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볼수록 정드는 이유는?

by최환규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람을 스쳐 지나간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늘 같은 칸에 타는 승객, 동네 카페에서 자주 마주치는 바리스타, 혹은 옆 부서에서 서류를 들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동료까지 많은 사람과 만난다. 이들과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고 이름조차 모르지만, 어느 날 문득 친근감을 느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반대로 처음 보는 사람은 아무리 인상이 좋아도 어딘가 모르게 경계하게 된다.

왜 사람은 자주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될까? 여기에는 인간의 마음과 뇌가 작동하는 아주 흥미로운 비밀이 숨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단순 노출 효과’라고 부른다. 단순 노출 효과는 우리가 매일 겪는 일상적인 마음의 변화다.


뇌는 생각보다 겁이 많고 보수적이다. 인류의 조상들이 거친 야생에서 살아가던 시절을 떠올려보자. 수풀 사이로 처음 보는 낯선 동물이나 마주친 적 없는 다른 부족이 나타났을 때, ‘우와 신기하다! 친하게 지내야지’ 하고 다가갔던 조상들은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반면 ‘처음 보는 존재는 일단 위험할지 모르니 경계하자’라며 숨거나 도망쳤던 이들이 생존 확률이 높았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낯선 것은 위험할 수 있다’라는 생존 본능이 깊게 새겨져 있다.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긴장하고 어색해하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 낯선 대상을 두 번, 세 번, 열 번 반복해서 마주치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뇌는 상황을 다시 판단하기 시작한다. ‘어라? 저번에 봤을 때도 나를 공격하지 않았네?’, ‘오늘도 그냥 지나가네?’라는 경험이 쌓이면서 뇌는 마침내 그 대상에게 ‘안전마크’를 부여한다. 경계심이 풀린 자리에 편안함이 찾아오고, 그 편안함이 곧 호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자주 보는 것만으로도 호감이 생기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이 ‘경계심의 무장해제’에 있다.


우리가 자주 보는 사람에게 끌리는 또 다른 이유는 뇌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뇌는 우리 몸이 쓰는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소비하는 기관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에너지를 아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할 때는 뇌가 풀가동된다. ‘저 사람은 어떤 성격일까?’, ‘나에게 호의적일까?’, ‘무슨 말을 해야 실례가 안 될까?’ 등 수많은 정보를 분석하느라 뇌는 금방 지치고 만다. 반면, 이미 여러 번 봐서 눈에 익은 사람을 볼 때는 뇌가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는다. 얼굴 생김새, 걸음걸이, 풍기는 분위기가 이미 뇌 속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다시 볼 때는 그저 '확인'만 하면 된다.


뇌는 정보를 처리할 때 힘이 들지 않으면 ‘기분이 좋다’ 혹은 ‘저 사람이 마음에 든다’라고 착각하게 된다. 인지하기 편해서 느끼는 마음의 여유가,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으로 둔갑하는 셈이다.

이 효과가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강력하다. 거창한 말솜씨나 뛰어난 외모를 가지지 않았더라도 그저 상대의 시야에 자주 머무는 것만으로도 관계의 출발선을 훨씬 앞으로 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라는 속담이 이런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수줍음이 많아 말을 잘 못 했거나, 다소 어색한 인상을 남겼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특별한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자주 마주치며 얼굴 도장을 찍는 것만으로도 초반의 부정적이거나 어색했던 인상은 서서히 옅어진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익숙함은 첫인상의 벽을 부드럽게 녹여낸다.

온라인 게임이나 모임에서 특별히 교류가 없던 사람과도 자주 마주치다 보면 어느 날 먼저 인사를 건네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서로에게 이미 ‘안전한 사람’이라는 무언의 합의가 생겼기 때문이다. 가벼운 눈인사나 미소와 함께 자주 노출되는 것은 단단한 인간관계의 성벽에 언제든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을 내는 것과 같다.

다만 이 마법 같은 효과에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무조건 많이 보여준다고 해서 호감이 무한정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전제 조건이 붙는다.


첫째, 초기 호감도가 최소한 중립 이상이어야 한다. 만약 첫 만남에서 상대에게 무례하게 행동했거나 큰 실망을 주어 이미 비호감으로 찍혔다면 자주 마주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싫어하는 사람을 자주 보면 볼수록 스트레스와 불쾌감만 더 커질 뿐이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될 수 있으니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 최소한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상태에서 자주 마주쳐야 한다.


둘째,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온종일 반복해서 들으면 질리는 것처럼 상대의 사생활을 침해할 정도로 과도하게 눈앞에 나타나거나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면 호감은 순식간에 거부감으로 바뀐다. 신선함을 잃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센스가 필요하다.


인간관계가 어렵고 타인의 마음을 얻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대단한 비법을 찾곤 한다. 멋진 유머를 구사해야 할 것 같고, 비싼 선물을 해야 할 것 같으며, 완벽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우리 마음의 빗장을 여는 가장 강력한 열쇠는 의외로 소박하다. 그저 상대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다. 거창한 대화가 아니어도 좋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지나치고, 마주칠 때마다 가볍게 목례를 나누는 그 짧은 순간들이 쌓여 단단한 신뢰의 밑거름이 된다.


인간관계의 시작은 언제나 서툴고 어색하다. 하지만 자주 마주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의 뇌는 부지런히 경계심을 지우고 친근함을 채워 넣고 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다면 조급하게 다가가는 대신 그 사람의 풍경 속에 부드럽게 머물러보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익숙함이 호감으로 피어나는 시간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아늑하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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