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훔치는 사람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

by아이오타 iota

어느 날부터인가, 나를 훔치는 사람들을 알아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기분 탓이라고 여겼다.

세상에 비슷한 생각쯤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우연이 겹쳤을 뿐이라고. 하지만 우연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의도된 것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훔쳐버린 남의 노력. 그런 사람이 주위에 있을 때 나는 맥이 빠진다.

내 문장을 가져가고, 내 이야기를 가져간다. 내가 고심 끝에 만들어가는 아이디어를 그대로 풀어놓고 자신의 이름을 올린다. 그때 나는 잠깐 멈추게 된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멈춘다. 보이지 않는 덫에 발목이 잡힌 것처럼.

아쉬움은 믿음에서 출발한다

살다 보면 타인에게 아쉬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서운함과는 조금 다르다. 서운함은 기대에서 시작되지만, 아쉬움은 믿음에서 출발한다. 믿었기 때문에, 가까웠기 때문에, 혹은 가까워지려 했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 나를 훔치는 사람들은 대개 낯선 얼굴이 아니다. 친구이거나, 지인이거나, 나를 따르던 이들이다. 그래서 더 조용히 스며든다.

몇 날 며칠 고심하던 노력을 아무렇지 않게 옮겨 쓰는 사람. 항상 같은 것만 만들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내 아이디어를 변주하기 시작한다. 내 작품이 나올 때마다 그는 제일 앞에서 하트를 누른다. 우연이 아니다. 나는 그 장면을 스크린 너머로 지켜본다. 분명 내 손을 거쳐 나온 문장인데, 어느새 다른 의미를 달고 돌아다닌다. 나는 완성되기도 전에 희석된다. 나의 꽃은 이름이 지어지지 않았는데 풀꽃으로 퍼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은 양갈래 줄타기를 한다.

억울함만 있었을까. 기특하다는 생각이 먼저 스치기도 한다. 그래도 내 안에 누군가가 가져가고 싶어 할 무언가가 있었나 보다. 나의 언어, 나의 감각, 나의 시선이 누군가에게는 잠깐이나마 탐나는 것이 되었나 보다. 그것은 나를 아주 조금 채찍질한다. 하지만 곧 안타까움이 따라온다.


나는 완성되지 않았다.

아직 덜 익은 나의 노력이, 충분히 숙성되기도 전에 아무 의미를 달고 다닌다. 나는 ‘내가 원조다’라고 외칠 만큼 단단하지 않다. 모든 비법을 드러내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깊이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직은 나의 것으로 머물러야 마땅했다.


미완성인 나는, 그런 것들이 타인의 손을 거쳐 변주되어 퍼져나갈 때마다, 묘하게 위축된다. 내가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한 감정. 누군가는 잘도 이름을 붙인다. 그 부분이 문제인가. 나는 뜯겨 나갔다.

지인이라는 자리는 때때로 나를 자주 희석시킨다. 우리는 서로의 영향을 받으며 산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어떤 영향은 닮음이 아니라 모사에 가깝다. 닮고 싶어서가 아니라, 편해서 가져가는 태도.


세상은 따라 하기에 쉬운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가상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문장 하나, 이미지 하나가 복사되어 몇 번의 클릭만으로 옮겨진다. 인공지능. 넌 브라보다.


나는 그것을 잘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는 순간, 그 안에 내가 없다는 사실이 먼저 드러난다. 그 문장은 나의 체온을 가지지 않는다. 나는 체온 없는 문장을 오래 붙들고 있지 못한다. 그래서 돌아온다. 다시 나를 만든다. 내 글엔 담고 싶은 게 또 있다. 바카라임. 나를 배반하지 않는. 내 양심은 때때로 빼곡히 자리를 차지한다.


나는 디자인 일을 한다. 출력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디자인을 빼앗겨 왔다. 돌고 돌아 그들의 것이라고 우기는 장면도 오래 보았다. 처음에는 화가 났고, 다음에는 허탈했고, 그다음에는 묘하게 무감해졌다. 반복되는 장면은 감정을 닳게 한다. 그러나 닳아 없어지지는 않는다. 얇아진 감정이 여전히 안쪽에서 움직인다.

이런 장면을 다른 공간에서 또 마주치게 된 거다. 플랫폼이 달라져도 구조는 비슷하다. 나를 아는 지인이 그 중심에 있을 때, 잠시 말을 잃는다. 나를 보고 있던 눈이, 어느새 나를 베끼는 손이 되어 있다.


오류를 일으킨 발이 더 나아가지 않고 헤맨다. 자기 작품에 대한 가치는 좀더 자신다워야 하는게 아닐까. 나는 공개적인 작품이 되기까지 다 숨겨야 할까. 그렇게 하면 내가 덜 아플까. 감정이 이성을 이기는 순간이 온다. 나는 잠시 긴 호흡을 뱉는다.


사람에게는 지문처럼 고유한 무늬가 있다.

언어에도 무늬가 있다. 말의 속도, 문장의 호흡, 비유의 방향. 그것들이 모여 그 사람의 분위기를 만든다. 가상의 세계에서도 그것은 드러난다. 글은 더욱 그렇다. 단어를 아무리 흉내 내도, 그 문장을 밀어 올리는 힘까지 완전히 옮겨지지는 않는다.

나는 알고 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떼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의 문이 잠긴다. 아직 나의 것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미 어디에나 있는 아이디어가 되어버리는 장면. 그것은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내가 아직 완성되기 전이니까.

다시 생각해 본다. 정말로 희석 됐을까. 껍데기만 같지 않았을까. 내가 고민했던 시간, 망설였던 밤,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했던 흔적까지 함께 옮겨간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통과한 감정의 밀도는 복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형태뿐이다.

그 사실이 나를 완전히 위로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숨 쉬게 한다.


나는 멈추고 싶지 않다.

멈추는 순간, 그들이 가져간 것보다 더 큰 것을 잃는 것 같기 때문이다. 쓰지 않는 나, 만들지 않는 나, 시도하지 않는 나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희석되는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내가 될 수도 있다.

그 생각이 들면, 다시 손을 움직이게 된다.

누군가 나를 훔친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나로 남는다.

나의 언어는 나의 시간을 통과해 만들어진다.

같은 단어를 써도, 같은 이미지를 그려도, 그 안에 담긴 체온은 다르다. 위로는 되지 않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숨기고 싶은 그 순간에,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든다. 완성이라는 단어를 만날 때까지 꼭꼭 숨기고 싶지만, 완성이라는 상태가 과연 존재하는지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완성되었다고 믿는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미완의 감각이 남아 있다. 나는 다시 더 깊이 파고든다. 그들이 흉내 낸 겉모습이 아니라 내가 가고자 했던 근원을 건드리고 싶어진다. 쉽게 옮겨질 수 없는 자신만의 문장. 그 언어는 이전보다 조용하고, 더 나다워질지 모른다.


나는 아직도 준비 단계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단단하지 않기에 화가 나도 노력하는 사람. 그럼에도 나의 무늬는 이미 나를 조금 따라다닌다. 지문처럼. 지우려 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같이.

햇살 아래에서 느꼈던 시작의 감각과, 나를 훔치는 사람들 앞에서 느꼈던 멈춤의 감각은 어딘가 닮았다. 둘 다 나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어디까지 드러낼 것인지, 어디까지 감출 것인지, 그 사이에서 서성인다. 두 마음이 나란히 거리에 서 있다.


아직 선택하지 못했다.

그러나 손은 여전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완성되지 않은 채로.

희석되기 쉬운 나로.

그럼에도 계속해서,

나는 내 시간의 밀도를 직선으로 통과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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