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수영장에 다녀왔다. 자카르타에서 한 달이 넘게 이어지는 무더위를 겪다 보니 나도 모르게 물이 고파졌다. 오션 월드네 뭐네, 여름 휴양이나 다녀올까 하다가 자카르타 숙소에 딸린 수영장에 들렀다. 아파트에 있는 수영장이라기에 큰 기대가 없었는데, 생각보다 꽤 깔끔한 모습이었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오션 월드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지였다. 선베드에 짐을 올려놓고 수영복으로 환복을 한 뒤 물에 들어갔다. 아파트가 만들어낸 그늘 부근에 자리를 잡고 몸을 둥둥 띄웠다. 바람이 살짝 불어 선선했고, 더위 덕분에 수온이 딱 알맞았다. 수영하기 딱 좋은 오후 시간이었다.
물 위를 둥둥 떠다니다가, 문득 콜롬비아의 링콘 델 마르에서 본 밤바다가 떠올랐다. 링콘 델 마르는 메데진을 지난 후로 가장 처음 방문한 여행지였다. 타강가에서 총 든 강도를 만난 후, 메데진에서 회복기를 거치고 다시 여행을 시작하던 순간이었다. 큰일을 겪은 탓에, 여행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 생긴 시점이기도 하다.
링콘 델 마르는 민카에서 만난 현지인 친구 '홀헤'로부터 추천받은 관광지였다. 여행을 좋아하던 홀헤는 콜롬비아 구석구석을 쉼 없이 돌아다녔다. 내가 메데진에 방문할 예정이라, 근처 여행지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메데진에서 몇 시간 거리가 떨어져 있는 '링콘 델 마르'를 추천해 줬다. 형광 플랑크톤이 반짝이는 밤바다에서 수영을 할 수 있다며 사진을 보여줬고, 그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포탈에 검색을 해 봤을 때, 한국어로 된 후기가 몇 없는 장소였다. 하지만 터미널의 많은 버스편을 보아, 이동객이 많은 동네라는 건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여행자라면 자고로 잘 모르는 여행지라 하더라도, 추천을 받아서 방문할 수 있어야지!' 하는 다소 무모하면서도 패기로운 생각으로 방문을 결정한 곳이기도 했다.
갓 도착한 링콘 델 마르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아주 작은 동네 마을인 까닭에, 동네에 구경할 것은 없었고 시장가에만 사람이 많았다. 몰려있는 사람과 대비되게 도로 정비가 잘 안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주 작게 펼쳐진 시멘트 길을 따라 오토바이와 차량이 우후죽순 이어졌다. 사람들이 맨발로 걸어 다니는 도로에는 해변에서 따라온 모래가 가득이었고, 그마저도 쓰레기가 여기저기 던져져 있었다. 유명한 곳만 다니다가 관리가 되지 않는 지역을 오니 이게 진짜 콜롬비아구나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숙소도 마찬가지였다. 이전 경험을 통해 최저가 숙소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 숙소에 도착한 후로는 약간의 기대마저 사라졌다. 허름한 외관과 공용 공간, 그마저도 관리가 안 되어 쩍 벌어진 벽을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주 작은방 안에 6개의 벙커 침대가 가로 세로로 뒤섞여 있었다. 침대에는 모기장이 쳐져 있어서 '잘 때 모기가 많겠구나'하는 그이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니,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국적에 따라 보고 생각하는 게 다르다 싶었다. 홀헤가 좋았던 곳이지만, 내게는 좋지 않은 여행지일 수 있었다. 이름 있는 관광지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 숙소였다. 밤이 깊어질수록 근심도 함께 깊어졌다. 오늘 저녁에 있을 '밤바다 형광 플랑크톤 투어'가 괜찮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선에 팔리는 건 아닌지, 새우잡이 배에 팔려가는 건 아닌가 하는 고뇌가 깊어졌다. 만나는 장소도, 어디 푯말이라도 걸린 가게가 아니라 바닷가 앞에서 기다리면 태우러 온다는 말뿐이었으니, 홀로 기다리는 처지에 이 정도의 상상은 그다지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바닷가에 홀로 서성이며 배를 기다리다 보니, 저 멀리 작은 전동 보트가 흰 파도를 만들어내며 다가왔다. 해안가에 닿자 통통거리던 작은 보트는 잠시 멈추어 섰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이었는데, 배를 살펴보고 나니 안도감이 생겼다.
