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받은 뒤에도

11화

by마짝꿍텝

그날 저녁, 민호는 꽃집 앞에 차를 세웠다.


강현은 먼저 뒷문을 열었다. 평소에는 형보다 먼저 앞자리에 앉으려고 했는데, 요 며칠은 뒤로만 탔다. 정현이 조수석에 앉아 안전띠를 당기는 동안 동생은 가게 안의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었다.


영진은 주문받은 꽃꽂이를 마무리하고, 마지막 예약 화분을 찾으러 올 손님을 기다렸다가 따로 오기로 했다.


“뺨은 어때.”


아버지가 거울로 강현을 봤다.


“이제 안 아파.”


강현은 말하고 나서 뺨을 만졌다. 부기는 거의 빠졌고, 누르면 아직 조금 아팠다. 그보다 싫은 것은 하교할 때마다 오락실 쪽 골목부터 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 형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발이 빨라졌다.


정현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가 오락실에 다녀온 뒤에도 자전거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락실 주인은 그 애들이 다시 오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신고했던 파출소의 전화번호를 주문대장 맨 뒤에 적어 놓았다.


“형, 저거.”


강현이 뒷좌석에서 몸을 들었다.


정현은 앞유리를 봤다. 버스 뒤로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갔다. 노란 머리가 페달을 밟았고, 키 큰 녀석이 짐받이에 걸터앉아 있었다. 발끝에서 슬리퍼가 흔들렸다.


“우리 거야.”


정현은 몸을 앞으로 조금 기울였다.


“우리 건 은색이잖아. 저건 검은데.”


“형, 저 빨간 스티커 봐.”


정현은 안장 아래를 봤다. 빨간 반사 스티커 한쪽이 비스듬히 들떠 있었다. 강현이 잘못 붙였다며 떼려던 자리였다. 스티커 가장자리까지 검은색이 번져 있었다.


“아빠.”


민호는 이미 보고 있었다.


“너희 것 맞지? 아빠가 확인할 테니까 둘 다 가만히 앉아 있어.”


자전거가 골목으로 꺾였다. 민호는 방향지시등을 켰다. 맞은편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정현의 손이 문 손잡이 쪽으로 갔다.


“내가 먼저 가볼 테니까 너희는 가만히 있어.”


아버지의 목소리가 커져 정현은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골목에 들어섰을 때 자전거는 멀리 가지 못했다. 배달 트럭이 길을 막고 있었다. 민호는 거리를 두고 차를 천천히 움직였다. 빵집 앞에서 짐받이의 녀석이 먼저 내렸다.


노란 머리가 자전거를 벽에 기대 세웠다.


민호는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뒤를 돌아보자 강현이 헤드레스트 옆으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저 형들 맞아?”


강현은 고개만 끄덕였다.


“창문 올리고 있어. 정현이 너도 여기 있고.”


민호가 차에서 내렸다. 정현은 아버지의 어깨를 보았다. 교실에서 아이를 부르는 것처럼 한쪽 손을 들어 보였다.


“학생들, 잠깐.”


노란 머리가 돌아봤다. 키 큰 녀석은 빵집 문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말 좀 물을게.”


“뭔데요?”


몇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민호가 자전거에 살짝 손을 올리고 물었다.


“이 자전거 누구 거니?”


“제 건데요.”


민호는 자전거에서 손을 떼고 두 얼굴을 번갈아 봤다.


“토요일에 오락실에서 초등학생한테 가져간 거 아니고?”


키 큰 녀석이 문손잡이를 놓았다. 노란 머리는 금방이라도 달아나려는 듯 골목입구 쪽을 봤다. 정현은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세웠다. 그 뒤에서 강현이 형의 옷을 잡았다.


“좀 빌린 건데요.”


“좀 전엔 네 거라며.”


노란 머리가 입을 다물었다. 키 큰 녀석이 끼어들었다.


“걔가 타라고 했어요.”


민호의 손이 주먹처럼 말렸다가 펴졌다.


“누가.”


“그 꼬마가요.”


“슬리퍼로 얼굴을 때리고 타도 되냐고 물었니?”


커다란 덩치의 빵집 주인이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민호는 자기 아이가 이 애들한테 맞고 자전거를 빼앗겼다고 했다. 주인이 차 안을 보았다. 강현은 시선을 피했다.


“전화 좀 쓰겠습니다. 파출소에 신고해 둔 건이라서요.”


노란 머리가 자전거 손잡이를 놓았다.


“돌려주면 되잖아요.”


“자전거는 당연히 돌려줘야지. 아이를 때린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고.”


민호는 빵집 주인에게 전화를 쓰는 동안 잠깐 함께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키 큰 녀석이 골목 쪽으로 발을 옮기자 주인이 그 앞을 가로막고 섰다.


“너희, 아저씨 얘기 다 끝나고 가.”


민호가 전화하는 동안 두 녀석은 벽 가까이에 서 있었다. 정현은 차 문을 열고 싶었다. 이제는 아버지가 있으니 얼굴 앞에서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동생을 때렸느냐고.


뒤에서 옷을 꼭 잡은 강현의 손이 놓이지 않았다.


정현은 그대로 앉았다.


*


경찰관이 온 뒤에야 민호가 두 아들을 불렀다. 강현에게는 무서우면 차 안에서 말해도 된다고 했다. 강현은 문을 열었다가 닫고, 다시 열었다. 정현이 먼저 내려 동생 쪽으로 돌아갔다.


