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브라더스의 시작과 끝
2008년 여느 날
거리의 불빛은 여전히 반짝이고
사람들은 아침이면 여전히 출근을 했다.
카페에는 커피향과 함께 음악이 흘렀고
뉴욕의 증권가 역시 분주했다.
하지만 그 해 가을부터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미국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파산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난생 처음 듣는
금융 용어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유동성 위기'
'신용 경색'.
사실 2007년부터
알람은 울리고 있었다.
믿고 있던 집값 상승률이 멈춰들었고
대출 연체가 증가하고
부동산에 관련된 몇몇의 투자상품들이
문제가 되었다.
즉 시장 내부 사람들은
무언가 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쓰나미의
작은 첫 물결이었는지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당시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던
필자의 지인은 이런 말을 했었다.
“어딘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다만 아무도 무슨 일 때문인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러면서 말했다.
“평소엔 절대 전화를 먼저 하지 않던 금융회사들이
계속 '자금이 얼마있냐'를 확인하고 있어."
이유는 모르는 채로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많은 미국인들은 노후 대비를
금융 기관과 함께했다.
은행 예금과 더불어
월급의 일부는 연금계좌에 넣었고
그 돈은 다시
펀드와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누군가는 IT 기업에
누군가는 채권 펀드에
누군가는 안전하다고 소개된
금융상품에 투자했을 것이다.
그것은 특별한 투자라기보다는
미국 중산층의 평범한 삶에 가까웠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의 일부를
꾸준히 투자하고
은퇴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안한 미래를 꿈꾸며
그렇게 금융시장 위에
쌓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2008년 어느 날
그 시스템이 흔들렸고
은퇴를 앞둔 한 가장은
평생 모은 자산 대부분을 잃었다.
1700년대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
하지만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은
영국보단 미국에서 폭발했다.
영국의 옷 공장이
밤낮으로 돌아갈수록
수요가 폭발한 것이
바로 면화였다.
이는 섬나라였던 영국보다는
광할하고 따뜻한 기후에
흑인들의 노동력까지 더해진
미국 남부의 목화밭을
세계 산업의 중심부로 만들었다.
목화밭이 황금밭*이 된 것이다.
*당시의 면화는 오늘날의 반도체같은 핵심 산업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남부의 면화 농장·노예제·흑인 노동 현실을 다룬 대표적인 영화들도 꽤 많죠.
바로 그 시기인 1850년
독일계 유대인 이민자 리먼 형제가
면화 무역이 활발하던
미국 남부 알라바마(Alabama)
몽고메리(Montgomery)에
작은 상점을 연다.
1800년대 당시 독일은
지금처럼 통일된 국가도 아니었고
특히 유대인 상인 가문에게
가혹했기에
기회의 땅 '아메리카'에
넘어 온 것이다.
그들은 지역 잡상인부터 시작했다.
생활용품을 팔고, 농장주들과 거래를 터서
필요한 물건을 공급했다.
자연스레 면화 무역도 하면서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돈의 흐름' 이었다.
사정은 이렇다.
농장주들은 늘 돈이 부족했다.
봄에 면화 씨앗을 뿌리면
가을에 수확하기 전까지
몇 달 간 노동력을 유지하면서
땅을 운영해야 했기 때문이다.
현금이 부족한 농부들은
면화로 물건값을 지급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상인들은
물건을 파는 것을 넘어
농장주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이때부터 리먼 형제 같은 상인들이
농장주의 “신용도(creditworthiness)"
를 체크하게 되었다.
이제 리먼 형제는 물건을 파는 것보다
<이 농장주가 제 때 돈을 갚을 수 있는가?>
를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고
이 판단력을 거래함으로써
또 다른 부를 창출한 것이다.
그래서 당시 상인들은
'어느 농장이 생산성이 좋은지,
어떤 농장주가 성실한지,
누가 정직한지,
올해 작황은 어떨 지' 등을
분석하는 일종의 전문가가 된다.
즉, 이것은 현대 은행의
초기 모습이었다.
면화 무역이 커지면서
미국 경제는 빠르게** 팽창했다.
철도가 대륙을 연결하고
동시에 산업과 금융이
확장할 곳을 찾아다녔다.
**19세기 미국은 광활한 대륙을 철도로 연결하면서 경제의 규모를 급격히 확대했습니다. 철도 산업, 석유 산업, 철강 산업, 자동차 산업 등이 차례로 부상하면서 막대한 자본이 흐르기 시작한거죠.
철도보다 항구가 훨씬 중요했던 시기.
