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수왕사 '송화백일주'
조선 시대의 가혹한 억불 정바카라과 일제강점기의 주세령이라는 거대한 폭풍 속에서 수많은 사찰의 항아리들이 깨어지고 그 안의 향기들도 함께 증발했다.
주세령(酒稅令)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 조선총독부가 술에 세금을 부과하고 주류 생산을 통제하기 위해 공포한 법령이다.
법당의 불빛마저 희미해지던 격변의 세월, 사찰 곡차의 숨결을 온전히 품은 채 기적처럼 현대까지 살아남아 대한민국 지정 명주가 된 황금빛 액체가 있다.
전북 완주 모악산의 깊은 품에 안긴 수왕사(水王寺)의 ‘송화백일주(松花百日酒)’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모악산 정상 해발 600미터가 넘는 아찔한 고지, 안개와 구름이 발밑으로 흐르는 그곳에 수왕사가 자리하고 있다.
물이 왕성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답게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는 이곳에서 스님들은 혹독한 추위와 낮은 기압 때문에 생기는 고산병을 앓곤 했다.
몸이 얼어붙고 기혈이 막힐 때마다 승려들은 지천에 널린 소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소나무의 생명력을 항아리에 담기 시작했다.
조선 인조 시절, 수왕사를 중창하고 사찰 곡차의 아이콘이 된 진묵대사는 이 절의 맑은 샘물에 오곡과 찹쌀을 안치고, 소나무가 봄날의 절정에서만 내어주는 노란 꽃가루인 송화(松花)를 곁들여 술을 빚었다.
이 술은 철저하게 사찰의 주지 스님에게만 단맥(單脈)으로 비밀리에 전수되었다.
스승 스님이 제자 스님에게 은밀하게 주방문을 일러주던 그 폐쇄적인 전승 방식이야말로, 일제가 전국의 가양주를 말살하고 밀주라며 항아리를 깨부수던 서슬 퍼런 단속 속에서 송화백일주를 지켜낸 단 하나의 방패였다.
그렇게 음지에서 숨을 죽이고 이어져 온 승려들의 비밀 레시피는 현대에 이르러 위대한 결실을 보았다.
1994년 대한민국 농림축산식품부가 우리 고유의 전통식품을 보존하기 위해 ‘식품명인’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 수왕사의 주지로서 이 곡차의 맥을 지켜온 벽암스님(본명 조영귀)이 대한민국 지정 식품명인 제1호라는 역사적인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사찰의 골방에서 약으로 쓰이던 곡차가 국가가 공인한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송화백일주는 일반적인 발효주에 머무르지 않는다.
찹쌀과 누룩으로 정성껏 밑술을 치고 발효시킨 뒤, 이를 가마솥에 넣고 끓여 맑은 이슬을 받아내는 증류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얻어진 투명한 증류 원주에 송홧가루와 솔잎, 산수유, 구기자, 오미자, 그리고 달콤한 꿀을 넣고 백일(100일)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저온에서 숙성시킨다.
백일의 기다림이 지나면, 술은 마침내 소나무의 영혼을 닮은 영롱한 황금빛으로 거듭난다.
알코올 도수는 38도로 입술을 대는 순간 타오를 듯 뜨겁지만,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입안 가득 번지는 알싸하고 청량한 솔 향은 가슴속 번뇌를 단숨에 씻어내 준다.
절체절명의 탄압 속에서도 주지 스님들의 손을 거쳐 천 년의 세월을 버텨낸 송화백일주.
그 잔에 담긴 것은 단순한 알코올이 아니라, 꺾이지 않고 푸름을 유지해 온 소나무의 기상과 사찰 곡차의 지조,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