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자의 등불

어둠을 견디는 자만이 가진 작고 서늘한 빛

by백이안

둘째 마디 굳은살 아래


가장 먼저 단단한 어둠이 깔렸다.



화면 위를 가볍게 미끄러지는 자판,


백스페이스 하나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던


세상의 수많은 기교들.




그러나 언어 끝이 살갗을 베고 들어와


뼈마디를 두드리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깊은 밤이 오면


내 몸은 통증으로 구부러진 획(劃)이 된다.




늙은 등불 하나 손에 쥔 채


어두운 산맥으로 걸어 들어간 은둔자.



그 빛이 비추는 것은 길이 아니라


뒤에 남겨진 자국들뿐이다.




글자 속에 묻혀버린 삶의 얼굴들.


종이 위에 얼어붙은 낱말들.




서로를 품었다가, 마침내 밀어내는


적어 내리는 자의 멍에와


지켜보는 자의 침묵.




얼어붙은 문장들이 차갑게 굳어 있다.




나는 비로소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저 아득한 빈칸의 깊이를 오랫동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