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14. 밤 나들이
초저녁, 궁성문 잠기는 소리가 멀리서 왔다. 무거운 문짝이 지축을 구르듯 낮게 울리고 나면 도성의 하루가 접히고, 궁의 밤이 문단속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다. 곧이어 보루각 쪽에서 시각을 알리는 쇳소리가 짧게 뒤따랐다. 궁의 밤은 저렇게 소리로 구획되어 흘렀다. 그 구획 바깥의 시간이 문득 궁금해진 것은 순전히 한 사람 때문이었다.
비현각 서안 앞에서 의경은 붓을 쥔 채로 한참 그 소리 쪽을 보고 있었다. 밤이 깊자고 드는 시각인데 물러갈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문서는 펼쳐져 있고 먹은 갈려 있는데, 정작 붓끝은 벼루 위에서 마르는 중이었다.
채윤의 얼굴을 못 본 지 며칠이 지났다. 강녕전의 그 눈길 이후로 부르는 횟수를 제 손으로 줄인 탓이 반, 요즘 들어 채윤의 퇴청이 부쩍 빨라진 탓이 반이었다. 서연에 배석하는 날에도 눈인사가 고작이었고, 멀어질 일을 한 것도 없는데 거리부터 벌어지는 것이 궁이라는 데였다. 무엇보다 사장의 오후가 끊긴 것이 컸다. 활줄 소리와 그 소리 끝의 옅은 웃음이 사라진 자리는 생각보다 헐렁했다. 곁에 두자고 만들어 둔 구실들만 서랍 속 문서처럼 쌓여 갔다.
'며칠이나 됐더라. …세고 있는 것부터가 좀 그런가.'
손가락을 꼽다가 이내 관두었는데, 꼽던 손이 스스로도 민망해서였다. 민망하거나 말거나 결론은 이미 나 있었다.
붓을 내려놓은 것은 폐문 소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빙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제 입으로 뱉어 둔 문장이 하나 있었다. 전하께서 모르셔야지, 하지만 난 내 백성을 알아야겠다. 그때는 낯선 세상에 대한 오기 반, 허세 반으로 한 말이었는데, 오늘 밤 그 문장이 서랍 밑바닥에서 제 발로 걸어 나왔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씨는 엉뚱한 데서 싹을 틔우는 모양이었다.
'그래, 알아야지, 백성. 마침 요즘 통 못 본 백성도 하나 있겠다.'
명분과 속내가 이렇게 사이좋게 손을 잡는 일도 드물었다. 의경은 서안을 밀어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권신."
"예, 저하."
"나갈 채비를 해라. 미복으로."
권신의 눈썹이 미미하게 움직였다. 놀람이라기엔 작고, 수긍이라기엔 굳은 움직임이었다.
"밤길이옵니다."
"그러니 미복이지."
"궁성문이 닫혔사옵니다."
"닫히지 않는 문도 있다고 들었다."
"…어디로 가시려는지, 여쭈어도 되겠사옵니까."
"백성을 보러 간다."
"기한은 어찌 되옵니까."
"인정 전에는 든다."
지키지 못할 약조를 하는 기분이 아주 잠깐 들었지만, 예지는 모르는 척했다.
절반은 참말이라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권신의 시선이 그 절반의 행방을 묻는 듯했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침묵이 길었다. 만류를 고르다가 도로 접는 침묵이었다.
"…검을 하나 더 차겠사옵니다."
그것이 권신식 허락이었다.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채비는 빨랐다. 어디서 났는지 낡은 도포 두 벌과 갓이 마련되었고, 검은 보에 싸여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흑포를 벗고 무명 도포에 팔을 꿰는 동안, 예지는 묘한 해방감과 옅은 죄바카라감을 반반씩 맛보았다. 남의 옷 같은 헐렁한 소매가 오히려 제 것 같기도 했고, 도포 자락이 발등을 칠 때마다 걸음새가 어색했는데 그 어색함이 영 나쁘지만은 않았다. 갓끈을 턱 밑에 매어 주며 권신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눈을 맞춰 왔지만, 예지는 못 본 척 먼저 문을 나섰다. 뜰의 어둠은 권신이 앞서 읽었다. 궁인의 기미가 있는 쪽을 피해 걸음을 죽이고, 모퉁이마다 먼저 서면서 길을 텄다. 협문에 이르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없었다. 밤의 궁은 낮보다 눈이 적은 대신 귀가 밝아서, 두 사람 다 말을 아꼈다.
