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실패한 자리에서 다음 공정이 시작된다
지난주에는 공원 공사를 앞두고 현장을 다녀왔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나무와 시설물의 상태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었다. 현장에서 확인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업 계획서를 만들고, 오늘은 담당자를 만나 회의를 하고 왔다. 예전에는 운동을 하거나 나들이를 가던 공원이었는데, 이제는 직업과 연결이 되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나무 한 그루, 시설물 하나도 더 자세히 보게 된다.
공원에는 베어 내야 할 나무와 철거해야 할 시설물이 있었다. 철거한 자리에는 보수공사를 한 뒤 새로운 것을 설치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세우지 않고 정리만 하기도 한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걷어 낼지는 현장을 직접 살펴봐야 결정할 수 있다.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철거할 곳을 생각하다가 '실패한 자리에서 다음 공정이 시작된다'는 제목이 떠올랐다.
오래되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시설물을 철거한다고 해서 그 공간 전체가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걷어 내야 풍경이 더 아름다워지기도 하고, 다른 공간으로 쓰이기도 한다. 나무도 무조건 남겨 두는 것만이 좋은 관리는 아니다. 상태를 살펴 위험한 나무는 제거하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바람길이 막혀 있다면 가지를 잘라 줘야 나무도 숨을 쉰다. 나무가 고사한 자리에 새 나무를 심어야 할 때도 있다.
사람은 시작한 일을 중간에 그만두거나 실패하면 그 시간을 모두 잃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계획한 결과를 얻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한 번의 실패 때문에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좌절감에 빠지지는 않으면 좋겠다. 나도 한때는 실패한 일을 두고 자바카라하며 나를 비관한 적이 있다. 한 번 잘못 선택한 결과 때문에 그동안 살아온 방향까지 모두 틀렸다고 생각했다. 온 세상에서 나만 실패한 사람 같았고, 다시 시작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결론을 미리 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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