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을 쓰며 엄마의 시간을 오래 생각했다. 엄마의 하루에는 식당과 손님 네 명의 자식이 있었지만, 엄마 자신을 위해 남겨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먹고사는 일에 내 하루를 다 쓰지 않겠다고 적었다. 그 글을 쓰고 나니 퇴근길마다 바라보던 가로수가 생각났다. <내 인생은 아직 공사 중입니다>라는 제목을 처음 떠올린 곳도 그 길이었다.
나는 출퇴근길에 가로수를 자주 본다. 조경 일을 해서 그런지 나무가 길가의 배경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나무의 모양과 잎의 상태를 살피고, 어제와 달라진 곳은 없는지 들여다본다. 햇살과 바람이 나무에 어떻게 머물다 가는지도 본다. 어디를 가나 나무를 세심하게 바라보는 내 모습이 나도 가끔 신기하다. 며칠 전 퇴근길이었다. 늘 다니던 길을 운전하다 신호등 앞에 멈춰 섰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의 잎새가 눈에 들어왔다. 유유자적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며 콧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잎이 한들한들 움직이고, 뒤집힌 잎의 면이 빛을 받을 때마다 반짝였다. 꼭 작은 보석 같았다.
나무 아래로 드리운 그림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잎이 움직이는 대로 바닥의 그림자도 흔들렸다. 모양이 생겼다가 흐트러지고, 다시 다른 모양을 만들었다. 그림자조차 하나의 그림이 되는 풍경이 나는 참 좋다.
가끔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살랑살랑 춤추는 나뭇잎을 한참 바라볼 때도 있다. 돈을 내고 들어간 공연장도 아닌데 나무가 보여주는 공연을 보고 나면 집으로 가는 길이 즐거워진다. 몇 분 전까지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일들이 잠시 물러나기도 한다. 나는 바쁘게 사는 일이 성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멈춰 있는 시간은 뒤처지는 시간처럼 느껴졌고,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는 날은 괜히 허전했다. 하지만 그날 신호등 앞에 멈추지 않았다면 나는 반짝이는 잎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정지 신호가 나를 붙잡아 세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덕분에 눈앞에 있던 풍경을 제대로 보았다.
나무는 완성된 모양을 고집하지 않는다. 가지를 뻗다가 잘리기도 하고, 잎을 내었다가 떨구기도 한다. 어느 날에는 꽃을 피우고, 어느 계절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 서 있다. 한때의 모습만 보고 그 나무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내 인생도 그랬다. 어떤 일을 해낸 뒤에야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배우고 있는 시간도 내 인생이고, 답을 찾지 못해 멈춰 있는 날도 내 시간이다. 때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동굴 놀이를 하며 지난 일을 생각하다 이불킥을 수십 번 하는 날도 내 인생이었다. 마음이 흔들렸다고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흔들리고 난 뒤에야 보이는 것도 있었다. 퇴근길의 잎새도 바람을 피하지 않았다. 살랑거리는 바람에는 가볍게 춤을 추고, 모진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는 정신없이 흔들렸다. 굵은 빗줄기가 툭툭 때리는 날이면 저러다 찢어지거나 부러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비가 그친 다음 날이면 잎은 다시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햇빛을 받고 있었다. 맷집 좋은 녀석은 굵은 나무가 아니라 가녀린 잎새인가 보다. 나무를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물론 모든 잎이 끝까지 가지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비바람에 떨어지는 잎도 있고, 벌레에게 먹힌 잎도 있다. 나무는 상처 난 잎을 감추지도 않고 이미 떨어진 잎을 다시 붙잡지도 않는다. 지금 남아 있는 가지와 잎으로 그날의 햇빛과 바람을 받아낸다.
내 인생의 공사는 때로 요란하다. 잘하고 있다고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무는 같은 자리에서 소리 없이 자란다. 어제보다 얼마나 자랐는지 설명하지 않고, 오늘 받은 햇빛만큼 자신의 시간을 살아낸다.
지난 열 편의 글을 쓰는 동안 목차의 순서가 바뀌기도 했고, 원래 넣으려던 글이 다른 제목으로 바뀌기도 했다. 첫 장에 놓으려 했던 가로수 이야기도 열한 번째에야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바카라을 쓰는 일도 공사와 닮았다. 처음 그린 도면대로만 가지 않고, 잘못 놓인 자리를 발견하면 다시 고쳐 앉힌다.
오늘은 동네 근처에 있는 미술관카페를 다녀왔다. 좋아하는 라테를 시키고 정원을 한 바퀴 돌면서 나무를 바라본다. 지난여름 무더위에 잎들이 많이 탄 모습이 여전히 있었다. 병충해로 잎들이 아픈 것도 많았다. 어떤 나뭇잎은 햇빛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동영상도 찍었다. 넓은 잔디밭과 함께 푸른 하늘이 유난히 마음에 담긴다. 다음엔 지인들과 함께 와야겠다.
내 바카라도 아직 그 나무와 비슷한 모양이다. 다 쓰지 못한 문장이 있고 다시 고쳐야 할 부분도 있다. 그래도 오늘은 이 글을 제자리에 놓아본다. <내 인생은 아직 공사 중입니다>라는 제목을 처음 생각하게 했던, 퇴근길 가로수를 생각하며 오늘은 소전 미술관 가로수의 흔들리는 잎들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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