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먹고사는 것에 나의 하루를 다 쓰지 않기로 하자

by도르가

10화. 먹고사는 것에 나의 하루를 다 쓰지 않기로 하자

엄마가 생각났다.
부모님은 식당을 하셨다. 자식 넷을 키워야 했고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두 분은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하셨다.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응대했다. 때로는 까다로운 손님에게도 웃으며 음식을 내어야 했다. 그때는 영업시간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아 밤 12시에도 손님이 들어오곤 했다. 그렇게 긴 하루를 마치고 나면 두 분은 잠들기 전까지 치열하게 싸우셨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싸웠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짐작하건대 아빠의 술과 엄마의 큰 목소리가 한몫했을 것이다. 손님이 많은 식당에서 주문받고 음식을 만들려면 엄마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부터 보청기를 끼셨던 아빠에게 엄마의 큰 목소리는 자신을 향한 고함처럼 들렸을 수도 있다.


어느 날 식당이 한창 바쁠 때였다. 아빠의 귀에서 빠진 보청기가 손님에게 나갈 뚝배기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그것을 모르고 음식을 내었고, 손님이 보청기를 발견했다. 아빠는 크게 놀랐다. 감추고 싶었던 자신의 약점이 사람들 앞에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았을 것이다. 며칠 동안 힘들어하시던 아빠의 모습이 기억난다. 등을 돌린 채 누워 있던 모습이다. 식당 문을 며칠 닫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부분은 어슴푸레하다. 분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 말 없이 돌아누운 아빠의 등이다.

어린 나는 부모님의 사정을 알지 못했다. 두 분은 늘 바빴고 우리 형제들은 방치된 것처럼 자랐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마음속에 작은 반항이 있었다. 중학생 때는 가출하겠다고 마음먹고 부모님께 말도 하지 않은 채 교회 수련회에 다녀왔다. 왜 우리를 제대로 돌봐주지 않았는지, 왜 집에서 싸움이 끊이지 않았는지 묻고 싶었다. 소심한 내가 선택한 ‘가출’이었지만 부모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의 첫 가출은 그렇게 미수에 그쳤다. 하하!

나이가 들고 나서야 부모님의 형편이 보였다. 그때는 먹고사는 일이 먼저였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했고 자식 넷의 밥과 학비를 마련하기에도 빠듯했다. 두 분이 자식을 사랑하지 않아서 돌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사랑을 표현할 시간까지 먹고사는 노동에 내어주며 살았던 것이다.

그렇게 바쁘게 살았던 엄마에게 어느 날 위암 말기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엄마는 오빠와 함께 밤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혹시 오진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서울의 여러 대학병원을 다니며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위암 말기였고 암은 임파선과 뼈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엄마는 가족을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었다. 양귀자의 <모순>에 나오는 안진진의 엄마처럼 매 순간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분이었다. 엄마는 진단을 받은 뒤 1년 조금 넘게 투병했다. 병상에 누운 엄마를 간병하며 발을 씻겨드리고 얼굴과 몸을 닦아드렸다. 병원에서 주는 환자복 대신 예쁜 잠옷을 사서 입혀드렸다. 엄마는 평생 잠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 병원 이불 대신 포근한 이불도 마련했다. 손과 발을 만지며 마사지도 해드렸다. 모르핀을 맞으며 말없이 고통을 견디던 엄마에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누워 있는 엄마가 잠시라도 편안했으면 했다. 엄마에게 잘하지 못했다는 뒤늦은 미안함도 그렇게나마 전하고 싶었다.

평생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돌본 엄마는 움직일 수 없게 된 뒤에야 딸의 손길을 온전히 받았다. 예쁜 잠옷과 포근한 이불이 엄마가 누리지 못한 시간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는 부드럽고 편안한 것을 드리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겉으로는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보였는데, 그 안에 발을 담그자 바닥에 쌓여 있던 모래와 풀들이 일렁였다. 어린 시절의 서운함과 부모님을 향한 원망, 이해하지 못했던 싸움이 마음의 흩트러놓았다. 나는 글을 쓰며 그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부모님을 무조건 이해하거나 지난 일을 아름답게 바꾸려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 내가 느꼈던 외로움도 사실이고, 먹고살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뒤로 미뤄야 했던 부모님의 형편도 사실이었다. 두 마음을 바라보고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먹고사는 것에 나의 하루를 다 쓰지 않기로 하자’는 말은 일을 가볍게 여기겠다는 뜻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중요하다. 다만 엄마처럼 나를 위한 시간을 모두 뒤로 미루고 싶지는 않다. 피곤하면 지쳤다고 말하고, 잠깐 멈춰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살피고 싶다. 누군가를 챙기느라 내 하루를 전부 사용하지 않고 적어도 한 조각은 나를 위해 남겨두려고 한다.

엄마에게 입혀드렸던 예쁜 잠옷을 생각한다. 엄마가 건강할 때 그 잠옷을 입고 편안히 쉬는 날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먹고사는 일을 모두 마친 다음이 아니라, 식당 일을 하던 그 긴 세월 속에서도 엄마가 자신의 시간을 조금씩 누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어 가니 이제야 그 아쉬움을 알아가니 후회라는 이름 속에 잠시 머물러 있다.

#10화연재 #먹고사는것에 #나의하루를다쓰지않기로하자 #엄마의시간 #지쳤다는말하기를두려워하지말자 #도르가 #오늘도감사 #오늘도글을쓴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도르가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선한길,천천히 그 길을 오늘도 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봄편지 아빠에게 드립니다. *나는 온라인카지노 작가가 되었다. *엄마가 딸에게 쓰는 마음여행 / 3권의 전자바카라 출간작가

9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5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7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