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같은 말, 다른 마음

마음의 힘, 관계의 흐름 - 2

by류겸

3부 감정의 결, 언어의 간극


14-1. 같은 말, 다른 마음


사람은 말을 통해 마음을 전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말하며,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서운하다고 말하고, 화가 났다고 말하며,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마음속에 있는 것을 언어로 옮기며 서로에게 다가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명 좋은 뜻으로 한 말인데 상대가 상처받을 때가 있습니다. 위로하려고 건넨 말이 비난처럼 들리고, 걱정해서 한 말이 간섭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아무런 뜻 없이 던진 한마디가 상대의 마음에 오래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요.”


말한 사람은 억울합니다. 하지만 듣는 사람도 억울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들렸어요.”


누가 맞는 것일까요. 어쩌면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는 틀리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말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의도가 있고, 듣는 사람에게는 그 말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그 말이 어떤 의미로 남는지는 두 사람 사이에서 결정됩니다.


그래서 같은 말이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도착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힘든 일을 털어놓습니다.

“요즘 정말 힘들어요.”

상대가 대답합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분명 위로하려고 한 말입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의 마음은 이상하게 허전합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은가 봐.’ 그렇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다른 날 똑같은 말을 들었는데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상대가 곁에 조용히 앉아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준 뒤 천천히 말합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말은 같지만 느낌은 다릅니다. 첫 번째 ‘괜찮아’와 두 번째 ‘괜찮아’ 사이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습니다.


말에는 사전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가 말했는지, 어떤 상황에서 말했는지, 어떤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단어만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놓여 있는 관계의 맥락까지 함께 듣습니다.


그래서 같은 “괜찮아”도 어떤 순간에는 ‘걱정하지 마, 내가 곁에 있을게’라는 뜻으로 다가오고, 다른 순간에는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라는 뜻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말의 사전적 의미는 같아도 마음에 도착한 의미는 다른 것입니다.


사람은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만 듣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보태어 듣습니다.


한 사람이 말합니다.

“오늘은 그냥 혼자 있고 싶어요.”


말한 사람에게는 단순히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었으니 조금 쉬고 싶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를 만나기 싫다는 뜻인가?’

‘우리 관계가 싫어진 것은 아닐까?’


한 사람에게는 휴식을 위한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거절의 말로 들린 것입니다.


과거의 관계에서 갑작스럽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혼자 있고 싶다”는 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혼자 있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여기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말은 현재에 있지만 듣는 마음에는 과거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만 생각해서는 부족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지나 그 말을 듣고 있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사전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늘 함께 있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사랑은 서로에게 충분한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관심은 자주 연락하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은 필요할 때 믿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같은 의미를 공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계의 어긋남은 때때로 바로 이 작은 차이에서 시작됩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의 말은 더 깊이 들어옵니다. 낯선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은 금세 잊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 오랜 친구가 한 말은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


별것 아닌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에게 들으면 마음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 사람의 평가가 나에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가족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오랜 친구가 나를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낯선 사람의 판단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친밀함은 편안함인 동시에 바카라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흔히 “우리 사이에 뭘 그런 걸 따져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반대인지도 모릅니다.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상대가 나를 믿고 자신의 마음을 더 많이 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함부로 말하면서 ‘내 마음을 알 테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안다고 해서 내가 건넨 말의 상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진심만큼 표현도 중요합니다.


관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어요.”


실제로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상처받았다고 말했을 때 이 문장부터 꺼내면 대화는 쉽게 막힙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비난하려고 한 말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나는 비난받는 것처럼 느꼈어요.”


두 사람의 말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비난할 의도는 없었지만 상대에게는 비난처럼 전달될 수 있습니다.


좋은 소통은 어느 한쪽이 맞고 다른 한쪽이 틀렸다고 가리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먼저 상대에게 어떻게 들렸는지를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내 말이 그렇게 들렸다면 많이 속상했겠어요.”


자신의 의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받은 상처도 인정하는 말입니다. 그런 다음에 자신의 마음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뜻이었어요.”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자신의 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설명은 변명처럼 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이 먼저 인정받으면 상대의 의도를 들을 여유가 생깁니다.


관계에서는 사실을 바로잡는 것보다 마음을 먼저 받아주는 일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미안해.”


