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문학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연구-창작
우리는 가끔 무언가를 쓰려고 바카라상에 앉는다. 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를 글로 옮기는 작업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금세 알게 된다.
바카라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빈 화면을 한참 동안 쳐다만 보는 장면을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그 장면과 별반 다르지 않다. 첫 문장을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몇 문장 쓰지 않았지만 막혀버리는 경우도 많다.
정확히 말하면, 문장 몇 개를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어느 것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너무 거창하거나, 너무 평범하거나, 너무 솔직하거나, 아니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전진하지 못하고 깜빡이는 커서만 응시하게 된다.
어렵게 몇 문장을 썼다가도 다시 멈추고, 지금껏 써 내려왔던 문장들을 지워버리기 일쑤다.
그리고 다시 쓴다. 또다시 지운다.
이러한 실행 착오를 겪는 이유는 반드시 글 쓰는 재주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쓰는 동안 자꾸 또 다른 무언가가 바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분명해 보이던 생각이 두 번째 문장에서 희미해지고, 세 번째 문장에서 다른 이름을 얻기도 한다. 어떤 문장은 쓰고 나서야 그것이 진짜 자기 생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어떤 문장은 지운 뒤에야 그 자리에 비로소 무언가가 남는다.
사람들은 흔히 글쓰기가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이해한다. 생각이 먼저 떠오르면, 그 생각을 문장으로 옮기는 것이 글쓰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카라상 앞에 앉아 본 사람은 이 과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안다. 글은 생각을 그대로 받아 적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글을 쓰는 동안 생각은 바뀌고, 다른 감정들이 생겨나고, 기억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다시 배열된다.
내가 겪은 일을 쓴다고 해서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이 생겨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단어가 정말 그때의 감정에 맞을까? 이 장면을 1인칭으로 써도 될까? 이름을 그대로 써도 괜찮을까?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생략하는 게 좋을까? 너무 피해자처럼 쓴 건 아닐까? 관찰자 입장에서 쓰는 게 좋을까? 이 장면은 장면을 남기는 게 좋을까? 아니면 빼는 게 좋을까? 내가 쓴 '나'는 정말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글 안에서 새로 만들어진 인물이라고 설명해야 하나?
프랑스에는 바카라상 앞의 이러한 머뭇거림을 연구-창작(recherche-création)이라는 이름으로 진지하게 들여다본다.
연구-창작은 글쓰기를 새로운 깨달음을 위한 과정의 일부로 바라본다. 다시 말해, 글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아직 모르는 것을 확인하고 시험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라는 시각이다.
한 사람이 문장을 썼다 지우는 그 시간은, 작품을 위한 준비 단계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사유가 일어나는 시간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글쓰기는 하나의 사고 실험이라고 말한다.
프랑스어 recherche-création은 말 그대로 연구와 창작을 결합한 단어이다. 연구-창작은 창작 행위 자체가 연구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시선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문학계에서 작품을 연구는 이미 완성된 글이라는 시선에서 시작되었다. 작품 자체가 완결된 연구 대상으로 바라보았고, 이 작품을 연구하는 연구자는 작품 바깥에서 그것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연구-창작의 시각에서는 창작 과정 자체도 작품 연구의 일부로써 받아들여지고 있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형식을 바꾸고, 목소리를 바꾸고, 시점을 바꾸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쓰기가 왜 사고의 실험이라고 말하는 걸까?
이유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생각이 달라지고, 작품의 창작 과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작품을 쓴 작가의 생각과 시선과 사유의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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