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명의 유령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정체불명의 인터넷 인물

by매드본

정체 없는 혁명가의 출현과 증발


2009년, 인터넷의 한구석에서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프로그래머와 싸이퍼펑크(cypherpunk)들이

이메일로 토론하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중앙기관 없이 작동하는 P2P 전자화폐 시스템을 만들었다."

라는 내용의 9페이지짜리 논문 하나를 올린 것이다.


*당시엔 실시간 커뮤니티 문화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메일 기반 토론장이 주된 토론장이었습니다.


여기서 사이퍼펑크(cypherpunk)들은

'정부나 기업의 감시 없이 개인의 자유를 기술로 지키자!'

라는 주장을 하는 자들로,

암호화 기술/ 익명성/ 프라이버시/ 디지털 화폐

에 굉장히 관심이 높았다.


지금으로 치면 정체불명의 개발자가

해커·개발자 단톡방에 갑자기 들어와
<은행 없이 돌아가는 인터넷 화폐 만들었음>
이라고 올린 느낌이었다.


당시에 그 논문을 본 대부분이

"또 괴짜가 만든 이상한 프로젝트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사토시 나카모토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는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밝혔지만

이것이 사실인지 어느 누구도 확증할 수 없다.


그는 실제 세계에 등장한 적이 없고

이메일로만 대화를 주고받으며

포럼 글을 작성하고

코드 업데이트도 하였으나

나이, 국적, 성별, 얼굴, 실명

이 모든 것들이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사토시가 썼던 글은 아직 남아있다.

그의 글의 특징은 매우 차분하고 과장이 없으며

기술적이고 논리적이다.


하지만 사토시의 초기 코딩 자체는

오늘날 기준으로 완벽무결한 수준은 아니었다.


실제로 초기 비트코인 코드를 본 개발자들은

구조가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오래된 스타일에

급조한 흔적도 있다고 말한다.

즉, 아름다운 코드 라기보다

개발자가 밤잠 못자고

'일단 어떻게든 작동하게 만든 코드'

에 가까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투박한 코딩실력으로 사토시는

암호학, 네트워크, 경제학, 게임이론, 인간 심리, 인센티브 구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완벽하게 엮어냈다.


그 당시의 환경에서 무너지지 않고 실제로

작동하는 인터넷 화폐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 설계 완성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것은

사토시가 한 명의 개인인지,

아니면 여러 명이 사용하는 가명인지조차

우리는 모른다.


그만큼 그는 권력을 잡으려 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신원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개발자라는 소유자에서 벗어난

완벽한 '탈중앙화'를 이룬 것이다.


단순한 인터넷 실험 같았던 비트코인.

첫 공개 후 사람들은

사토시가 공개한 비트코인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서 실행하기 시작했다.


Windows 운영체제를 위한

.exe 실행 파일 형태도 존재했으며

그 비트코인 프로그램에는

지갑(wallet)/채굴(mining)/노드(node) 거래 기능

이 전부 들어있었다.


즉,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비트코인 네트워크에 자동으로 참여하면서

장부 저장/ 채굴/ 송금을 모두 할 수 있었던 것.

즉, 노트북만 켜놔도 CPU로

비트코인의 채굴이 가능하던 아름다운 시절이랄까.


**지금 기준으론 프로그램이 매우 투박했습니다.

텍스트와 간단한 버튼만 있는 개발자용 프로그램 느낌이었죠.


당시엔 비트코인이

“실제로 돌아가는 시스템”

이라는 것 자체로 충분히 주목받을만했다.

인터넷에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실제 작동하는 시스템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흥미를 느낀 초기 개발자들은

거래와 채굴 테스트를 하며 버그를 발견했고

코드를 분석했다.


즉, 오픈소스 실험 프로젝트 분위기였던 것이다.


비트코인의 시작


2009년 1월 3일은 사토시가

자신의 컴퓨터에서 비트코인 프로그램(Bitcoin v0.1)을 실행한다.


