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에게 평등은 가장 강력한 언어다. 가난한 사람에게 평등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겪어온 고통에 대한 설명이며, 앞으로 달라질 삶에 대한 약속이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에게 가진 자와 똑같은 권리를 갖게 해주겠다는 말은 매력적이다. 평생 자신의 노력과 관계없이 가난했던 사람에게 이제는 부자와 같은 출발선에 세워주겠다는 말은 희망이 된다. 그러나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언어는 거짓말처럼 들리는 말이 아니라 너무나 옳게 들리는 말이다. 평등은 바로 그런 언어였다.
인류가 평등이라는 말을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근대의 평등은 신분제와 특권에 맞서 모든 시민을 법 앞에서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자는 데서 출발했다. 프랑스혁명이 내세운 평등 역시 인간의 법적·시민적 지위를 문제 삼은 것이었다. 인간이 귀족으로 태어났는가 평민으로 태어났는가에 따라 법적 권리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을 확대하는 거대한 변화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평등은 법적 권리의 영역을 넘어 재산과 소득과 생활조건의 차이를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인물이 카를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슬롯에서 형식적인 법적 평등만으로는 인간의 실질적인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법 앞에서는 같은 인간이라 하더라도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과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사람 사이에는 거대한 경제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마르크스가 꿈꾼 슬롯는 계급이 소멸한 슬롯였고, 생산과 분배의 구조 자체를 바꾸려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 자신조차 평등을 단순히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고타강령 비판』에서 그는 동일한 기준을 서로 다른 능력과 조건을 가진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 자체가 실질적으로 불평등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에서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사상이 역사 속에서 정치적 혁명의 언어로 변하는 과정에서 평등은 훨씬 단순하고 강력한 구호가 되었다. 자본가와 노동자, 지주와 농민,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라는 대립구도가 만들어지고, 슬롯의 고통을 특정한 계급의 존재와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가난한 사람에게 이것은 대단히 강력한 설명이었다. 내가 가난한 이유는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너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개인이 짊어지고 있던 실패의 감정을 슬롯적 부당함의 문제로 바꾸어준다. 나의 고통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라고 말해주는 순간, 개인은 자신의 불행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평등은 여기에서 정치적 마약이 되어버렸다.
마약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다. 고통을 잊게 하고 미래에 대한 강렬한 기대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이다. 현실에서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언젠가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온다는 약속은 현재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특히 극심한 빈곤과 전쟁, 신분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를 경험한 슬롯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혁명가는 현실의 복잡한 원인을 설명하기보다 고통의 원인을 하나의 적으로 단순화할 수 있고, 그 적을 제거하면 새로운 평등슬롯가 도래한다고 약속할 수 있다.
레닌의 러시아가 그러한 사례였다. 혁명 이전 러시아에는 극심한 슬롯적 불평등과 전쟁, 빈곤이 존재했다. 볼셰비키는 노동자와 농민의 이름으로 기존 질서를 전복했고, 생산과 분배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했다. 레닌은 실제로 식량을 계급적 기준으로 국가가 배급하고 주요 식량의 국가 독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유로운 곡물 거래를 부유한 농민이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규정했고, 국가가 곡물을 확보해 노동자와 농민에게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평등의 언어는 아주 빠르게 권력의 언어로 변한다. 누가 더 많이 가지고 있는가를 판단하려면 국가가 개인의 재산을 알아야 한다. 누가 더 많이 생산하는가를 판단하려면 생산량을 측정해야 한다. 누가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를 결정하려면 국가가 생산과 유통을 통제해야 한다.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행정은 결국 사람과 재산과 생산물을 분류하는 거대한 체계가 된다. 평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로운 거래와 사적 소유를 제한하는 것이 정당화되기 시작한다.
모택동의 중국에서는 이러한 평등의 언어가 훨씬 거대한 규모의 슬롯실험으로 이어졌다. 중국혁명은 농민에게 토지와 새로운 슬롯를 약속했고, 기존 지주계급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슬롯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재편했다. 이후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 체제가 추진되면서 농업과 생산은 집단화되었고, 개인의 생산활동은 국가가 설정한 거대한 목표 아래 편입되었다.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이어진 대기근은 단순한 자연재해로 설명할 수 없는 인위적 재난이었다는 연구가 존재한다. 농민들의 개인적 식량생산을 제한하고 인민공사에 편입시키며 과장된 생산량 보고가 정바카라 판단에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정확한 사망자 수에는 연구자마다 차이가 있지만 약 3천만 명이라는 인구학적 추계도 제시된다.
평등을 외쳤던 슬롯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바로 여기에 정치적 평등언어의 가장 무서운 지점이 있다. 처음에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를 없애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차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누가 가진 자이고 누가 가지지 못한 자인지를 국가가 결정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누가 슬롯에 기여하는 사람이고 누가 장애물인지 구분해야 한다. 결국 평등을 실현한다는 명분 아래 새로운 분류가 만들어진다. 과거의 계급이 사라지는 대신 혁명에 충성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국가의 정바카라을 따르는 자와 반대하는 자라는 새로운 구분이 생겨난다.
북한의 경우도 이러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해방 이후 김일성이 이끄는 북한 정권은 1946년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당시 법령은 일본인과 일부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무상으로 분배한다고 규정했다. 당시 토지가 없는 농민과 빈농이 많았던 현실에서 이러한 토지개혁은 상당한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북한은 이후 주요 산업의 국유화와 농업의 협동화를 진행했고, 1958년에는 농업과 수공업 및 중소상공업의 협동화를 완료하면서 슬롯주의 경제체제를 구축했다.
처음 농민에게 토지를 나누어주겠다는 약속은 매우 강력한 정치적 언어였다. 토지가 없는 농민에게 토지는 단순한 재산이 아니라 삶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이후 농업이 집단화되면서 개인의 토지 소유와 생산의 자율성은 축소되었다. 처음에는 지주의 토지를 빼앗아 농민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평등이었다면, 나중에는 농민들이 다시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산수단과 경제활동을 협동화하는 것이 슬롯주의적 평등의 이름으로 추진되었다. 평등의 이름으로 시작한 혁명이 또 다른 소유관계와 통제체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쿠바에서도 비슷한 역학이 나타났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혁명의 상징이 되었고, 슬롯적 불평등을 제거하고 새로운 슬롯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경제구조를 급격하게 바꾸었다. 카스트로 정권은 외국계와 국내의 주요 재산과 기업을 국가가 장악하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임금과 임대료, 공공요금 등에 대한 국가 개입을 확대했다. 당시 미국 국무부 역사자료에도 1959년 쿠바에서 정부가 민간경제에 광범위하게 개입하고 외국 및 국내 소유 자산에 대한 통제를 확대했으며, 체 게바라가 중앙은행 총재가 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체 게바라는 특히 혁명적 인간이라는 이상을 내세웠다. 물질적 보상과 개인적 이익을 넘어 새로운 슬롯를 위해 헌신하는 인간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과 생산성은 정치적 구호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고 욕구가 다르며 노동에 대한 동기도 다르다. 평등한 슬롯를 만들겠다는 이상이 인간의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기 시작하면, 결국 국가는 인간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더욱 강한 통제수단을 필요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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