이 짧은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심 어린 표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건네는 “미안해”는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러나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습관처럼 건네는 “미안해”는 점점 힘을 잃습니다.


“미안하다고 했잖아. 이제 됐지?”


그 순간 사과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대화를 끝내기 위한 말이 되어버립니다.


사과의 진정성은 ‘미안하다’는 단어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무엇이 미안한지 알고 있는지, 상대가 왜 아팠는지를 이해하려 하는지, 그리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행동이 달라지는지가 함께 따라야 합니다.


“내가 그날 당신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판단한 것이 미안합니다.”


길고 아름다운 사과는 아니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말과 마음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지 않을 때 말은 비로소 신뢰를 얻습니다.


말의 내용만큼 중요한 것이 말의 온도입니다.


“왜 이제 왔어요?”


이 한 문장도 얼마든지 다르게 들릴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람을 반갑게 맞으며 웃으면서 말할 수도 있고, 화가 난 목소리로 따지듯 말할 수도 있습니다. 걱정했던 마음을 숨기지 못해 울먹이며 말할 수도 있습니다.


문장은 같지만 전달되는 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말에는 내용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소리의 높낮이와 크기, 말하는 속도, 표정과 시선, 문장 사이의 침묵까지 함께 전달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말은 맞는데 기분이 나빴어요”라고 합니다. 내용은 틀리지 않았지만 그 말을 건네는 태도에서 무시당하거나 공격받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반대로 말은 서툴지만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머뭇거리던 사람이 조용히 말합니다.


“내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옆에 있을게요.”


세련된 문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표정과 기다림에서 진심이 느껴집니다.


우리는 완성된 문장만으로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말의 온도와 표정, 기다림과 침묵까지 함께 받아들이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갑니다.


침묵 역시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가 힘든 이야기를 하는 동안 말을 끊지 않고 조용히 들어주는 침묵은 위로가 됩니다. 반대로 화가 났다는 이유로 아무런 설명 없이 며칠 동안 상대를 외면하는 침묵은 벌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같은 침묵이지만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는 상대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침묵이고, 다른 하나는 관계를 차단하는 침묵입니다.


때로는 말을 멈춰야 비로소 상대의 마음이 들립니다.


상대가 이야기를 끝내기도 전에 해결바카라을 제시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꺼내면 정작 상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라져버립니다.


“나도 그런 적 있어.”


공감하려고 한 말입니다. 하지만 너무 빨리 나오면 대화의 중심이 상대에게서 나에게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잠시 머무는 편이 좋습니다.


“그랬군요.”


그리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침묵은 아무것도 없는 시간이 아닙니다. 때로는 상대의 마음이 들어올 자리를 비워두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동시에 그 말을 해석합니다.


“요즘 바빠 보여요.”


상대는 그렇게 말했을 뿐인데 나는 ‘나에게 소홀하다는 말이구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오늘 옷이 평소랑 다르네요.”


그 말을 듣고 ‘별로라는 뜻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혼자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마음에서는 ‘내가 필요 없다는 뜻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올라옵니다.


상대가 실제로 한 말과 내가 받아들인 말 사이에 작은 간격이 생긴 것입니다.


바로 그 간격에서 오해가 자랍니다.


우리는 상대의 문장을 자신의 기억과 두려움, 기대를 통해 해석합니다. 특히 감정이 올라와 있을 때 그 간격은 더 커집니다. 이미 서운한 마음이 있으면 평범한 말에서도 무관심을 읽고, 상대를 의심하고 있으면 작은 행동에서도 의심할 이유를 찾습니다.


그래서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특별한 능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잘못 읽었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그 말이 나는 조금 서운하게 들렸는데, 그런 뜻이었나요?”


이 질문 하나가 많은 오해를 막아줍니다. 자신의 추측을 사실로 만들어버리지 않고 상대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갈등이 생기면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내가 틀린 말 했어요?”


사실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계에는 사실의 차원과 감정의 차원이 함께 존재합니다.


시험을 망치고 돌아온 아이에게 부모가 말합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공부하라고 했잖아.”


틀린 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말은 그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많이 속상하겠다.”