비로소 첫 번째 비트코인 장부인

'제네시스 블록' 이 만들어졌고

비트코인 네트워크가 시작된 날이다.


보통 블록이 추가되면 이전 블록과 연결되는데,

이 제네시스 블록은 맨 처음이기 때문에

연결할 과거가 없었다.

마치 일기장의 첫 페이지처럼
그 앞에는 아무것도 없기에 특별하다.


그런데 이 첫 페이지에는

이상한 문장이 하나 들어 있었다.

“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2009년 1월 3일, 영국 재무장관이 은행들에 대한 두 번째 구제금융을 앞두고 있다.”


이는 당시 영국 더타임즈(The Times) 신문의 헤드라인 문구였는데


사토시는 아마 이 문구를 통해

이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 은행이 실패하면, 고객들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필자가 앞장에서 새로운 블록이 추가될 때

거래 기록과 함께 보상이 기록되는 규칙을 언급했다.

당연히 이 첫 블록에도 보상이 기록되어 있다.

보상은 바로 50 비트코인.


하지만 이 보상은 일반적인 채굴 보상처럼

전송이 불가능해서 사용 가능한 방식은 아니었다.


사토시의 의지로

제네시스 블록은 일반 블록과

다르게 처리되어 있고

그 안의 50 비트코인은 아직도

소비되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다.


이 비트코인 첫 50개는

누군가가 소비하고 팔기 위한 돈이라기보다

시스템이 시작되었다는 표식처럼 남아버린 셈이다.


그 며칠 뒤인 2009년 1월 8일

사토시는 암호학 메일링 리스트에 Bitcoin v0.1을 공개한다.


당연하겠지만

당시 비트코인 네트워크 풀은 매우 작았다.

사실상 사토시와 할 피니 (cypherpunk)

외에 극소수 개발자 정도만 참여중인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역사상 최초의 비트코인 송금이 일어난다.

물론 테스트 용도였을 것이다.


2009년 1월 12일에

사카모토(Satoshi Nakamoto) → 할 피니(Hal Finney)

10 개의 비트코인을 보낸 거래이다.


그보다 더 유명한 일이 있다.

송금 전 날인 2009년 1월 11일,
할피니는 트위터(Twitter)에 아주 짧게 글을 올린다.



“Running bitcoin (비트코인 실행 중.)"



이 문장이 지금 역사적 상징처럼 남아 있다.

그 이유는

특유의 '담백함' 때문이다.


만약 그가

“우아! 미래의 혁명이 시작된다!”

라고 호들갑을 떨었다면
지금처럼 상징적인 기록으로 남진 않았을 것이다.


저렇게 담백할 수 있었던 건

당시 비트코인은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격도 없고 거래소도 없고 시장도 없이

네트워크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테스트 중이었으니까.


그런데, 화폐의 전송은 성공적이었다.

즉, 인터넷상에서 가치의 저장 기록이

한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이동했다.

상상만 했던 것이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그 기록이 유지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조금씩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설마, 진짜 가능한 건가?”


초기의 개발자들과 암호학자들은

반신반의 하며 서로 프로그램을

실행해보기 시작했고 채굴도 해보고

몇 천, 몇 만 비트코인을 송금하고

블록도 생성해보며

시스템이 계속 유지되는지를 실험했다.


누군가 컴퓨터를 꺼도
다른 컴퓨터들이 장부를 유지하고 있었다.

은행도 없고 중앙 서버도 없는데
거래 기록이 계속 살아남았다는 말이다.


송금과 채굴을 아무리 반복해도

시스템은 계속 작동했다.

마치 인터넷 어딘가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현실 세계의 가치를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점차 비트코인으로

'거래'를 생각하기 시작했고

대중적으로 유명한 “첫 현실 상품 거래”가

바로 래스즐로(Laszlo Hanyecz) 의 피자 사건이다.


2010년 5월 22일,

래스즐로는 인터넷 포럼에 글을 올린다.


