹은 “내가 사람을 잘못 만난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말 속에는 ‘정말 잘 맞는 사람을 만났다면 이런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라는 믿음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잘 맞는 사람이 존재할까요.


물론 성격과 가치관, 생활 방식이 비슷한 사람끼리는 처음부터 편안함을 느끼기 쉽습니다. 좋아하는 음식과 취미가 비슷하고, 돈을 쓰는 기준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닮아 있다면 함께 지내는 일이 한결 수월할 것입니다.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비슷하다면 큰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도 갈등이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닮음은 분명 관계를 편안하게 해주는 중요한 조건입니다.


그러나 닮았다는 것과 잘 맞는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비슷한 두 사람이라도 모든 면에서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한 사람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늦은 밤에 집중이 잘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힘든 일이 생기면 곧바로 이야기해야 마음이 풀리지만, 다른 사람은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에게 돈은 미래를 위해 모아야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돈은 현재의 삶을 즐기기 위해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차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마음이 끌리는 동안에는 다른 점보다 닮은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같은 영화를 좋아하고,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같으며, 사람 많은 곳보다 조용한 공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은 가까워집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놀랄 만큼 비슷하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차이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처음에는 연락을 자주 해주는 모습이 다정하게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에는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무엇이든 꼼꼼하게 계획하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는데 함께 생활하다 보니 지나치게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자유롭고 즉흥적인 성격이 매력적으로 보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무바카라임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상대가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안 그랬잖아요”라고 말합니다. 물론 실제로 사람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상대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사람 안에 있던 모습을 내가 이제야 조금 더 많이 보게 된 것입니다.


관계의 초기에 우리는 상대의 모든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드는 모습은 크게 보고, 불편한 모습은 작게 봅니다. 아직 알지 못하는 부분은 자신의 기대와 상상으로 채우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라면 나를 이해해 줄 것 같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를 것 같다’, ‘우리는 별로 싸울 일이 없을 것 같다’는 기대가 실제 상대의 모습 위에 겹쳐집니다. 그래서 관계의 시작에는 상대의 실제 모습과 내가 보고 싶은 모습이 어느 정도 함께 존재합니다.


그런 기대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열리기 시작할 때 그 사람의 좋은 면이 먼저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문제는 내가 기대한 모습을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른 모습이 드러났을 때 그것을 ‘변했다’고 생각하면 실망이 커집니다. 그러나 관계가 깊어진다는 것은 상대의 좋은 모습을 더 많이 발견하는 과정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차이와 한계까지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시작에서는 “우리는 정말 비슷하네요”라는 말이 중요하지만, 관계가 깊어진 뒤에는 조금 다른 문장이 필요합니다. “당신에게는 그런 모습도 있군요. 그것도 당신의 한 부분이군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내가 기대한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벗어나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을 만나기 시작합니다. 관계가 환상에서 현실로 들어가는 순간입니다.


누군가와 잘 맞는다는 느낌은 분명 소중합니다. 대화가 잘 통하고, 웃음의 지점이 비슷하며, 함께 있어도 애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은 관계의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다만 그 편안함이 앞으로의 관계까지 보장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처음의 편안함은 두 사람 사이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지만, 그 관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는 결국 서로 다른 모습이 나타난 뒤에 드러납니다.

두 사람이 정말 잘 맞는지는 오히려 맞지 않는 순간에 더 분명하게 보입니다.


둘 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만났다고 해봅니다. 처음에는 공통된 취미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 잘 맞는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막상 함께 여행을 떠나보니 한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정을 꼼꼼하게 짜서 많은 곳을 보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은 아무 계획 없이 천천히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오래 머물고 싶어 합니다. 둘 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행을 즐기는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차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행이 계속되면 한 사람은 ‘왜 저 사람은 내 방식을 존중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왜 항상 내가 맞춰야 하지’라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때 두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여행 취향의 차이만이 아닙니다. 서로의 다름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자신의 방식을 당연한 기준으로 생각하면 상대의 방식은 잘못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침부터 움직이는 것이 좋은데 당신은 조금 여유롭게 보내고 싶은가 봐요. 오전에는 천천히 보내고 오후에는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면 어떨까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두 사람의 취향은 여전히 다르지만 그 차이를 함께 다룰 방법이 생깁니다.


