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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도 전지가 필요하다

by도르가

19화-마음에도 전지가 필요하다



오늘은 아침 일찍 제부도 공사 현장에 나가 수목 식재 작업을 했다. 땅을 고르고 나무를 심고, 웃자란 가지는 전지했다. 나무 사이에는 키 작은 쥐똥나무를 심고, 뿌리까지 닿도록 물을 넉넉히 주었다. 이곳에서 쑥쑥 잘 자라 달라는 마음도 함께 주었다. 무성하게 자란 가지를 그대로 두는 건 나무를 아끼는 일이 아니다. 서로 얽힌 가지와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 내야 햇빛이 들고 바람도 통한다.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꾸 사람 사이의 일이 겹쳐 보인다. 잘라야 할 때는 자르고, 다듬어야 할 때는 다듬어야 한다. 오가는 마음을 그냥 내버려둔다고 관계가 저절로 건강하게 자라지는 않았다. 최근 두어 달 동안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소중하게 생각했던 관계에서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받았고, 고구마 백 개를 먹고 체한 것처럼 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혔다. 처음에는 원망했고, 그다음에는 화가 났다. 그 화를 그대로 쏟아내면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깊은 상처가 남을 것 같아 꾹꾹 눌러 두었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은 몸에 남았다. 운전하다가 울기도 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려고 더 웃고 더 걸었다. 머리로는 다 지나간 일이라 했는데 몸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젊었을 때의 거칠고 뾰족한 곳은 예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조금씩 깎여 나가는 중이다. 나는 아직 공사 중인 삶을 살고 있고, 이번 일로 또 하나의 거친 면을 만났다.



<무엇이 여자를 분노하게 만드는가> 의 저자 해리엇 러너는 "분노는 어떤 신호, 귀 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는 신호"라고 말한다.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참았거나, 마음의 경계를 침범당했거나, 반드시 해야 할 말이 남아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한다.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마음속에 일렁이는 이 녀석의 정체가 무엇인지 오래 들여다보았다. 큰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얼굴을 푹 담그고 눈을 껌뻑이며 따갑고 불편한 것을 참는 것처럼. 나는 상대를 미워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소중한 관계였기에 충격이 컸고, 그래서 함부로 정리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쩔때는 생각나는 말을 그대로 해버릴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150권 정도의 바카라을 읽었다. 독서 모임에서 매일 기록하고, 완독한 뒤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후기에서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배웠다. 성경을 읽고 필사하면서 내 인격이 전보다 조금은 성숙해지기를 바랐다. 바카라을 많이 읽는다고 상처를 받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똑같이 되갚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긴 글을 썼다. 어떤 말과 행동 때문에 상처를 받았는지, 그때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앞으로는 어떤 거리가 필요한지를 적었다. 김혜남 작가의 <당신과 나 사이>에는 "상처 주기도 싫고 상처받기는 더 싫은 사람들에겐 거리가 필요하다"는 문장이 있다. 거리를 둔다는 건 상대를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지금 상태로 더 큰 상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잠시 물러서는 일이다. 가까웠던 관계를 무조건 붙드는 것도, 무 자르듯 싹둑 끊어내는 것도 답은 아니었다.



가지를 자르는 건 나무가 미워서가 아니다. 어떤 가지가 수형을 흐트러뜨리는지, 어떤 가지끼리 부딪치며 상처를 내는지 살핀 뒤에 잘라야 나무가 다시 균형을 잡는다. 사람 사이에도 전지가 필요하다. 계속 찌르는 말은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고, 반복되는 무례에는 선을 그어야 한다. 내가 잘못한 부분은 다듬고, 표현해야 할 마음은 숨기지 않아야 한다. 관계를 지킨다는 이유로 참기만 하면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고 몸까지 엉켜 버린다.



벌어진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될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거리를 두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자리에 머물 수도 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전지를 마친 나무 주변에는 잘린 가지들이 수북이 쌓였다. 그 가지들을 치우고 깔끔해진 정원을 보니 내 마음도 한편이 정리된 것 같았다. 모나고 거칠어진 마음은 그냥 둔다고 정리되지 않는다. 내가 움직여야 하고, 연장을 들어야 한다. 무엇을 잘라 내고 무엇을 다듬을지는 내가 정해야 한다. 당분간은 그 거리 속에 시간을 두고 지켜보려 한다.



오늘의 조경 용어|전지

나무의 건강과 모양을 위해 불필요하거나 서로 얽힌 가지, 병든 가지를 잘라 내는 작업이다. 가지를 무조건 많이 자르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상태와 수형을 살펴 알맞게 정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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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무 사이로 흐르는 정원길-2.png
정성스러운 가지치기와 돋아난 새잎-4.png
바닷가에 막 심은 어린 나무-3.png
정돈된 해안 정원, 잔잔한 바다-5.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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