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통년(?)이 온다 꼴통년(?)이 온다 "꼴통년이 온단다" 옆집에서 전화를 받고 온 엄마는 헐떡헐떡거리며, 대문을 박차고 신고 있던 고무신을 발로 차서 벗어던지며 , "집 치우자" 하신다. 엄마의 말 한마디에 우리 는 초 비상이 된다. 엄마도 버거워하는 엄마동생 이 다. 우리 이모는 외갓집의 꼴통이었다. 외할아버지는 항상 한복에 상투 틀고, 흰 수염 가지런히 빗질하시고, 서예와 시조 와 창소 리 도 잘하신 분이셨다. 종갓집 맏어른 이셔서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맏이인 엄마와 이모 . 외삼촌두분. 그중에 이모는 돌연변이였다. 60년대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셨으며, 쌍꺼풀 수술도 하셨다. 춤과 노래도 뛰어 난 이모는 미 8 군부대 에 서 공연 을 다녔었 다. 외할아버지 께서 아시고는 끌려내려 오기 전까지는 이모 의 생활은 화려하였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이모를 시 집을 보내려 했으나, 이모는 싫다며 몇 번이나 퇴짜를 놓 았다. 노처녀로 늙어가게 될까 봐 아버지께서 후배군인을 소개해 주었고, 두 사람은 마음에 들어 약혼날까지 받게 되었다. 약혼 앞두고 있었던 어느 날 이모는 그 남자가 아이 까지 있는 유부남인걸 알게 되었고, 그 원망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아버지에게 돌아가 난리를 쳐댔다. 아버지께서 잘못한 건 틀림없 는 일이다 아버진 몇번이나 이모에게 사과를 하셨지만, 이 모는 끝끝내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였고, 본인에게 말을 하지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죽는 날까지 이모는 아버지와 화해 를 받 아들이지 않았다. 이모에겐 그 일이 엄청난 상처였을까? 이모는 결 혼을 하지않았다. 우리는 이모를 이해하기도 하였지만, 지독한 고집의 강 씨 성을 가진 이모였다. 이모는 깔끔했으며, 음식솜씨도 좋았고, 모든 센스가 뛰어났다. 대구에서 큰 음식점을 하 셨는데 솜씨도 좋았 지만 장사수완도 뛰어났던 이모는 가 게매출이 승승장구였고, 큰 돈을 벌었다. 일 년에 한 번씩 미 더운 직원에게 모든 걸 맡겨놓고 우리 집에 한 달 정도 쉬러 왔었다 . 아마도 군 인 이셨던 아버지의 부재가 편 안할수 있었을 것이다. 아버진 일년에 두.세번 집에 오셨기 때문이다. 우리 집 에 온 이모는 집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부엌과 옷장을 다 뒤집어 깔끔하게 정리해 주고, 매번 씻고 쓸고 닦으며 잔소리까지 포함해서 매일 시끄러운 집이 된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이모는 6살 때였다. 방안에 큰 빨간 고무 다라이 에 물을 받아 엄마와 이모가 나에게 그 통에 들어가라고 했다. 뜨거운 물이 싫어 울고 있으니 , "이 노무 가 시 나. 가 시 나가 깨끗하게 지내야지. 온 동네 놀다가 꼬질해가 어디 잘라카노 빨리 씻자" 이모의 호통소리에 잔뜩 겁을 먹고 1 시간 넘게 이모에게 몸을 맡겼다. 그 어린애가 1 시간 넘게 나올 때는 있었을까? 얼마나 세게 미는지. 아프다 는 말도 하지 못하고, 울지도 못한 나는 기절하다시피 해서 고 무 다 라이 에서 구출되었다. 이모는 나에게 충격과 공포였다. 이모 는 동네할머니들과 자주 어울리며 1 0원짜리 화투를 치기도 하였다. 돈을 잃게 되면 집에 와서 온갖 신경질을 부 려 댔 고 마당에있는 세수대야는 화풀이 상대였다. 어느 날 작은언니 는 듣다가 "이모가 시 나. 짜증 낼 거면 너 거 집에 가라. 인자 우리 집 오지 마라" 이모는 프라이팬 들고 언니 때 릴려고 달려나가고 언니는 멀리 도망가 곤했 다. 언니는 핸드볼선수 였 기에, 달리기를 잘하 여 잡을수가 없어 이모는 씩씩거리며 왔고 언니는 깜깜한밤이되어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 작은언니 와 이모 는 서로 으르렁 거리며 매번 부딪혔 다. 하지만 이모가 무언가 틀어져서 밥을 먹 지않 고, 문을 잠가버리면 달래서 밥 먹게 하는 사람 은 작은 언니였다. 외할아버 지 돌아가신 날. 1980년 12월 31일이었다. 78세로 돌아가셨는데, 눈이 엄청 왔었다. 절대 울지 않을 것 같은 이모는 통곡을 하며 울어 댔 다. 이모 가 우는 모습 처음 보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이모 가 울 수도 있구나. 발인 전 마지막 날 이모는 팝송 틀어놓고, 와인 마시며 할아버지 영정 앞에서 대가족 모인 어른들 앞에서 춤을 추었다. 작은 외할아버지들, 외할머니들 혼내셨지만 "아버지 가 호상인데 마지막날 즐겨야지요." 오빠를 불러서 오빠랑 같이 춤을 추었다. 가족들도 웃으며 외할버지 마지막을 보내드렸다 . 그리 고 이모는 우리곁을 떠났다. 이모의 행방을 아무도 몰랐다. 20년 훨씬 지나고 나서야 이모는 어느 요양원에 계신다고 했다. 이모랑 작은언닌 껴안고 엄청 울었다. 이모는 자궁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모든 걸 정리하고, 아무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입원 과 수술하 였고 조용히 요양원 으로 오셨단다. 모은 재산은 80년대 당시 2억 넘는 돈을 암센터에 기증하고 자기가 요양원 있을 돈 3천만 원을 주고 계셨 다 고했다. 이모성격이 워낙 깔끔하여 가족들에게도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다. 우리가 찾아간다고 해도 절대로 못 오게 하시더니 몇 번의 요구에 언니랑 내가 갔던 거였다. 이모는 엄마보다 5년 전 인 8 2 세에 돌아가셨다. 이모는 자기 장례비용까지 요양원 관계자에게 남겨주고 가셨고, 남은 돈 이천만 원은 외삼촌과 엄마의 바 램 으로 요양원에 기부하 게 되었다. 이모는 본인성격대로 깔끔하게 이 세상을 사셨으며, 정리 가 잘 된 삶으로 이모 다운 엔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