바로 여기에 ‘잘 맞는다’는 말의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잘 맞는 관계는 모든 것이 같은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부분이 드러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다룰지 함께 찾아갈 수 있는 관계입니다.


우리는 흔히 궁합을 두 사람이 얼마나 닮았는가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관계에서 궁합은 닮음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비슷한 두 사람이 만나도 관계가 어려울 수 있고, 상당히 다른 두 사람이 만나도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차이가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그 차이가 관계 안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느냐입니다.


한 사람은 말을 많이 하고 다른 사람은 말수가 적을 수 있습니다. 그 차이 자체가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상대에게 끊임없이 반응을 요구하고, 말이 적은 사람은 모든 대화를 피하려 할 때 문제가 커집니다. 한 사람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 역시 반드시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고 다녀요?”라며 상대의 방식을 비난하거나, “왜 그렇게 답답하게 혼자 있어요?”라며 상대의 성향을 잘못된 것으로 규정할 때 차이는 갈등으로 변합니다.


차이는 갈등의 가능성을 만들 수 있지만 차이 자체가 곧 갈등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갈등은 그 차이에 어떤 의미를 붙이느냐에 따라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와 다르다’가 ‘나를 이해하지 않는다’로 바뀌고, ‘방식이 다르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로 해석되기 시작할 때 마음의 거리가 생깁니다.


다툼이 생겼을 때도 사람마다 반응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이야기해서 풀고 싶어 합니다. 감정을 오래 가지고 있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흥분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계속하면 오히려 더 심한 말을 하게 될까 봐 잠시 거리를 두려는 것입니다.


서로의 방식을 모르면 한 사람은 상대가 대화를 피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자신을 몰아붙인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더 가까이 다가가고 다른 사람은 더 멀리 물러납니다. 그러나 서로의 차이를 알게 되면 새로운 방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상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시간이 필요한 사람은 언제 다시 이야기할 것인지를 약속할 수 있습니다. 서로가 같은 방식으로 바뀐 것은 아니지만,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입니다.

이것이 관계에서 ‘맞춰간다’는 말의 실제 의미일 것입니다.


하지만 맞춰간다는 말을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계속 참고 양보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맞추는 것은 조율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관계는 원래 맞춰가는 것”이라는 말이 한 사람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조율에는 반드시 상호성이 필요합니다. 어떤 문제에서는 내가 상대에게 한 걸음 다가가고, 다른 문제에서는 상대가 나에게 한 걸음 다가와야 합니다. 두 사람이 조금씩 자신의 익숙한 자리에서 움직여 가운데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궁합을 생각할 때에는 ‘얼마나 잘 맞추는가’뿐 아니라 ‘누가 계속 맞추고 있는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관계가 오래되었는데 한 사람만 계속 지쳐 있다면 그것을 좋은 조화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차이를 맞춰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음식이 다른 것은 얼마든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차이입니다. 한 사람은 클래식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재즈를 좋아한다고 해서 관계가 어려워질 이유는 없습니다. 주말을 보내는 방식이나 친구를 만나는 횟수가 조금 다른 것도 서로 이야기하며 적절한 균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차이는 관계의 토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신뢰를 대하는 기준, 돈에 대한 기본적인 바카라임감, 가족과 자녀에 관한 생각, 폭력이나 모욕을 대하는 태도,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처럼 두 사람의 삶 전체에 영향을 주는 문제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와 같지 않습니다. 이런 영역에서 차이가 너무 크고 어느 쪽도 조율할 수 없다면 관계는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완벽하게 맞는 사람은 없으니 무조건 맞춰가면 된다’는 말도 온전한 진실은 아닙니다. 모든 관계가 노력만 하면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차이는 조율할 수 있고, 어떤 차이는 서로 인정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어떤 차이는 한 사람의 존엄과 삶을 지속적으로 훼손할 수도 있습니다.