자전거 손잡이의 고무 끝이 조금 찢어져 있었다. 왼쪽 브레이크 레버 안쪽에는 정현이 넘어지며 긁어 놓은 자국이 있었다. 정현은 그곳과 안장 아래의 스티커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열쇠는 노란 머리의 바지 주머니에서 나왔다.


강현은 아버지 뒤에서 그것을 봤다. 자기 서랍에 넣어 두었던 열쇠였다.


파출소로 옮긴 뒤에는 같은 말을 여러 번 해야 했다. 키 큰 녀석은 처음에는 장난이었다고 했다. 라이터로 겁을 준 일은 말하지 않았다. 강현이 아버지 소매를 당겼다.


민호가 몸을 낮췄다.


“그것도 말해도 돼?”


“응.”


강현은 아버지 귀에 먼저 말했다. 민호는 대신 끝내지 않고 기다렸다. 강현이 경찰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 얼굴 앞에서 라이터 불도 켰어요. 그래서 앞머리도 조금 탔어요.”


키 큰 녀석이 얼굴을 들어 강현을 노려보았다. 민호가 둘 사이로 한 걸음 옮겼다. 강현은 오백 원을 꺼내기 전에 맞았고, 돈을 준 뒤에 자전거 열쇠까지 내놓았다고 말했다.


강현은 말을 마친 뒤에야 아버지 소매를 놓았다. 그 형은 한 번도 끼어들지 못했다.


연락을 받고 온 보호자 하나가 들어오자마자 아이의 뒷머리를 때리려 했다. 민호가 손을 들었다.


“여기서 때리지는 마십시오.”


정현은 아버지를 봤다. 그 어른의 손도 멈췄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남의 애한테 이런 못된 짓을 했는데.”


“자신이 한 일을 먼저 반성하고, 사과하게 해야지요.”


민호는 두 아이를 보았다. 목소리는 여전히 딱딱했다.


처음 사과는 미안하다는 한마디였다. 강현은 바닥만 봤다. 민호가 무엇이 미안하냐고 묻자 노란 머리가 자전거를 가져간 것이라고 했다.


키 큰 녀석은 한참 뒤에야 때린 일과 돈을 빼앗은 일을 말했다. 라이터로 겁준 일도 붙였다.


“다음에 만나도 다시는 너 아는 척 안 할게.”


강현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오락실에서 나올 때에는 다음에 보면 인사하라고 했었다.


보호자가 이제 괜찮냐며 강현을 보았다. 대답이 없자 다 된 거냐고 다시 물었다. 민호가 말을 끊었다.


“피해 아이가 지금 굳이 괜찮다고 대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강현은 입을 다물고 있어도 됐다.


상대 부모가 손잡이 수리비까지 보태겠다며 오만 원을 꺼냈다. 민호는 돈보다 먼저 받아야 할 약속이 있다고 했다.


“아이가 오락실 앞을 지날 때마다 너희가 있는지 봅니다. 다시 찾아가거나, 오늘 일로 말을 걸지 마.”


두 아이가 대답했다. 민호는 경찰관이 듣는 자리에서 연락처를 받고, 빼앗겼던 오백 원만 돌려받았다. 강현에게는 더 묻지 않았다.


민호는 같은 일이 생기면 다시 신고하겠다고 말한 뒤 두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파출소 밖에는 별이 떠 있었다. 민호는 자전거를 맡겨 두었다가 차를 집에 두고 와서 가져가기로 했다. 정현은 아직 손이 아팠다.


강현이 열쇠를 형에게 내밀었다.


“미안해.”


정현은 받았다. 고리가 조금 벌어져 있었다.


“다음에는 운동장 밖에선 절대 타지 마.”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일 당하면 형이랑 엄마 아빠한테 바로 말하고.”


“형 자전거 잃어버려서 화낼까 봐.”


정현은 바로 아니라고 하지 못했다.


“네가 맞은 것도 알면서 자전거 잃어버렸다고 화냈잖아.”


정현은 열쇠 고리를 만졌다.


“그건 미안해.”


“아니야.”


강현은 아버지가 열어 준 차 문을 잡았다. 이번에도 뒤에 탔다. 정현은 조수석 문을 열었다가 닫고 동생 옆으로 갔다.


*


이튿날 아침, 강현은 돌려받은 오백 원을 어머니 앞에 놓았다.


“그때 가져간 거. 돌려받았어.”


영진은 하던 포장을 멈추고 강현을 봤다.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 알지?”


“응.”


강현이 돈통을 열어 동전을 넣었다. 뚜껑을 닫고도 손을 얹고 있다가 어머니를 봤다.


“다음엔 말하고 가져갈게.”


“허락받고.”


강현은 알겠다고 하고 자전거를 보러 나갔다.


안장은 여전히 낮았다. 자기에게 맞춰 놓았던 높이였다. 찢어진 손잡이 끝에는 검은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아버지가 밤에 감아 두었다고 했다. 빨간 스티커의 들뜬 곳은 그대로였다. 검은 도색은 마른 뒤에도 군데군데 뭉쳐 있었고, 칠이 닿지 않은 틈에서는 은색이 보였다.


강현은 들뜬 스티커를 엄지로 눌렀다. 손을 떼면 다시 들렸다.


“탈 거야?”


등 뒤에서 정현이 물었다.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정현은 타 보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버스를 타러 갈 시간이어서 가방끈만 고쳐 멨다.


“나중에 자전거 타러 갈 때 형하고 같이 가.”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간 뒤에야 벨을 눌러봤다. 작은 소리가 났다. 한 번 더 누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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