마침 뉴욕의 맨해튼은
허드슨 강(Hudson River)을 끼고
강/ 바다/ 천연 항만 등
모든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내륙까지 배가 들어오기 좋았다.
그래서 돈의 중심이 점차
남부 농장에서
북쪽의 뉴욕(New York)
맨해튼으로 이동했다.
특히 도시의 경계 역할을 하던
월스트리트(Wall Street) 에는
은행, 투자회사, 증권거래소 등
거대한 자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1920년, 리먼브라더스도 뉴욕의
월스트리트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상인이 아니라
거대한 투자은행으로 성장했다.
전쟁도, 대공황도, 수많은
경제위기도 버틴 회사.
158년 역사를 가진
'월스트리트의 거인'.
2008년 9월
Lehman Brothers 가 파산했다.
더 잔인하게 이야기하면
월스트리트의 거인이 산산조각나서
전 세계로 팔려 나갔다.
사람들은 이 거대한 금융회사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에
그 충격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1990년대 미국 시장은
인터넷 기업들이 휩쓸었다.
그 열풍은 유행이 넘어
집단적 흥분 상태로 지속되었다.
“곧 인류 문명이 완전히 바뀐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1999년도 사람들의
당시 분위기를 쉽게 설명하기조차 어렵다.
사람들이 단순히 인터넷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탄생”의
신념에 투자를 한 것이었다.
Y2K 공포도 넘어선 그들이지만,
2000년 초
닷컴 버블(Dot-com bubble)은 붕괴했다.
원래 기업은
매출/ 이익/ 현금흐름 등을
기반으로 평가받아야 하지만
당시 닷컴 기업들은
접속자 수/ 회원 수/ 미래 가능성
만으로 기업의 주가가 폭등했다.
사람들이 인터넷의 가능성을
너무 높게 평가한 나머지
기업의 현실보다
미래를 내다보고 너무 높은 가격에
주식을 산 것이다.
개인, 기관, 언론, 기업들 할 것 없이
모두가 광풍에 젖어 있다가
미 연준이 금리를 올리게 되면서
달콤했던 꿈이 깨져버린 것이다.
실제로는 실적이 좋지 않았던
인터넷 기업의 주가 폭락이
도미노처럼 시작되었고
2001년엔
9-11(September 11 attacks) 사태까지
일어나면서
사람들의 투자심리는
바닥을 쳤다.
수많은 이들이 자신감과 재산을 잃었고
미국 경제는 점점 위축되고 있었다.
이 때, 동시에 중요한
투자 심리 변화가 나타나는데
이렇게 위험한
기술주들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사람들은 좀 더 현실적이고
안전해 보이는 자산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부동산이었다.
닷컴버블에서 얻은 교훈으로
사람들은 부동산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마침 미국 연준이
경기 침체를 완화하기 위해
금리를 크게 낮추었다
즉, 돈을 빌리기가 쉬워졌다.
이전엔 집을 살 수 없었던 이들이
대출로 집을 사면서
그 수요를 증가시켰고
당연히 집값의 상승이 시작되었다.
집값은 계속 올랐고
주변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
이에 언론까지 가세하여
부동산에 대한 낙관론을 말한다.
“결국, 실체가 확실한 부동산이 가장 안전하다.”
이제 사람들은 집값이
영원히 오를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주식은 볼불복의 투자 느낌이지만
집은 거주의 안정감과 단란한 가족,
그리고 중산층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심리적 방어막까지 강해졌다.
집값은 더욱 가파르게 올랐고
은행들은 점점 더 쉽게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집은 더이상 거주 공간이 아닌
투자상품이었다.
우리는
“이번엔 다르다”라고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때로는 혁신을 만들고
때로는 거품을 만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은행은 원래
대출 심사를 꽤 신중하게 해야한다.
집이 필요한 사람에게 대출 후
수십 년 동안 은행의 원금이 묶이고
대출 위험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똑한 우리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들이
아이디어를 냈다.
그 대출들을 또 다른 상품으로
소위 '택 갈이'를 하자는 것이었다.
<이 수많은 부동산 담보 대출 서류들을
그냥 들고 있지 말고
작게 쪼개서 섞은 다음
묶어서 투자상품처럼 팔면 어떨까?>
이게 바로 모기지의 증권화이다.
MBS(Mortgage-Backed Securities).
대출을 해주면 매달 이자가 들어온다.