성숙한 관계는 모든 다름을 견디는 관계가 아닙니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다름과 그렇지 않은 다름을 구별할 줄 아는 관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잘 맞는 사람을 찾는 일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삶의 중요한 가치가 어느 정도 비슷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있으며, 갈등이 생겼을 때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중요합니다. 다만 아무런 갈등도 없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사람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의 관계를 오히려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습니다. 자란 가정이 다르고, 사랑받은 방식이 다르며, 상처받은 기억도 다릅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다르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그렇게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잘 맞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무리인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관계가 시작된 뒤에 진짜 궁합이 드러납니다. 상대가 내 기대와 다를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내가 서운하다고 말했을 때 상대는 그것을 어떻게 듣는지, 상대가 나와 다른 의견을 말했을 때 나는 그것을 틀렸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다르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 갈등이 생겼을 때 두 사람은 서로를 공격하는지 아니면 문제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상처를 주었을 때 사과할 수 있는지, 사과를 받았을 때 다시 대화할 수 있는지, 같은 문제가 반복되었을 때 행동을 바꾸려는 노력이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이런 순간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두 사람의 궁합은 현실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진짜 궁합은 좋은 날보다 어려운 날에 더 잘 보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 친절한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 때 상대를 존중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견이 충돌하고 기대가 어긋났을 때에도 상대를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화가 났을 때 상대를 모욕하지 않는 것, 서운하다고 침묵으로 상대를 벌주지 않는 것,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것,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려는 것, 감정이 가라앉은 뒤 다시 대화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 이런 경험들이 반복될 때 관계에는 처음의 설렘과는 다른 종류의 신뢰가 생깁니다.


‘우리는 다를 수 있다. 그래도 다시 이야기할 수 있다.’

이 믿음은 관계를 단단하게 합니다.


처음의 편안함이 ‘이 사람은 나와 비슷하다’는 데서 온다면, 오래된 관계의 편안함은 ‘이 사람은 나와 달라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에서 옵니다. 어쩌면 진짜로 잘 맞는다는 느낌은 바로 그때 생기는지도 모릅니다.


처음부터 잘 맞아서 편안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어긋남을 지나 서로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게 되었고 그 차이를 다루는 방법을 함께 배웠기 때문에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피곤해서 말이 없다고 해서 곧바로 ‘나에게 화가 났나?’라고 불안해하지 않고,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한다고 해서 ‘나를 싫어하나?’라고 단정하지 않게 됩니다. 서로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과 관계의 리듬을 오랜 시간에 걸쳐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주어진 궁합이라기보다 함께 살아가며 만들어낸 이해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잘 맞는 사람’이라는 말의 의미도 조금 바꾸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 맞는 사람은 나와 모든 생각이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도 아니며,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도 아닙니다.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를 꺾으려 하기보다 함께 해결할 방법을 찾는 사람, 그리고 필요할 때 자신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나와 잘 맞춰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기준은 상대에게만 적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인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을 찾는 데에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내가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의외로 적게 묻습니다.


‘저 사람은 나와 잘 맞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나는 저 사람과 잘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인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나는 나와 다른 사람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도 만나게 됩니다.

누군가의 느린 결정이 유난히 답답하다면 나는 왜 기다리는 것을 어려워하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상대의 침묵이 견디기 어렵다면 그 침묵이 내 안의 어떤 불안을 건드리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상대가 자신의 의견을 고집할 때 지나치게 화가 난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일이 왜 나에게 그렇게 어려운지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 만나는 차이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동시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보여줍니다.

그래서 관계는 때때로 거울이 됩니다. “왜 저 사람은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할까?”라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왜 이것을 이렇게 불편하게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도착합니다. 그때부터 갈등은 상대를 평가하는 문제를 넘어 자신을 이해하는 문제로 확장됩니다.


다름에는 이런 힘이 있습니다. 닮은 사람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지만, 다른 사람은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법을 배우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과 지내면서 사랑에도 여러 언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모든 다름을 성장의 기회라고 아름답게 포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는 관계까지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의 존엄을 훼손하고 한 사람의 삶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며, 대화와 변화의 가능성마저 없는 관계라면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맞춰간다는 말에는 언제나 존중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존중이 사라진 관계에서 조율은 쉽게 희생으로 변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궁합을 만드는 중요한 조건은 완벽한 닮음이 아니라 상대를 나에게 맞게 바꾸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 태도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왜 나와 다르지?’라고 묻기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군요’라고 바라보고, 그다음에 ‘그렇다면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라고 묻는 것입니다.