*
북쪽 길은 낮에도 인적이 드물다 했다. 신무문 곁의 좁은 협문 앞에서 권신이 문지기와 몇 마디를 나누는 사이 의경은 갓을 눌러쓴 채 담 그늘에 섰다. 문지기는 권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눈치였고, 몇 마디가 오가자 빗장 뽑히는 소리가 낮게 났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문턱을 넘기 직전에도 권신이 먼저 나가 좌우를 살피고서야 길을 내주었다. 호위의 순서는 궁 밖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문턱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공기가 갈렸다. 궁 안의 밤이 등불과 순번으로 짜여 있다면, 담 밖의 밤은 그저 어둠 그 자체였다. 별이 궁에서보다 한층 가깝게 내려와 있었고, 처마 낮은 집들이 어깨를 맞댄 골목 어디선가 늦은 저녁 짓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낮은 처마들이 이어지는 골목을 몇 굽이 지나자, 이윽고 사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둘, 골목을 꺾을수록 도란도란 불어나는 소리였다.
초경 언저리의 거리에는 뜻밖의 활기가 있었다. 다만 그 활기의 얼굴들이 낯설었다.
장옷 쓴 여인 둘이 소리 죽이지 않은 웃음을 나누며 지나갔고, 우물가에는 물동이를 내려 둔 아낙들이 둘러서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무슨 이야기 끝인지 허리를 뒤로 젖히면서 웃었다. 낮의 거리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한 표정이었다. 장옷 자락 사이로 아이 손을 잡은 젊은 어미도 지나갔다. 아이가 무어라 조르는지 못 이기는 척 걸음을 늦추는 뒷모습이, 캄캄한 골목에서 이상하게 환했다. 골목 어귀마다, 담 모퉁이마다 여인들이었다. 사내라고는 저와 권신뿐이어서 오히려 이쪽이 자꾸 눈총을 받았다.
"권신. 지금이 무슨 시각이지."
"초경이 지났사옵니다."
"거리가 왜 이런가."
"초경부터 이경까지는 여인들만 나다닐 수 있사옵니다. 사내의 밤 통행은 금해져 있사옵니다."
걸음이 저절로 그 자리에 멎었다.
'여자들만 다닐 수 있는 시간이… 따로 있다고?'
멎은 자리에서 낮의 거리가 절로 겹쳐 떠올랐다. 저잣거리에도 궐 앞길에도 여인의 얼굴은 드물었고, 있어도 고개를 숙인 종종걸음이었다. 그 얼굴들이 다 어디 있었나 했더니 여기 있었다. 온 하루 가운데 여인들 몫이라고 떼어 준 것이 고작 이 언저리의 밤뿐인 셈이었고, 그 몫마저 사내인 저는 지금 범하고 있는 중이었다. 배려라면 배려고 울타리라면 울타리인 이 셈법을, 이 거리의 얼굴들은 알고도 이러는 걸까, 모르는 채인 걸까. 귓등으로 스친 말들에는 시집살이도 있었고 곗돈도 있었고 어느 집 혼사도 있었다. 낮의 세상이 여인들 없이 굴러가는 척하는 동안, 여인들의 세상은 이 두 시진 안에 통째로 구겨 넣어져 있었다. 그 구겨 넣어진 세상이 그래도 환하다는 사실이 어쩐지 더 오래 남았다.
'잠깐. 그럼 우리 지금 불법 아니야?'
뒤늦은 자각에 갓을 한 뼘 더 눌러썼다. 권신은 진작 짐작했다는 얼굴로 한 발 앞서 골목 안쪽을 살폈다.
우물가의 웃음소리가 등 뒤로 멀어질 즈음, 저만치서 등불 하나가 흔들리며 다가왔다. 순라꾼은 둘이었다. 하나는 등을 들고 하나는 쇠사슬을 늘어뜨린 채 골목마다 불빛을 들이밀었고, 쇠붙이 긁히는 소리가 돌바닥을 타고 먼저 왔다. 여인들은 익숙한 듯 길가로 물러나 순라가 지나기를 기다렸고, 물러난 그 얼굴들에서 방금 전까지의 웃음기는 걷혀 있었다.
권신의 팔이 말없이 앞을 막았고, 두 사람은 골목 안쪽 어둠에 등을 붙였다. 등불이 어귀를 훑고 지나가는 동안 예지는 숨을 죽였다. 귓속에서 제 맥 뛰는 소리만 크게 울렸다.
'이 나라 세자가 통금 위반으로 잡혀가면, 실록에 뭐라고 적히려나.'
적히기야 하겠나 싶다가도, 사관이라는 족속의 집요함을 떠올리면 꼭 남 일 같지가 않았다.
그 소리가 완전히 멀어진 뒤에야 권신이 팔을 내렸다. 도포 등판이 흙담에 쓸린 자국을, 권신이 말없이 털어 주었다.
"저하."
"알았다. 서두르지."
바카라망도 재촉도 그 두 글자면 충분한 사람이었다.
*
채윤의 거처는 북촌 끝자락, 큰길에서 두 굽이 꺾어 든 골목 안에 있었다. 사람 하나 지나기 알맞은 폭이라 발밑 돌부리는 권신 쪽에서 미리 짚어 주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권신의 걸음이 먼저 방향을 잡았다. 궁을 나설 때부터 목적지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고, 알고도 끝내 한 번을 묻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고마워해야 하나, 무서워해야 하나.'