금융회사 입장에선
그 이자 흐름을 몇 개씩 묶어
매달 이자가 나오는 다른 채권 상품처럼
팔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을 해준만큼 채권을 만들어
타인에게 팔면 되니까
대출 원금이 묶일 필요가 없었다.
돈이 묶이지 않으니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대출을 해줄 수 있었다.
MBS는 주택담보대출을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는 자산>
쯤으로 만들게 되었고
원래라면 대출받기 어려운 사람들에게까지
주택담보대출이 이뤄졌다.
즉, 월급쟁이가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큰 주택을 구입하는 일이 일상화되었고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이
대출 심사에서 거절당하지 않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집주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슬롯 전체에 확산되어
이를 구현하기 위해 은행들이
심사 기준을 계속 낮추었다.
광풍의 이면에서
악마가 자라나고 있었다.
원래 MBS 개념은 1970년대에 생겼다
이론상 수천 개 대출을 묶었으니
일부가 부실해도
전체는 안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위험한 대출은
MBS의 복잡한 구조 속에 숨겨졌고
그 속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이 안전한 자산이라 믿었다.
이것은 일종의 금융적 속임수였다.
신용도가 낮은 차용인의 위험한 대출도
쪼개져 섞이면 안전할 것이라는 논리속에
금융 기관과 이익 관계에 있던
신용평가 회사들이
이 상품들에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했다.
일반 은행이 안전하고 묵직한
대형 SUV 라면
리먼브라더스, 골드만 삭스 같은 회사들은
슈퍼카(스포츠카) 로 비유할 수 있다.
은행에 비해
정부의 간섭과 보호를 덜 받으며
공격적인 투자를 하던 그들은
점점 더 복잡한 구조상품에 큰 레버리지의
위험한 대출까지 넣어버린다.
더욱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렇게 복잡한 금융상품들이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은
이 상품들을 유럽의 은행,
일본의 금융기관, 그리고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팔아넘겼다.
리먼브라더스도 이 부동산 광풍에
깊게 빠져 있었다.
당시 미국 부동산 시장이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 위에 그들은
엄청난 규모의 돈을 쌓아올렸다.
리먼의 자산 중에
부동산 관련 자산의 비중은 점점 커져갔고
그들은 이것을 경제 성장의 기회로 봤다.
하지만 자신들이
거대한 시한폭탄 위에
앉아 있는 줄은 몰랐을 것이다.
2006년 중반을 지나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먼저 금리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개인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함께 올라갔다.
2~3%로 대출받았던 사람들이
금리 재조정 시점이 오자
7~8%의 높은 금리로 변경되었다.
이렇게 늘어난 월 납입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상환 불능이 증가하자
압류 절차가 급증했다.
은행들은 상환하지 못하는 차용인들로부터
주택을 압류하기 시작했다.
압류된 주택들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니
그만큼 주택 공급이 증가했다.
그렇게 집값 상승은 멈추었다.
그리고 이내 하락세로 돌아섰다.
아, 이제 악순환이다.
“집값이 계속 오를 테니,
만기 후에 재대출(refinancing)하면 되겠지”
라던 낙관론도 서서히 사라졌다.
떨어지는 집값에 은행도
더 이상 재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주택가격이 떨어지자
담보로 발행된 모기지 담보부 증권 가치도
함께 떨어진다.
신용평가 회사들이 이 상품들의
신용등급을 낮추기 시작하고
이 상품들을 보유하고 있던 은행,
보험회사, 연기금의 자산이 갑자기 감소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때 비로소
이 복잡한 금융상품의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
아무도 정확히 몰랐다는 것을 알게된다.
금융 시스템엔
본질적인 믿음이 깔려있다.
사람들이 돈의 가치와
은행을 건전성
금융기관들의 도덕성을 믿는다.
그 때문에 경제가 작동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 믿음이 사라졌다.
은행 간 대출 거래도
불신으로 가득 찼다.
상환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8년 여름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무너졌다.
그 다음 모기지 회사들이 무너졌다.
그리고 9월 15일
월스트리트의 거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을 신청했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전 세계 경제에 충격파를 보냈다.
전 세계의 경제는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임을 멈추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저 회사도 망할 수 있다고?”
그들이 잃은 것은 돈 만이 아니라
신뢰를 잃었다.
은행
월스트리트
금융기관
그리고 기존 금융 시스템 전체에 대한
신뢰 말이다.
바로 그 무렵이었다.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정체불명 인물이 등장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