사랑은 차이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차이가 있어도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생연분’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세상 어딘가에 나와 꼭 맞는 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관계의 모든 문제가 자연스럽게 풀릴 것 같은 낭만적인 기대가 그 말에는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관계가 보여주는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잘 맞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서로의 다른 생활 방식을 견디고, 말의 차이를 배웠으며, 수많은 오해를 풀고, 때로는 자신의 방식을 조금 내려놓으면서 둘만의 관계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함께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에게만 통하는 작은 질서가 생깁니다. 한 사람이 힘들 때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다툰 뒤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도 알게 됩니다. 어떤 말에 상처받는지 알고, 어떤 순간에는 말보다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것이 더 낫다는 것도 배웁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인 뒤 두 사람은 말합니다.

“우리는 참 잘 맞아요.”


하지만 그 한마디 속에는 처음에는 없었던 수많은 시간이 들어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날과 서운해서 등을 돌렸던 날, 다시 이야기하기 위해 마주 앉았던 날, 미안하다고 말했던 날, 조금씩 서로에게 양보했던 날들이 모두 그 말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잘 맞음’은 발견된 것만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궁합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가진 기질과 성향, 서로에게 끌리는 지점과 부딪힐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관계도 가능성만으로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좋은 가능성을 가진 관계도 돌보지 않으면 멀어질 수 있고, 처음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던 관계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우면서 깊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궁합은 완성된 답이라기보다 함께 살아가며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알아가고, 맞출 수 있는 것은 맞추며,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이고, 지켜야 할 경계는 지켜가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잘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누군가와 잘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일입니다.


완벽하게 맞는 사람을 찾겠다는 기대에서 조금 벗어나면 관계를 바라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상대의 차이가 곧 관계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게 되고, 갈등이 생겼다고 해서 곧바로 ‘잘못 만났다’고 결론 내리지도 않습니다. 대신 이 차이가 우리가 함께 조율할 수 있는 것인지, 서로가 조금씩 움직일 마음이 있는지, 다름 속에서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지를 묻게 됩니다.

그 질문에 두 사람이 함께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관계에는 여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잘 맞는 사람은 어쩌면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사람이 오랜 시간을 지나 가장 편안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차이가 어느 날 서로에게 필요한 균형이 되기도 합니다. 수없이 어긋나면서도 다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상대의 속도를 알게 되고, 말투를 이해하게 되며,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을 조금씩 알아갑니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둘만의 리듬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면 괜찮겠습니다.’


그 마음은 처음 만났을 때의 ‘우리는 정말 잘 맞는다’는 설렘과는 조금 다릅니다. 처음의 마음에는 기대가 많이 들어 있지만, 나중의 마음에는 이해와 선택이 들어 있습니다. 좋은 모습만 보고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부족한 모습과 나와 다른 모습까지 알고도 함께 걸어가고 싶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때 비로소 ‘잘 맞는다’는 말은 환상에서 현실이 됩니다.


잘 맞는 관계는 처음부터 모든 것이 맞는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의 다름을 없애지 않으면서도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낸 관계입니다. 그래서 궁합은 단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고 존중하며 맞춰온 시간 속에서 조금씩 완성되어갑니다.


□ 마음의 여운 ― 서로에게 맞아가는 시간 □

처음에는 닮은 것이 좋아서 가까워집니다. 같은 것을 좋아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며,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서로의 차이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나와 다른 속도와 생각, 다른 습관과 감정의 방식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우리는 선택하게 됩니다. 상대를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규정할 것인지, 아니면 ‘나와 다른 사람’으로 바라볼 것인지 말입니다.

모든 다름을 견딜 필요는 없습니다. 나를 잃으면서까지 상대에게 맞출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움직일 마음이 있다면 다름이 반드시 관계의 장애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그 다름을 통해 내가 넓어지고 상대도 넓어집니다.

그렇게 서로의 속도를 배우고, 말의 의미를 익히며,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다시 보폭을 맞추는 시간이 쌓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알게 됩니다. 잘 맞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맞춰올 수 있었다는 것을.

좋은 궁합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름을 간직한 채, 함께 걸을 수 있는 보폭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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