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뉴욕 이스트빌리지
낡은 무료 진료소에서
정신과 의사 허버트 프로이덴버거는
사람들 얼굴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 문을 밀고 들어오는 자원봉사자들의 눈에는
이른 아침의 물빛 같은 열정이 고여 있었다.
밤을 새우고도 웃었고
끼니를 거르고도 환자의 손부터 잡았다.
그런데 한 해가 저물 무렵
가장 뜨겁던 사람들이 먼저 말수를 잃어갔다.
어깨는 젖은 외투처럼 내려앉았고
다정하던 목소리에는 재가 섞였다.
같은 복도를 걷는데도
발소리가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는 그것을 번아웃이라 불렀다.
다 타버린 불이라는 뜻
그는 알아차렸다.
불은 약해서 꺼지는 것이 아니라
너무 크게 타올라서 꺼진다는 것
마른 짚단은 순식간에 환하지만
해가 지기도 전에 검은 가루만 남긴다.
오래가는 불은
아궁이 깊숙이 앉은 잔불이었다.
소리 없이 붉고
서두르지 않고 데우는 불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못한 채
내 하루를 잘게 찢어 나누어 주었고
밤늦게 도착한 메시지에도
숨을 고르기 전에 답을 보냈다.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가
한 겹씩 얇아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저녁
식어버린 찻잔 앞에 앉아서야 알았다.
남을 데우던 내 불이
정작 나는 한 번도 데우지 못했다는 것
나를 소모하지 않는 사람은
냉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안의 땔감이 얼마나 남았는지
조용히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줄 수 있는 만큼만 건네고
쉬어야 할 때는 문을 닫고
내일의 몫을 오늘 다 쓰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 곁은
언제나 한결같은 온도였다.
겨울 아랫목처럼
뜨겁지 않아서 오래 머물 수 있는 자리
타오르는 사람은 멀리서도 눈에 띄지만
오래가는 사람은
가까이 앉아본 사람만 안다.
은은한 온기가
밤새 꺼지지 않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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