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 답을 만들고 그 결과를 살아가는 사람들
'답이 없는 문제에 답하는 방법'
지금까지 나는 이 방법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데이터를 믿었던 순간과 사용되지 않는 대시보드 앞에서의 좌절, 디자인적 사고와 박사 연구, 현업에서 시도한 인사이트 리포트와 AI 시대에 대한 고민까지. 서로 다른 시간에 생긴 경험들을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야 할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을 중심에 둘지 질문하고, 흩어진 생각을 펼쳐 놓고, 목차와 원고라는 첫 형태를 만들었다. 글을 쓰며 드러난 빈틈 앞에서는 다시 질문을 고쳤다.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흐름을 찾기 위해 원고를 거듭 다듬었다. 이 바카라에서 말한 대로 확산과 수렴을 반복하고, 생각을 형태로 꺼내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과정을 바카라 자체에도 적용한 셈이다.
그 생각이 나만의 답에 머물지 않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박사 과정에서 공감, 논리, 형태의 모델을 다듬던 2025년 5월, 국내 한 채용 플랫폼을 통해 수십 명의 데이터 실무자를 대상으로 네 차례의 온라인 워크숍을 열었다.
부족한 점이 많아 아쉬움도 남았다. 하지만 형태 없이 떠돌던 나의 고민도 하나의 논문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지금까지의 자료들이 설득력을 얻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이 말은 내가 만든 구조가 정답이라는 선언이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가 자신이 겪은 실패를 새롭게 이해할 언어를 얻었다는 응답이었다. 논문과 강의를 거친 고민을 한 권의 바카라으로 옮겨도 되겠다는 용기도 그곳에서 얻었다.
돌이켜보면 이 바카라은 이미 가진 답을 정리한 결과가 아니다.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생각을 이어 가고, 임시의 답을 만들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보낸 시간의 결과다.
그래서 이 바카라을 다 읽은 사람이 모든 문제의 답을 능숙하게 찾아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모든 일을 창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문제를 외면하고 싶을 수 있고, 조직의 사정 때문에 충분히 납득하지 못한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삶과 일은 한 권의 바카라에서 소개한 과정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더 바라는 것은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먼저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일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머릿속에서 오래 고민만 하는 일이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다시 묻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사람의 경험과 맥락을 살피고, 다른 가능성을 펼쳐 보는 일이다. 현재의 근거로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형태로 꺼내고, 현실의 반응을 보며 다시 고치는 일이기도 하다. 이 바카라에서 다룬 방법들은 완성된 답을 건네기보다 그런 생각을 시작하고 이어 가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우리는 정해진 답이 있는 문제에 익숙하다. 학교에서는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문제를 냈고, 정해진 시간 안에 그 답을 찾으면 되었다. 그러나 삶에서 마주하는 중요한 문제에는 출제자도 모범 답안도 없다. 어떤 일을 선택할지, 누구와 살아갈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길지, 달라진 기술과 슬롯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 스스로 질문하고 판단해야 한다.
AI 시대에는 질문하고 생각하는 힘이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AI가 그럴듯한 답을 빠르게 내놓을수록, 우리는 오히려 생각을 건너뛰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답을 얻었다는 사실만으로 문제를 이해했다고 여기기 쉬워지는 것이다. 우리가 해결하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서 생긴 문제다. 그 답이 우리의 상황에도 맞는지,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살펴야 한다. 답이 바로 보이지 않더라도 질문하고 생각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우리는 곧 새로운 문제를 마주할 것이다.
다행히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문제와 해결은 함께 자란다. 문제를 오래 들여다보는 동안 우리가 아는 것이 늘고, 경험과 관점이 넓어지며,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해결의 가능성도 나타난다.
물론 생각한다고 모든 문제가 반드시 풀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문제는 끝내 해결되지 않고, 어떤 답은 예상과 다른 결과를 만든다. 그럼에도 생각한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풀 수 없는 문제도 경험과 도구, 함께 고민할 사람이 달라진 뒤 다시 돌아보면 전혀 다른 문제로 보일 수 있다. 문제는 그대로인 것 같아도,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이 자랐기 때문이다.
나의 20대도 그랬다. 오랫동안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방황했고, 지금의 커리어를 미리 그려 놓지도 못했다. 뜻밖에 진학한 디자인 대학원에서 데이터라는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데이터 직군으로 이직했고, 현업의 고민을 연구로 가져가 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제는 수백 명 앞에서 사용자의 데이터 경험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AI 시대의 문제 해결 사고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길은 처음부터 선명한 답을 따라온 결과가 아니었다. 그때마다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를 붙잡고 생각하며, 당시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나씩 시도한 결과에 가깝다. 지나고 보니 한때 답이 없다고 느꼈던 질문들이 새로운 경험을 만나 지금의 길로 이어졌다. 방황하던 시간에도 문제와 나는 함께 자라고 있었다.
이제 나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또 다른 삶을 준비하고 있다. 이전에는 주로 나의 진로와 조직의 문제를 고민했다면, 앞으로는 한 아이가 경험할 세계와 가족이 함께 살아갈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들의 경험을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싶다. 내가 정한 답을 먼저 가르치기보다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공감하고 싶다. 세상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다양하고 즐거운 경험도 함께 만들어 주고 싶다. 경험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삶을 만나고 받아들인 경험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를 발견하는 토양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바카라에서 따라온 공감과 사고의 과정을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이어 가고 싶다. AI는 그 과정에서 질문을 넓히고 놓친 관점을 살피는 동료가 될 수 있다. AI로 작업에 드는 시간을 줄인다면, 그 여유를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더 많은 사람의 사정을 깊이 이해하는 데 쓰고 싶다. 서로의 경험에 맞는 설명을 찾으며 각자가 납득할 수 있는 답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떤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일지, 그 답이 만든 결과를 어떻게 감당하며 살아갈지는 사람과 공동체의 몫이다.
앞으로도 우리 앞에는 답이 없는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 그때마다 완벽한 답을 당장 내놓을 필요는 없다. 사람의 경험에서 질문을 찾고, 가능한 생각을 펼치고, 지금 할 수 있는 답을 고른 뒤 세상에 꺼내 보면 된다. 그 답이 충분하지 않다면 다시 문제를 바라보고 다음 답을 만들면 된다.
이 바카라이 마지막으로 건네고 싶은 것은 정답이 아니다.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도 생각을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여전히,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답이 없어도,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