그 한마디가 먼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공부 이야기는 그다음에도 할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이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의 자리를 먼저 만드는 것입니다. 옳은 말도 때를 잃으면 상처가 되고, 평범한 말도 필요한 순간에 도착하면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성숙한 소통에는 정확성뿐 아니라 순서가 필요합니다. 먼저 마음을 만나고, 그다음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생각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당신이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알고 싶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감은 동의와 다릅니다. 상대의 판단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입장을 포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에서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잠시 바라보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떻게 느낄까?’라는 질문만으로는 부족할 때도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금 다르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어떤 경험을 해왔기에 지금 이렇게 느끼고 있을까?’


그 질문을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데서 조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좋은 관계는 서로의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생각이 다를 때에도 상대의 마음이 존재할 자리를 남겨두는 관계입니다.


반대로 갈등이 깊어지면 우리의 말은 쉽게 커집니다.


“당신은 항상 그래요.”


“당신은 한 번도 내 마음을 이해한 적이 없어요.”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요.”


한 번의 행동이 어느 순간 그 사람 전체에 대한 판단으로 바뀝니다.


“어제 연락하지 않아서 서운했어요.”


이 말은 특정한 행동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원래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면 대화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행동에 관한 이야기가 존재에 대한 공격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돌아보고 사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다고 느끼면 자신을 방어하려 합니다.


그래서 관계에서는 ‘당신은 어떤 사람이다’라고 규정하기보다 ‘당신의 행동을 내가 어떻게 느꼈다’고 말하는 편이 좋습니다.


“늦게까지 연락이 없었을 때 걱정됐고 조금 서운했습니다.”


그 말에는 상대를 규정하는 판단보다 자신의 경험이 들어 있습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이런 마음의 번역이 필요합니다.


오래 함께한 사람에게 우리는 쉽게 생각합니다.


‘이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하지만 오래 함께했다고 서로의 마음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익숙함 때문에 확인하지 않는 일이 많아집니다.


“내가 왜 화났는지 정말 몰라요?”


상대는 정말 모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더 정확하게 번역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이 늦어서 화가 난 것보다 아무 연락이 없어서 내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그제야 겉으로 드러난 화 뒤에 있던 서운함이 보입니다.


“당신이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싫은 게 아니라 요즘 우리 둘만의 시간이 너무 없어서 외로웠어요.”


질투처럼 보였던 감정 뒤에서 외로움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내가 자꾸 묻는 것은 당신을 못 믿어서라기보다 혹시 잘못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에요.”


간섭처럼 보였던 행동 뒤에서 걱정이 드러납니다.


물론 좋은 의도가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통제해서도 안 되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처 주는 말을 반복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할수록 두 사람이 무엇 때문에 부딪히고 있는지는 훨씬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요구도 말의 온도를 바꾸면 다르게 들립니다.


“당신은 왜 내 말을 하나도 안 들어요?”


라는 말에는 비난이 먼저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보입니다.


“맨날 늦잖아요.”


라고 말하는 대신,


“기다릴 때 걱정되니까 늦으면 연락해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소통은 화려한 말하기 기술이 아닙니다. 상대를 공격하는 대신 자신의 마음과 바라는 것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전하는 일입니다. 말의 모양을 꾸미는 것보다 말의 온도를 조절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온도는 결국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상대를 이겨야 할 사람으로 바라보면 아무리 부드러운 문장을 사용해도 공격적인 마음이 묻어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표현이 조금 서툴러도 그 진심이 전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말을 하기 전에 한 번쯤 자신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이기고 싶은 것일까?’


이 질문 하나가 말의 방향을 바꿉니다.


관계에서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마음은 서로를 향하고 있는데 말이 계속 어긋나는 경우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걱정되어 말합니다.


“안정적인 온라인 게임을 구해야 하지 않겠니?”


자녀에게는 그 말이 ‘부모님은 나를 믿지 않는구나’라고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속에는 ‘네가 힘들게 살까 봐 걱정된다’는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연인이 말합니다.


“도착하면 연락해.”


상대는 간섭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한 사람에게는 그저 ‘무사히 도착했는지 알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과 표현 사이에는 언제나 작은 간격이 있습니다. 그 간격을 그대로 두면 오해가 쌓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말 뒤의 마음을 한 번 더 설명해야 합니다.


“당신을 못 믿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걱정돼서 그래요.”


듣는 사람도 다시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나를 못 믿어서 하는 말처럼 들렸는데, 걱정돼서 그런 거였어요?”


