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언제부터 왜 니혼슈(日本酒)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일본인들은 자기들이 마시는 청주를 '니혼슈(日本酒)'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일본 술'이다.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이름이다. 우리가 막걸리를 굳이 '한국 술'이라고 부르지 않듯, 보통은 자기 나라 술에 나라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지금껏 많은 술을 만나봤지만 아예 주종 자체를 자기 나라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는 니혼슈가 유일했다. 나라 이름을 붙인다는 건 '다른 나라 술'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는 뜻이다.
소주의 역사를 정리하다가 이 이름이 마음에 걸렸다. '니혼슈'가 있다면 '니혼슈가 아닌 술'도 있지 않았을까? 혹시 일제강점기에 조선 술과 일본 술을 가르려고 만든 말은 아니었을까? 짐작은 그럴듯했지만 반은 틀렸고, 반은 맞았다. 그리고 보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짐작이 틀린 부분부터 살펴보자. '日本酒'라는 말은 일제강점기보다 30년쯤 먼저 쓰였다.
일본의 대표 국어사전인 『일본국어대사전(日本国語大辞典)』에서 찾아낸 용례는 1886년, 소설가 쓰보우치 쇼요(坪内逍遙)의 『내지잡거 미래의 꿈(内地雑居未来之夢)』에 나오는 '니혼슈 개량(日本酒改良)'이라는 구절이다.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목록을 뒤지면 그보다 이른 기록도 나온다. 도쿄대학 문서관에 남아 있는 1881년 공문서의 제목에 이미 '日本酒'가 들어 있다. 1880년대 중반에는 사케 속 방부제를 분석한 논문 제목에, 1889년과 1890년에는 『일본주 양조 신법(日本酒醸造新法)』, 『일본주 개량 실업 문답(日本酒改良実業問答)』 같은 바카라 제목에도 등장한다.
이 무렵 일본은 서양 문물을 한창 받아들이던 메이지(明治) 시대였다. 맥주와 와인이 '양주(洋酒)'라는 이름으로 들어왔다. 1877년의 한 공문서는 술에 과세하는 규칙을 양주 파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다고 적었다. 1893년에는 「주정과 일본주의 이해에 대하여(酒精と日本酒との利害に就いて)」라는 글이, 1895년에는 『서양주 양조편(西洋酒醸造篇)』이라는 바카라이 나왔다. 서양 술이 옆에 놓이자 일본 사람들은 자기 술에 '일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니혼슈의 짝은 조선 술이 아니라 서양 술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말이 오랫동안 법률 용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일본 세법은 메이지 이래 줄곧 '청주(清酒)'라는 말을 썼다. '日本酒'가 법적인 이름이 된 것은 2015년 12월이다. 일본산 쌀로 일본 안에서 빚은 청주만 '日本酒'라고 부를 수 있도록 지리적표시(GI)를 정하면서였다.
짐작대로 일제강점기에 '日本酒'와 구분하려고 만든 이름은 있었다. 다만 이름표가 붙은 쪽은 일본 술이 아니라 조선 술이었다.
나라가 병합된 뒤로는 우리 술 전체를 '조선주(朝鮮酒)'라는 하나의 분류로 묶는다. 1914년 기사에 이미 이 단어가 등장한다. 이 이름에 법의 정의가 붙은 것은 1916년 7월, 조선총독부가 만든 주세령(酒税令)에서였다.
일본 국립공문서관에는 당시 조선총독이 올리고 일본 내각이 재가한 주세령 안이 남아 있다. 제1조는 이렇게 적는다.
이 영에서 조선주라 함은 조선 재래의 방법으로 만든 탁주, 약주 및 소주를 말한다.
(本令ニ於テ朝鮮酒ト稱スルハ朝鮮在來ノ方法ニ依リ製成シタル濁酒、藥酒及燒酎ヲ謂フ)
그런데 이 법령 어디에도 '일본주'는 없다. 그럼 조선주가 아닌 일본에서 들여온 술은 뭐라고 불렀을까? 총독부는 그냥 '조선주 이외의 주류(朝鮮酒以外ノ酒類)'라고 불렀다. 그리고 '조선주 이외의 주류는 주로 청주'라고 적었다. 세율을 정한 조항도 마찬가지다. '조선주인 탁주', '조선주인 약주', 맥주를 차례로 적은 뒤, 남은 것을 '앞에 적은 것 이외의 양조주'로 묶었다. 일본식 청주는 이름 없이 그 '나머지' 칸에 들어갔다.