'말도 안 통하는데'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방인 관광객을 귀찮아하는 태도의 선장님과, 아이를 데려 온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함께였다. 서양인 관광객 몇 명도 함께였다. 이름을 확인하고선 나를 배에 태우는 가이드를 보며 '이게 진짜 투어가 맞구나'하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해변가에 들어오며 통통거리던 작은 보트가 힘을 쓸 수 있을까 싶었는데 걱정도 허사였다. 통통 보트는 바다로 나아가며 진면목을 발휘했다. 어둑어둑해지는 바다를 향해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스스럼없이 바다를 가로질렀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닷물에 거칠게 스크래치를 남기면서.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야밤에 어두컴컴한 바다를, 아주 작은 보트를 타고 가로지르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나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거친 엔진 소리는 바다를 힘차게 가로질렀다. 잔잔해 보이던 기다란 파도는 힘이 거셌고, 그래서 엔진이 바다를 헤집으면 헤집을수록 거센 바람이 함께 일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뱃머리에 앉은 탓에 세찬 바람이 온몸을 스치며 지났다. 해가 지는 하늘을 향해 달려들듯 거침없이 나아가는 보트는, 마치 밤을 사냥하러 떠나는 모험가 같았다. 하늘은 밤의 장막을 펼친 듯이 점점 어두워졌다. 마치 공연 무대가 끝나고 커튼 콜을 마친 뒤, 차라락 빠르게 덮이는 커튼을 본듯한 기분이 들었다.
피부 사이사이를 서늘하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맞으며, 심장 께에서 ‘둥둥-’하는 북을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메아리치듯 울렸다. 이성은 말했다. 주변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새까맣고 어두운 밤에, 바다로 나가는 건 미친 짓이라고. 깊은 바다에 소리 소문 없이 내동댕이 쳐지는 상상이 함께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몸은 바람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왠지 하면 안 되는 걸 하는 느낌이었다. 잘못하고 있는 기분 말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배는 이미 떠났다. 진즉 출발해버린 이 총알 같은 배는 멈출 수가 없으며, 나는 이미 바다 한가운데 떠있었다. 이대로 나아가면 안 된다는 불안감과, 이 앞으로 가면 뭐가 나올까 하는 기대감이 심장 박동을 높였다. 아, 일탈이란 게 이런 걸까?
일전에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는 일탈을 해 본 적 있니?'하고. 스무 살도 훌쩍 넘은 나이에 일탈이란 말이 생소하게 들렸다. '글쎄, 일탈이란 말이 살짝 어색한데. 보통 일탈은, 청소년일 때,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게 떠올라서. 우리는 이미 성인이라 그런 걸 할 수 있는 나이가 됐잖아. 그거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일탈이 없는데? 네가 생각하는 일탈은 어떤 건데?' '글쎄, 나도 그걸 잘 모르겠네. 그냥 너는 인생에서 어떤 일탈을 해 봤을까, 궁금해서.'
그때 일탈을 물었던 친구에게 이제서야 "일탈을 했다"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탈감이 들었다. 만으로 스물아홉, 서른이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야 일탈을 하는 기분을 깨달았다. 짜릿함, 불안함, 고양감, 기대감이 흩날렸다. 가면 안 되는 곳을 간다는 곳에서 오는 배덕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 무엇이 나올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데서 오는 호기심은 심장을 밖으로 튀어가게 만들었다.
멈추지 않을 것처럼 바다를 향해 힘껏 뛰쳐가던 보트는, 카리브해 어느 한가운데서 멈췄다. 우리 보트를 제외하면 불빛이라고는 보이지도 않았다. 이곳에서 형광 플랑크톤과 함께 수영을 하면 된다고 했다. 가이드가 먼저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플랑크톤을 어떻게 보면 좋은지 알려준다며 말이다. 물에 몸을 담근 가이드가 팔과 다리를 힘껏 휘젓자 주변에서 푸르른 형광빛이 일렁였다. "우와-" 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나 또한 입을 벌리며 감탄한 건 두말할 것 없는 일이었다.
