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업고 튀어! 술이 들어간다.쭉쭉쭉!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꺼야? 엄마는 여럿자식을 낳았 으 나, 오빠 아래 홍역으로 먼저 보낸 5살 된 아들도 있었으며 , 작은언니 아 래로 두 번의 임신 이 되 었 지만, 자연 유산 이 되 었 다고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땐 엄 마는 이미 노산이었다. 모유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젖동냥하러 다녔고, 미음으로 먹이고 달 래고 엄마랑같이 나를 목욕시킨 사람은 7살이 된 작은언니 였 다. 언 닌 안쓰러움이었는지 나를 업고 키우기 시작했다. 엄 만 갓난쟁이를 놔두고 틈틈이 한복주문이 들어와 열심히 만들수 있는 것도, 이웃집 농 사일을 하러 다니며 돈을 벌 수 있었던 것도 작은언니에게 나를 맡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언니는 나의 2번째 엄마이다. 나를 먹이고, 재우고 항상 내 옆에 있어주었 다 . 홍수가 나서 온 동네 사람들이 지대가 높은 종철 이 집으로 가야 된다며 소리를 지를 때 , 엄마와 큰언 닌 중요한 물건을 챙 겼 지만, 작은언니는 5살 이었던 나를 제일 먼저 업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캄캄한 어둠을 헤치며 피난을 가 기도 했었다. 강에서 수영하다 허우적 거리는 나를 살려주었고, 7살 때 볼거리(이하선염)로 아파하고 있을 때 언닌 학교에 가지 않고 며칠 동안 내 옆에서 간호해 주었다. 친구들과 장난치다 다리에서 굴러 떨 어져 코뼈가 부러질때도 언니가 달려와서 병원으로 업고 달렸으며, 친구들과 싸워서 울고있으면 친구를 혼내준 사람도 언니였다. 언제나 어디서나 언니는 항상 나의곁을 지켜주었다. 언니가 나 때문에 놀라서 크게 울었던 일이 있었다. 국민학교1학년 . 여름방학즈음 의 토요일 하교를 하여 골 목어귀를 들어올 때 7 살 된 앞집의 성화가 나를 불렀다. "울 할 매 가 막걸리 만들어 장독마다 한가득있다. 우리 함 묵어볼래?" 앞집할머니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뭐든 뚝딱뚝딱. 거친 손으로 만드는 음식은 기가 막히게 맛났었다. 손으로 직접 밀어서 만든 손국 시 와 김치 . 막걸리로 농 부 들에게 적은 돈을 받고 파셨고, 농부들에게 안식처가 되어 주셨다. 끄덕이는 나에게 성화는 장독에서 막걸리를 한 주전자 떠와서 성화동생 성미랑 셋이 먹기 시작했 다. 5살 된 성미는 맛이 이상하였는지 더 이상 먹지 않았고 성화와 난 부어라 마 셔 라 퍼 먹기 시작하였다. 얼큰하게 취 기 가 올라오자, 성화는 우리 할 매는 이거 입고 춤도 추더라 하며 한복윗저고리 를 둘이서 입으며 노래부르며 춤을 추었던 기억까지가 다였다. 작은언니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자 찾으러 다니다 앞집에서 웃으며 난리 치는 소리를 듣고 와보니 가관이었다고 했다. 술이 취해 얼굴이 빨갛고 한복을 입고 앞집 마 당에서 춤을 추며 히죽 웃는 나를 보며 "이 노무 가시나 미칫나? 얼마나 쳐 먹은 기고?" 손바닥으로 나를 후려 치 기 시작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놀란 언니는 나를 들쳐 업 고 뛰기 시작했다. 1 0분 거리에 있는 박약국아재집 으 로 뛰어가며 언닌 엉엉울었다. "갱아. 죽으면 안 된다. 언니가 잘못했다. 죽지 마라" 땀 이 범벅된 언니는 박약국아재집에 들어섰고, 아재 보는 순간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아재요 ! 우리 갱 이 살려 주이 소" 널브러진 나를 보며 아재도 놀라서 "야가 와 이카노? 쪼깨난게 술 먹었나? 얼마나 묵었 노 ?" "몰라예. 한 장독 먹은 거 같심더. 죽으면 안 되는데. 살려주 이소 . 내가 머라카면서 때렸더 이 이래 정신 나갔어 예 ." 아재는 박약국아 지매 에게 동치미 한 사발 먹이게 하고 침을 놓 기시작했다. 엄마와 큰언니가 놀라서 달려 왔 고, 작은언니는 엄마에게 야단을 맞아야 했다. 아재는 걱 정하지 말고 오늘은 여기서 재울테니 집으로 가 있으라며 우리집식구들을 보내셨다. 작은언닌 그날 밤새도록 울었다고 하였다. 본인이 화가나서 때려서 내가 정신없이 쓰러졌다 고 자바카라을 하였다. 엄마는 저 가시나가 술 처먹어서 그런거니 걱정마라 달래었지만 언니가 너무나 서럽게 울어서, 엄마 까 지 우리가 너무 가난해서 내가 너거들 집에서 돌봐야되는데 내가 너거들 못 돌봐서 이런일 생 깄 다. 그날 밤 엄 마와 언니 둘은 통곡을 하며 우는 밤이었다. 정작 술이 취한 나는 나를 이뻐라하는 박약국 아 재 집에서 잘 자 며 , 그 다음날까지 아침밥과 한약까지 먹으며 잘 지내고 있었다. 엄마는 나 에게 '막걸리 금지령' 을 내 렸 지만, 성인이 되었던 난 막걸리가 아닌 소주를 마시고 다녔었다. 지금의 난 어떤 술도 마시지 않는다. 숙제를 일찌감치 다 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