같은 설명서는 두 술을 이렇게 비교한다. 청주는 비교적 큰 공장에서 만들고, 주요 공장은 조선 전체에 20곳 안팎이니 관리를 보내 꼼꼼히 감독하겠다고 했다. 조선주는 사정이 달랐다. '제조 방법이 극히 유치할 뿐 아니라 술의 질 또한 심히 조악하여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개 빚는 대로 바로 팔고, 주막(酒幕)에서 음식과 함께 만들어 판다고 적었다.
총독부 통계도 다르지 않았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올라 있는 조선총독부 주세 통계(1916~1943)는 술을 이렇게 나눈다.
양조주: 청주, 탁주, 맥주, 과실주 등
증류주: 주정, 고량주, 소주 등
재제주: 백주, 미림, 위스키 등
조선주: 탁주, 약주, 소주
'일본주'라는 칸은 없다. 일본식 청주는 그냥 '청주'였고, 일본식 소주는 그냥 '소주'였다. 그러다 보니 탁주와 소주가 표에 두 번 나온다. 한 번은 그냥 술로, 한 번은 '조선주'로. 어떤 재료로 만든 어떤 술이냐가 아니라, 조선 재래의 방법으로 빚었느냐가 칸을 가른 것이다.
하나 더 짚어 둘 것이 있다. 감홍로(甘紅露), 이강주(梨薑酒), 송로주(松露酒) 같은 이름난 조선 술은 '조선주'가 아니라 '재제주(再製酒)'로 분류됐다. 주세령은 재제주를 '양조주나 증류주에 다른 술이나 그 밖의 것을 섞어 만든 술'이라고 정의했다. '달고 붉은 이슬'이라는 감홍로, 배(梨)와 생강(薑)을 이름에 단 이강주처럼 소주에 무언가를 더한 술들이 여기에 들어갔다. 같은 칸에는 일본의 백주(白酒)와 미림(味淋)이 나란히 놓였다. 재제주에는 '조선주'라는 구분이 아예 없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니혼슈'는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서양 술 앞에서 자기 술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거꾸로였다. 지배자의 술은 '청주', '소주'라는 기본값이 되어 따로 이름이 필요 없었고, 피지배자의 술에 '조선'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그 이름표에는 '재래의 방법'이라는 정의와 '유치하고 조악하다'는 평가가 함께 따라붙었다.
처음 짐작으로 돌아가 보자. '구분하려고 만든 이름'이라는 직감은 맞았다. 다만 표시가 붙은 쪽이 일본 술이 아니라 우리 술이었다. 이름을 붙이는 쪽과 이름이 붙는 쪽. 술 이름 하나에도 힘의 방향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 선은 해방 뒤에도 지워지지 않았다. 1949년 대한민국이 처음 만든 주세법은 술을 양조주, 증류주, 재제주 셋으로 나누었다. 주세령과 같은 틀이다. 주조 연도를 9월 1일부터 이듬해 8월 31일까지로 잡은 것도, 알코올 도수를 재는 기준도 주세령 그대로였다. 그리고 양조주 안에 '약주'와 '청주'를 따로 두었다. 시행령은 약주를 곡식과 국자(麴子), 곧 누룩으로 빚어 거른 술로 정했다. 청주 1급은 흰쌀과 입국(粒麴)으로 빚어 거른 술이었다. 입국은 찐 쌀에 누룩곰팡이를 입혀 띄운 일본식 쌀누룩이다. '조선주'라는 이름표는 떨어졌지만, 그 이름표가 가르던 선은 '약주'와 '청주'라는 이름으로 남은 것이다.
그 선은 지금도 있다. 현행 주세법 시행령은 쌀로만 빚은 맑은술이라도 누룩을 쌀 무게의 1% 이상 쓰면 약주, 1% 미만이면 청주로 나눈다. 우리 방식대로 누룩을 써서 빚은 맑은술은 아무리 맑아도 법에서 '청주'가 될 수 없고, '약주'라고 불린다. 해방 이후 80년이 흘렀다. 우리 주변에서 '일제의 잔재'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현행 주세법에는 여전히 '니혼슈'의 흔적이 깊숙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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