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의 역사를 비튼 고구마
우리가 날마다 비워 내는 360ml 소주병에는,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만큼이나 수많은 사람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그 이야기를 찾아 나가던 중에 아주 재미있는 대목을 만나, 잠깐 풀어 보려 한다. 다음 술자리에서 한 잔 따르며 꺼내기 좋은 이야기다.
흔히들 쌀이 모자라던 시절, 쌀로 술을 못 빚게 한 탓에 증류식 소주는 사라지고 희석식 소주만 남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1960년대 신문을 한 장씩 넘기다가 눈이 멈췄다. 1964년 12월 21일 자 동아일보 기사. 주정과 소주를 만드는 데 쌀과 잡곡을 일절 쓰지 말고, 국산 고구마로 바꾸라는 정부의 결정이었다.
쌀만 막은 게 아니었다. 보리도 수수도 안 되고, 오직 고구마였다. 소주는 고구마로만 빚으라는 지시, 정부는 왜 이렇게까지 고구마에 매달렸을까?
1964년 가을, 이 땅에는 고구마가 넘쳐났다. 그해 거둔 고구마는 4억 관. 1관이 3.75킬로그램이니 대략 150만 톤이다. 예년의 세 배 가까운 양이었고, 정부가 세운 목표(1억 7천만 관)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대풍년이었다.
문제는 이 풍년을 정부가 만들었다는 데 있었다. 농림부가 계약재배까지 해 가며 증산을 장려했는데, 막상 고구마가 쏟아지자 다 사들일 수가 없었다. 정부 수매가는 한 관에 22원, 시장에서는 15원에 팔렸다. 고구마는 쌀처럼 오래 두고 먹을 수도 없다. 저장성이 약해 두면 썩는다. 당시 신문은 농가마다 '큰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적었다.
결국 대통령이 나섰다. 이 문제를 서둘러 바로잡으라는 특별지시가 떨어졌고, 농림부장관의 제안으로 1964년 12월 8일 밤 국무회의가 열렸다. 이날 의결한 조치의 이름이 걸작이다. '고구마 소화(消化) 촉진'. 소주에는 고구마 말고 다른 곡식을 쓰지 말 것. 그리고 12월 21일, 주정과 소주에 쌀과 잡곡이 모두 금지되었다. 소주 정바카라처럼 보이지만 실은 고구마 소비 정바카라이었던 셈이다.
이 고민은 그때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다. 5·16 직후인 1961년 5월 25일, 군사정부의 각의가 의결한 안건 하나가 이미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고구마가 남아돌아 생산비보다 싸게 팔리는 바람에 농가가 한 해 22억 환을 손해 본다는 것. 해법은 주정 원료를 수입 당밀에서 국산 고구마로 바꾸는 것이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