시커먼 바닷물 아래에 반짝이는 플랑크톤은 미미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투어를 선택하기 전 보았던 사진에는 선명하던 푸른빛이었지만 말이다.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싶었던 터라 아쉬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신기한 마음은 그대로였다.
첨벙-하고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어두운 바다로 몸을 스스로 내던진 게 믿어지지 않았다. '고작 구명조끼 하나만 믿고 이 망망대해에 나를 내던지다니.' 이 깊은 바다에 상어, 고래 혹은 거대 참치 같은 물고기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물며 인간이 바다를 아름답게 느끼게 된 건 고작 100년도 채 안 되는 일이었다. 거대한 파도와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는 인류에게 늘상 두려움의 존재였으므로.
바다에 몸을 맡긴 나는, 팔과 다리를 힘차게 휘저었다. 주변으로 플랑크톤이 움직이는지 푸르른 빛깔이 보였다. 어린아이처럼 즐거웠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립 자세로 팔 다리를 휘휘 젓다 보니 푸른 빛깔이 금세 사라졌다. 열댓 명의 사람들이 물속에서 몸을 젓다 보니, 플랑크톤이 눈치를 채고 어디론가 사라진 듯했다. 꺄르르 신이 난 어린아이들은 지칠 줄을 몰랐지만, 물 안에서 공중 걷기를 10분 정도 한 나는 금세 진이 빠졌다.
잠깐 쉬자, 하고선 몸을 일자로 눕혔다. 부력에 몸이 둥둥 떴다. 고개를 들자마자, 머리 위로 수천 개 아니 수만 개의 별들이 반짝였다.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맑고 깨끗한 하늘이라니!' 정말 오랜만에 보는 별빛 가득한 하늘이었다. 감동적이었고 벅차올랐다. 이런 장면을 보게 되다니.
이 밤하늘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요 근래 갖고 싶은 게 단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소유욕이 생긴다. 밤 하늘의 선명한 별들을 내 마음에 품어 집으로 가져가고 싶었다. 내 눈에 알알이 박히는 이 별들을, 밤하늘을 그대로 잘라 내어 세계지도처럼 돌돌 말아서 배낭에 넣어 집으로 돌아가서 자랑하고 싶었다. "여러분! 제가 이렇게 아름다운 밤하늘을 봤어요! 정말 예쁘죠? 이런 밤하늘은 정말 처음이에요!" 하며 쩌렁쩌렁 소리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눈으로 계속 별을 훔쳤다. 잘 모르는 별자리도 이쪽인가 저쪽인가 하며 살펴보고,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며 둥실둥실 떠다녔다. 한없는 자유함이 내 몸을 감쌌다. 이성적인 생각보다 몸이 느끼는 감각이 우선했다. 이 순간을 영원히 만끽하고 싶었다. 벅차오름과 불안함이 차올랐지만 그 감정을 억지로 멈추려 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무슨 일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 '호랑이 굴에 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댔어'했을 텐데. 총 든 강도를 만난 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걸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의 목소리에 금이 가던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가 감각을 죽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본래 겁이 많은 인간이다. 사람에게 상처받기 싫어서 늘 거리를 유지했고, 상황에 겁을 먹고 싶지 않아 눈을 세모로 뜨고 다녔다. 눈 뜨고 코베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내 세상은 무슨 일이 있을 때, 나를 걱정해 주기보다는, "네가 잘 알았어야지" "그러게, 미리 잘 알아보지 그랬어" 하며 나에게서 원인을 찾았기 때문이다. 자바카라하던 습관은, 거리를 두는 습관으로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힘든 상황에서 감각을 누리는 건 사치였다. 바쁜 와중에도 아프고 힘든 일은 소리 소문 없이 찾아왔기에, 언제나 상황을 해결하기 급급했다. 감정은 후순위의 일이었다.
그러던 내가 모든 사고를 미룬 채, 감각을 누리기만 하다니. 짜릿함이 차올랐다. 스스로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통제감은 상당히 신선했다. 기계 체조를 하는 사람이 원하던 포즈를 성공적으로 취할 때의 느낌이 이런 기분일까? 할 정도로. 한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이런 감각이구나 했다.