이 짧은 확인이 마음과 언어 사이의 간격을 좁혀줍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함께한 사람이라도 완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마음은 어제와 다르고, 같은 사람도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좋은 관계에 필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알아맞히는 능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묻는 능력입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나요?”


“그 말은 이런 뜻인가요?”


“지금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신의 해석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잘못 이해했네요.”


이 짧은 말은 관계에서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집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설명할 자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소통은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기술이라기보다 상대의 마음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말은 몇 초 만에 사라지지만 마음속에서는 아주 오래 남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들었던 한마디를 수십 년이 지나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너라면 할 수 있어.”


그 한마디가 힘든 순간마다 다시 떠오르기도 합니다.


반대로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라는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말은 소리로는 금세 사라지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오래 살아갑니다. 그래서 관계에서 말에는 바카라임이 따릅니다.


그렇다고 매 순간 완벽한 말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합니다. 화가 나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기도 하고,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위로를 건네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잘못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시 말할 수 있는가입니다.


“아까 내가 한 말은 잘못했습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니 충분히 상처가 될 수 있었겠어요.”


“다시 말해도 될까요?”


관계에는 이렇게 다시 말할 기회가 필요합니다. 한 번의 잘못된 문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어떤 대화를 이어가는가입니다.


결국 소통은 정확한 문장을 주고받는 일만은 아닙니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가능한 한 정직하게 표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듣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해석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단정하지 않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한 사람은 말하고 한 사람은 듣습니다. 그러나 좋은 대화에서는 그 역할이 계속 바뀝니다.


“내 말이 어떻게 들렸어요?”


“나는 조금 서운하게 들렸어요.”


“그렇게 들렸군요.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뜻이었어요.”


이렇게 마음과 말 사이를 몇 번 오가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당신은 그런 마음이었군요.’


그 순간 대화는 누가 옳은가를 가리는 자리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자리로 바뀝니다.


같은 말을 해도 우리는 다르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관계의 실패가 아닙니다. 사람은 서로 다른 기억과 경험, 기대와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간격입니다.


문제는 그 간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간격을 확인하지 않은 채 상대의 마음을 단정하는 데 있습니다.


좋은 관계는 그 사이에 다리를 놓습니다. 묻고, 듣고, 다시 말하고, 잘못 이해했다면 고쳐 듣습니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의 언어를 배워갑니다.


오래된 관계가 깊어지는 것은 처음부터 모든 말이 잘 통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수많은 오해와 엇갈림을 지나면서 서로의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배웠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관계의 깊이는 얼마나 많은 말을 주고받았는가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한마디를 건네더라도 그 말 뒤에 있는 마음을 알고 싶어 하는지, 잘못 전달되었을 때 다시 설명할 수 있는지, 상대의 말이 내 예상과 다를 때 다시 물어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말은 마음을 완벽하게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불완전한 말로 서로에게 다가갑니다. 때로는 어긋나고, 때로는 잘못 알아듣고, 때로는 한참 뒤에야 이해합니다.


그래도 다시 말하고, 다시 듣습니다.


그 노력이 쌓일 때 언어의 간극은 조금씩 좁아지고 서로 다른 두 마음은 비로소 만날 자리를 찾습니다.


같은 말이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닿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소통은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 뒤의 마음을 다시 묻는 데서 시작됩니다.



□ 마음의 여운 - 말과 마음 사이 □


우리는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말을 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깊어 말이 모자랄 때도 있고, 마음과 다른 말이 먼저 튀어나올 때도 있습니다. 좋은 뜻으로 건넨 말이 상처가 되고, 서툴게 건넨 한마디가 오래도록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말과 마음 사이의 작은 간격이 있습니다. 그 간격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대신 한 번 더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나요?”


그리고 다시 말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은 사실 이랬습니다.”


그렇게 한 번 더 묻고, 한 번 더 듣고, 한 번 더 설명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 배워갑니다.


좋은 관계는 처음부터 모든 말이 통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말이 어긋났을 때 돌아서지 않고, 그 말 뒤에 있던 마음을 다시 만나려는 관계입니다.


말은 서로 다르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을 알고 싶습니다’라는 태도가 남아 있다면, 두 사람의 언어는 다시 서로에게 닿을 수 있습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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