“누가 파파존스 피자 2판 사다주면 10,000 BTC 드림.”


그리고 실제로 거래가 성사되는데

당시 19세였던 제레미(Jeremy Sturdivant, 온라인 닉네임: “jercos”)

이 피자 2판을 달러로 시켜주고 10,000 비트코인을 받는다***.


***당시 10,000 비트코인을 채굴하기 위해선 채굴 전기값, 인력, 희소성, 관심 등등을 포함해 사람들이 느끼는 가치가 대략 40달러 정도였습니다.


그 전까지 그저 인터넷 숫자였던 비트코인이

어느 날 갑자기 실제 피자와 바뀐 것이다.

사람들이 처음으로

“이걸로 실제 물건을 살 수 있네?” 라고

체감하는 순간이자

비트코인이 처음으로

현실 세계 상품으로 교환된 사건이었다.


사라질 준비


그 이후 시간이 갈수록 비트코인은

단순한 인터넷 실험을 넘어
대중의 관심도 끌기 시작했다.


개발자들은 “진짜 독특한 시스템이다.”
라고 이야기했고

사용자들은 서로 비트코인을 주고받으면서

관리자가 없이도 네트워킹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에

신기해 하고 있었다.


비트코인 포럼에는

버그 리포트/ 채굴 이야기/ 테스트 송금/ 블록 생성 기록

같은 글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래도 아직은 시장이 작았고
사용자도 극소수였지만

인터넷 어딘가에서는 분명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났다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이걸 만든 사람은 이제 어떻게 할까?”


왜냐하면 기존 세상의 흐름은 늘 같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혁신적인 기술을 만들면

회사를 세우고, 투자금을 받고

언론에 등장해서 산업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토시 역시

그렇게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토시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점점 말이 줄어들었다.

점점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원래 그는 온라인 상이었지만

꽤 활발하게 활동했다.

초기에는 이메일 답변도 바로하고

포럼에 글도 쓰고 버그도 열심히 수정하고

사람들에게 비트코인 작동 원리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말투는 항상 차분했다.

물론 가끔 피곤섞인 말투도 쓰긴 했지만

과장도 없었고 혁명가 같은 말도 하지 않았다.

작동방식을 설명하는 엔지니어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포럼의 답글 간격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이메일 답장도 늦어졌다.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은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다.


사토시가 점점 <사라질 준비>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그가 권한을 넘기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했는데

초기 핵심 개발자였던 Gavin Andresen에게
프로젝트 유지 권한을 넘긴 것이 시작이었다.


보통 창시자는 시스템이 커질수록 더 중심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사토시는 반대였다.


마치

“이제 비트코인은 나 없이도 굴러가야 한다.”

라고 생각한 사람처럼 말이다.


만약 사토시가 원했다면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발자 중 한 명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는 얼굴을 절대 드러내지 않았고

실명도 공개하지 않았으며

어느 국가에 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인터넷 속 그림자처럼 희미해져갔다.


그리고 2011년 무렵
사토시는 사실상 마지막 메시지들을 남긴다.

그중 가장 유명한 문장이 바로 이것이다.


“I’ve moved on to other things.”

“나는 다른 일로 넘어갔다.”


짧고 건조한 문장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이후 이메일도 멈췄고

포럼 활동도 끝났으며

공식 메시지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정말로 사라진 것이다.


당시 커뮤니티 내부 분위기도 묘했다.


“사토시가 법적 문제를 걱정하는 건 아닐까?”

“정부가 추적하기 시작한 건 아닐까?”

“원래부터 익명을 유지하려 했던 것 아닐까?”


이것은 당시 우리로썬 굉장히 낯선 장면이지만

사토시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사토시라는 인간보다
코드와 네트워크 자체를 보기 시작했다.


“누가 만들었는가” 보다

“정말 중앙 없이도 시스템이 유지되는가?”

가 더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토시는 지금 껏 바로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토시가 빠진, 그냥 <비트코인 네트워크>

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그 순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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