모로 누워 하늘의 별을 보며 둥둥 바닷가를 떠내려갔다. 너무 멀리 가지 않게 조심하라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첨벙 첨벙하며 불빛이 작게 켜진 보트 가로 이동하길 여러 번이었다. 이후 투어는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이제는 갈 시간이 되었다는 말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맹그로브 숲을 보고 여정이 끝이 났다.
숙소로 돌아왔다. 이 풍만한 감각이 고작 몇 시간 안에 느낀 감각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숙소의 나쁜 컨디션과 모기와의 사투는 뒷전이었다. 잠들기 직전까지 엥엥거리며 귓가를 맴도는 모깃소리에 신경질이 나긴 했지만,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감던 그 순간까지 내 눈에는 밤하늘에 펼쳐진 수만 개의 별빛들이 가득했다.
지금도 이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일탈이 이런 걸까 하는 마음이 들던 순간. 하늘을 뒤덮은 무수히 많은 별을 본 순간.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미 엎질러진 물인 걸 자각한 순간.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받아들인 채로, 쿵쾅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거센 바람을 맞으며 밤바다로 향해 나아가던 순간 모두 말이다. 모든 감각이 새로웠다. 이것이야말로 심장이 뛰는 일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뒤 유튜브 영상을 만들면서, '아 이 영상은 인기가 없겠구나' 했다. 감각이나 생각을 표정이나 말로 전달하기에 부족했고, 그를 위한 편집 실력도 미미했다.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었으므로, 시선을 끌 소재도 아니었다. 하지만 난 이 순간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선명하게 충격적인 감각을 느끼는 상태. '이게 진짜 여행이지'하며 짜릿했던 그 순간은 여행의 의미가 되새겨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무언가 익숙해질수록, 감흥이 줄어들었다. 삶이 패턴화되고, 반복되는 상황에 모든 게 자연스레 이해가 됐다. 비슷한 일에 불평을 하고, 사소한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이 많았다. 나도 그 안에 속한 인간이었다. 환경에 따라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여행을 하기 시작하며, 어색한 선택을 하며 살았다. 새로운 게 궁금해도 익숙한 선택을 하던 과거와 달리, 새로운 가게에 가서 평소에는 안 먹던 음식을 선택한다던가, 시간과 비용을 따졌을 때 시간을 돈으로 사던 행위를 버리고, 시간을 써서 돈을 아끼는 그런 선택들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선택들이 더 신기하고 생생했다. 멋없는 간판과 식당에서 1등으로 손꼽히는 메뉴를 선택하고도 별로였던 맛이 더 기억에 남았던 일. 남들은 힘에 부쳐 선택하지 않는 9시간 버스도 아무렇지 않게 선택을 해서 고초를 겪은 일. 쓸 때 쓰고 아낄 때 아끼는 게 아니라, 아끼기만 하면서 다니던 여행. 그러다가 쌓였던 욕망이 폭발하면 과소비를 하던 순간까지. 누가 주어지는 한계가 아니라, 해 볼 만큼 해보면서 내 한계를 경험했다. 나는 이럴 때 힘들구나, 나는 이럴 때 즐겁구나 하는 걸 깨달아가며.
그래서일까. 익숙하지 않은 선택으로, 감각이 개방되는 짜릿했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여전히 이 기억을 되새긴다. 보트가 파도를 가로지르는 엔진 소리를 낼 때에도. 해가 바다 뒤로 넘어가는 모습을 볼 때에도. 하물며, 그저 자카르타의 숙소에 딸린 수영장에서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지금에도 말이다.
오늘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일탈'의 경험을 했으면 한다. 일상의 선택에서 벗어나서, 하루쯤 휴가를 내고 1박 3일 도깨비 여행을 한다던가, 평소 자주 가지 않지만 눈여겨보던 가게에 가서 저녁식사를 해본다던가 하는. 법에 어긋나지는 않으면서도, 나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일탈. 새로운 것이 주는 감각을 느끼길 바란다. 그것이 비록 좋지 않더라도,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감각을 일상에서나마 한 번쯤 가져보길 바라는 마음을 담으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