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이 세상을 직접 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대인이 매일 마주하는 세상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 발로 딛고 보고 만난 현실이 아니다. 멀리 떨어진 곳의 전쟁은 화면을 통해 보고, 낯선 나라의 빈곤은 사진과 영상으로 알며, 이름 널리 알려진 이들의 삶은 기사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접한다.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이 슬롯에서조차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우리는 매일같이 디스플레이를 통해 들여다본다. 결국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의 앞에는 언제나 하나의 문이 서 있다. 그 문을 통과한 것만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고, 그 문이 바로 미디어이다.
미디어의 진정한 힘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미디어가 거짓말을 하는가"라는 질문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않는가이다. 슬롯라는 곳에서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누군가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 누군가는 밤늦게 돌아오며, 아이를 키우고 사업을 시작하고 때로는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며 그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간다. 누군가는 큰 부를 쌓고 누군가는 삶이 팍팍해지며,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이도 있고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하는 이도 있다. 배울 기회를 충분히 얻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으며, 남다른 재능을 타고나는 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이도 있다. 운이 따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미디어는 이 현실의 전부를 담아낼 수 없다. 신문에는 지면의 한계가 있고 방송에는 시간의 제약이 따르며 온라인 기사와 짧은 영상에서는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압박이 늘 존재한다. 몇 초 안에 흥미를 끌지 못하면 그냥 지나쳐지고 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그래서 현실은 필연적으로 선택되고 압축된다. 어떤 사건은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어떤 사건은 구석진 곳에 한 줄로 적히고 만다. 어떤 사람은 슬롯 전체를 대표하는 듯 등장하고 어떤 사람은 그저 숫자 속에 묻혀 사라진다. 어떤 모습은 반복해서 보여지고 어떤 모습은 한 번 비친 뒤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편집자의 취향이나 실수로 설명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엇이 중요한 현실인가를 슬롯 전체가 함께 받아들일 기준을 정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미디어를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이 문제를 오래 전부터 의제설정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왔다. 맥스웰 맥콤스와 도널드 쇼가 1972년에 제시한 이 연구는 미디어가 어떤 문제를 얼마나 자주 다루고 비중 있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대중이 그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핵심은 미디어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생각하라고 직접 명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에 주목해야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틀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이후 프레이밍에 관한 연구가 이어지면서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단어를 쓰고 어떤 맥락에서 제시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그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원리를 평등의 문제에 대입하면 미디어가 가진 힘이 훨씬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 슬롯에 소득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것인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어떤 언론에서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다수가 살림살이가 나아졌음을 강조하고 절대적인 생활 수준이 높아졌음을 보여줄 수 있다. 다른 언론에서는 상위 계층의 자산이 불어나는 모습과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함께 제시하며 격차를 부각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반드시 거짓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느끼는 세상의 모습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미디어는 거짓된 현실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현실의 인상만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세상을 펼쳐 보일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평등신화가 시작된다. 평등신화라는 말은 모든 사람이 실제로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이 가운데 일부만 골라서 반복해서 보여주고 그것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한 뒤, 마치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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