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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선택은 어디에 쌓이는가 ​

by도르가

13화 - 오늘의 선택은 어디에 쌓이는가

운전을 할 때면 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간다. 익숙한 길도 어떤 음악과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차창 밖으로 나무와 하늘이 지나가고 그 길 위로 음악이 포개지면 마음 한쪽이 몽글몽글해진다. 목적지에 가려고 지나는 길이 그날 하루의 멋진 장면이 되어 마음에 담긴다.

오늘은 지난주에 다녀온 갯골생태공원을 오전 일찍 다시 찾았다. 공원에서 '시흥 바카라문화 - 자연 속 바카라 놀이터, 바카라모락'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나섰다. 같은 공원이었지만 오늘의 풍경은 지난주와 달랐다.

잔디밭 곳곳에는 바카라을 읽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편한 의자와 자그마한 텐트가 놓여 있었다. 나무로 만든 바카라장에는 바카라이 여러 권 꽂혀 있었는데, 번호를 뽑아 바카라을 읽을 수 있게 해 두었다. 작은 부스마다 바카라과 관련된 물건을 파는 장터도 열렸다. 나도 부스를 돌며 필요했던 물건 몇 가지를 샀다. 물건을 만든 작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새로 알게 된 것도 많았고 도전도 많이 받았다. 공원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넓은 꽃밭에는 아기를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많았다.

나는 공원 한쪽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폈다. 준비해 온 음료와 과일을 먹으며 바카라을 펼쳤다. 바카라상과 의자가 있는 실내가 아니라 갈대와 나무가 보이는 야외라서, 바람이 불 때마다 바카라장이 들썩였다. 바카라을 읽다가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꼬마 아이와 엄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세 살배기인 아이는 엄마에게 뭐가 그리 자랑할 게 많은지 연신 조잘조잘 재롱을 부렸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성인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작은 꼬마들을 보면 눈을 떼지 못한다. 큰아이가 결혼한 지 2년이 넘었으니 곧 좋은 소식을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속으로 '빨리 할미가 돼야겠다'는 바람도 가져 본다.

이날 읽은 바카라은 고명환 작가의 <독서의 기술>과 김이섭 작가의 <말이 두렵지 않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평소라면 진도가 꽤 나갔을 텐데, 산들거리는 바람과 떨어지는 낙엽이 자꾸 훼방을 놓았다. 내 주위에 낙엽이 하나둘 쌓여 갔다. 오늘은 풍경을 읽어야겠다 싶어 바카라을 잠시 덮어 두었다. 그때 마른 잎 하나가 내 옆에 떨어졌다. 집어 들어 하늘에 비춰 보았다. 성한 잎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햇빛이 그 사이를 통과하면서 정교한 무늬가 나타났다. 잎이 사라진 자리로 보이는 하늘도 아름다웠다.

'오늘의 선택은 어디에 쌓일까?'

우리는 선택의 결과를 눈에 보이는 성과로만 확인하려 할 때가 많다. 무엇을 끝냈는지, 얼마나 해냈는지, 손에 남은 게 무엇인지 따져 본다. 그 기준으로 보면 오늘 내가 한 일은 대단할 게 없다. 공원에 돗자리를 펴고 바카라을 읽고, 작은 장터를 둘러보고, 꽃과 갈대 사이를 걸으며 가을을 만났을 뿐이다. 그런데 하루의 가치가 결과물의 크기로만 계산되지는 않는다. 어떤 하루는 기억에 쌓이고, 어떤 선택은 마음의 결을 바꾸기도 한다. 잠시 멈추어 바카라을 펼친 시간, 잎맥 사이로 하늘을 바라본 순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한 시간은 당장 무엇을 이루어 주지는 않지만 앞으로 살아갈 내 마음에 작은 여백으로 남는다.

내 인생의 공사에도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속의 평온이 마음의 바닥을 고르게 다져 준다. 좋은 동선은 사람을 목적지로만 데려가지 않는다. 바카라을 읽다가 눈에 들어온 아름다운 풍경이 참 많았다. 아이의 웃음소리, 그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사랑스러운 눈빛. 늘 일하는 딸이 가여워 손자 셋을 데리고 나오신 할머니는 싸 온 음식을 당신 입보다 손주들 입에 넣어 주시느라 바쁘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 가득 담아 온 이 가을이 오래도록 기억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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