골목 끝에 다다르자 권신이 걸음을 늦추고 턱짓으로 한 집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제가 먼저 어둠 쪽으로 물러서 주었다.
집은 작았다. 담이라기보다 울타리에 가까운 낮은 경계 너머로 좁은 마당과 방 두 칸이 한눈에 들어왔고, 그중 안쪽 한 칸의 창호가 노랗게 밝아 있었다. 마당 구석에는 장독 두엇이 어둠에 웅크렸고, 빨랫줄에 걸린 희끗한 것이 이따금 흔들렸다. 방 안의 기척은 아직 하나뿐인 듯 고요해서, 늦도록 등을 밝히고 무얼 하는지, 글이라도 읽는지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울타리 너머는 손을 뻗으면 낱낱이 들여다보일 만큼 가까운데, 그 가까움이 오늘따라 아득했다. 불빛 하나를 확인했을 뿐인데 마음부터 놓이는 제 자신이 우스웠지만, 우스운 대로 놓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여기까지 와 놓고 무어라 기별을 넣을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지나가다 들렀다? 이 시각에? 이 차림으로? …설득력 무엇.'
그렇다고 담을 넘자니 그건 세자가 아닌 밤손님이었고, 이름을 대자니 미복의 뜻이 없어졌다. 들어설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울타리 앞에서 애꿎은 옷고름만 매만져졌다.
명분 회의만 그 앞에서 하염없이 길어지던 차였다.
방 안에서 말소리가 새어 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여인의 목소리였다.
낮고 편안한, 웃음기가 옅게 밴 말소리였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울타리 밖까지 오지 않았지만, 그 어조에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의 허물없음이 배어 있었다. 이윽고 귀에 익은 낮은 응수가 나직이 이어 붙었다. 채윤이었다. 채윤의 방에서 이 밤에 나는 소리라는 사실이 뒤늦게 실감으로 밀려왔다.
예지의 발이 땅에 붙은 듯 굳었다. 머릿속으로는 별별 무해한 그림이 다 지나갔다. 늦은 손님, 이웃의 심부름, 먼 친척. 그림마다 방금 들은 그 허물없는 어조가 덧칠처럼 따라붙어 지워 버렸다.
잘못 들었나 싶은 사이에 말소리가 다시 이어졌고, 이번에는 낮은 웃음까지 곁들여졌다. 방 안의 등잔이 흔들렸는지 창호의 불빛이 가늘게 일렁였다.
사람 그림자가 창호 위를 스치고 지나갔고, 뒤이어 또 하나가 그 곁에 어렸다. 두 그림자는 마주 앉으려는 듯 가까워지다가, 창호 한복판에서 포개졌다. 포개진 채로 얼마간 떨어질 기미가 없었고, 등잔 심지가 긴 탓인지 두 윤곽의 가장자리가 하나로 뭉근하게 번져 보였다.
곁에 선 권신이 무어라 아뢰려다 입을 닫았다. 주군의 옆얼굴을 보고는 고를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돌아가자는 말도 더 있자는 말도 나오지 않는 골목이었다. 울타리 하나가 이렇게 높아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밤바람이 골목을 한 차례 쓸고 지나가며 갓끈을 흔들었다. 인정 전에는 들겠다던 약조가 머리 한구석에서 깜빡였지만, 발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멀리서 인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스물여덟 번을 채울 종소리가 도성 위로 느리게 번지는 동안에도, 예지의 눈은 창호 위에 포개진 두 그림자에 못 박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
숨을 참는 데도 요령이 필요하다는 것을, 예지는 남의 집 울타리에 붙어 서서 처음 배웠다.
들이쉬면 갓양태가 나뭇가지에 걸려 부스럭거렸고, 내쉬면 그 소리가 밤공기 속에 별나게 크게 퍼졌다. 발끝으로 선 종아리는 진작부터 후들거렸다. 돌아보면 세자의 하루 중 이토록 집중한 시각이 없었다. 서연에서 이 반만 했어도 보덕의 낯이 폈을 것이다. 돌아서자고 마음먹은 것이 몇 번이었는데, 마음과 따로 노는 발이 어느새 반 발짝씩 사립 쪽으로 옮겨 가 있었다. 세 걸음 뒤의 권신은 어둠에 반쯤 녹아든 채 돌부처처럼 미동이 없었는데, 호위의 본분과 주군의 체통 사이에서 일찌감치 본분 쪽을 고른 얼굴이었다. 말리자면 말릴 수 있었을 것이다. 말리지 않는 것이 이 호위의 만류법이라는 것을, 예지는 요즘에야 알아 가는 중이었다.
'엿보기는 무슨. 민정 시찰이지. 그렇고말고.'
방 안의 말소리가 조금씩 또렷해졌다.
"…번번이 이래서, 내가 미안해서 어쩌나."
"새삼스럽게. 어릴 적엔 네 것 내 것이 어디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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