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긍정하는 일

영화 HOPE

byMay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기대다. 보이지 않는 것이 내가 상상하는 그 모습 그대로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삶 자체다. 자신의 삶을 꽉 잡아 두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확신할 수 있는 이는 없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삶이라는 것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내 앞에 현현하는 순간 나는 길을 잃어버린다. 다시 말하자면 터무니없지만, 믿음이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삶을 미리 긍정하는 일이다.


"도대체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호프의 막바지에 이르러 등장하는 대사다. 대부분의 사건이 일단락되어 가는 듯했는데, 어마 무시하게 거대한 우주선이 하늘에서 추락하고 산 하나가 통째로 날아간다. 하나씩 쌓아 올린 믿음들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순간이다. 성애(정호연)는 범석(황정민)에게 자신의 계획에 대해 늘어놓는다. "마을 사람들에게 무기를 분출하고 무장을 시켜서..." 대답은 무력하다. "넌 그렇게 해. 난 마음이 좀..."


나홍진 감독은 곡성에서도 그랬지만, 호프도 뒤죽박죽 얽혀 있는 선택과 결심 그리고 행동 끝에 그 사건의 배후에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 순간 인간은 자신의 이해와 선택이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마주한다. 마을 사람들을 다 잃고, 괴물을 죽이려다 친구를 죽이고, 엉망진창이 되어서야 그 흑막을 목도한 이는 더 이상의 기대를 품을 수 없다. 자신이 믿어온 세계와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는 세계 사이의 압도적인 간극이다. 부조리다.


마을 하나를 압도할 정도로 강력한 외계인과의 싸움에서, 영화는 반복해서 똥 얘기를 꺼낸다. 똥은 무엇인가. 밀란 쿤데라는 인간의 삶에서 추하고 끔찍한 면을 소거해 버리고, 아름답고 거창한 껍데기 만을 남기려는 태도 혹은 경향을 '키치(Kitsch)'라고 불렀다. 그 키치에 대한 반박 불가한 거부가 바로 똥이다. 똥은 인간의 몸을 작동시키기 위해 주입한 음식이 제 역할을 다 하고 소화된 찌꺼기이다. 숲에서의 전투를 떠올려 보자. 성기(조인성)는 친구가 죽어 분노를 한 와중에, 시체 더미에서 음식을 찾아내 아무렇지 않게 집어먹는다. 도덕은 당장 칼로리를 보충해야 하는 육체의 시급함 앞에서는 유예된다 아무리 위대한 신념으로 삶을 포장하고, 숭고한 의미를 덧입히려 해도 인간은 먹고 싸는 존재다.


똥 농담은 거창한 의미를 가차 없이 깨부순다. 마을 사람들을 지켜내려는 숭고한 싸움? 세상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외계인은 마을을 초전박살내고, 하나를 죽이니 여러 마리가 등장하고, 겨우겨우 살았더니 산 하나가 통째로 날아간다. 인간은 발버둥을 쳐봐야 결국 나약한 몸뚱이라 안에서, '인간'이라는 명확한 한계 안에서 무력하게 그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똥은 인간이 끝내 벗어날 수 없는 육체의 흔적이다.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든 일들을 마주하고 난 마을 사람들이 조금 이상하다. 사람이 죽었는 데도 농담을 주고받고, 총을 들고 싸우고, 다시 맞서 싸울 생각을 한다. 오직 범석(황정민)만이 주저한다. 아기 외계인을 죽였다는 죄바카라감에 시달리고, 결정적으로 외계인을 처치할 수 있던 순간에 두려워하는 눈을 보고 총을 쏘지 못한다. 다시 결말로 돌아가자면, 이 모든 상황에 대한 그의 답은 "모르겠다"이다. 유일하게 인간적인 마음을 가진 이에게 관객은 자연스레 이입할 수밖에 없다. 범석은 인간의 전형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는 한없이 나약하고, 발버둥 치고, 좌절한다.


그러면 우리에겐 HOPE는 없을까. 있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삶의 의미가 완벽한 승리나 거창한 계획의 완수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믿음이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삶을 미리 긍정하는 일이다. 어쩌면 인간은 그렇게 터무니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를 배신하는 순간 좌절한다. 이 지난한 반복이 삶이라면, 삶이 나를 배반할지라도 우리는 조금 의연해질 수 있다. 마음이 조금 이상할지라도, 타자에 대한 연민을 품고,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지극히 인간적인 삶이다. 우리는 거대한 불확실의 세상에 맞서 우리는 그런 것들을 부여잡고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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