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닫아둔 한 시간
나는 점심 약속을 잘 잡지 않는 편이다.
“혹시 오늘 점심 약속 있으신지요.”
어느 날 메신저에 짧은 문장 하나가 들어왔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말이었다. 회사에서는 매일 수없이 많은 메시지가 오가고, 점심을 같이 먹자는 말쯤은 그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축에 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의 그 한 줄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한동안 안에서 걸어 잠가두었던 문을 누군가 손가락 마디로 가볍게 한번 두드리는 것 같은 말이었다.
그 무렵 나는 점심 약속을 거의 잡지 않았다.
원래 혼자 먹는 것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점심에도 저마다의 쓰임이 생긴다. 업무 중에는 하기 어려운 말을 식탁에서 슬쩍 꺼내기도 하고, 오래 보지 못한 사람과 안부를 나누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사람을 넓혀가는 시간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오전 내내 삼켜둔 말을 밥과 함께 풀어놓는 시간이 된다. 나 역시 그렇게 많은 사람과 많은 밥을 먹어왔다.
다만 어느 시기부터 한 시간쯤은 아무에게도 내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회사에서 비교적 자주 보이는 사람이었다. 인사 일을 할 때에는 교육장 앞에 섰고, 크고 작은 행사에서는 마이크를 잡거나 사람들을 맞았다. 이후에는 조직의 중요한 일들이 오가는 가까운 자리에서 일했고, 또 다른 역할을 맡은 뒤에는 회사가 세상 밖으로 내보낼 말들을 만들었다. 하는 일이 달라질 때마다 서 있는 자리도 조금씩 달라졌지만, 이상하게 늘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쪽에 가까웠다.
밖에서 보면 소위 궤도에 올라탄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좋은 역할을 계속 맡는 사람, 다음 기회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사람. 누군가는 농담처럼 패스트트랙이라는 말을 붙였고, 누군가는 요즘 잘나간다고 했다. 틀린 말만은 아니었다. 운 좋게 좋은 기회를 만났고, 많은 사람의 도움 덕분에 다음 장면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멀리서 보이는 속도와 그 안에서 느끼는 흔들림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 오래 서 있는 이에게 오는 것이 박수만은 아니다. 기대도 오고, 평가도 오고, 때로는 이유를 정확히 짚기 어려운 경계와 곱지 않은 시선도 따라왔다. 누군가는 내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만 보았고, 누군가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았으며, 누군가는 일이 잘 풀린 몇 순간을 보고 그 사람의 삶도 그만큼 수월할 것이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보인다는 것과 한 사람으로 보여진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일이었다.
하는 일의 성격상 하루에도 많은 사람을 만났다. 서로 다른 기대와 이해가 부딪히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듣고, 한쪽의 말을 다른 쪽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로 바꾸고, 아직 말이 되지 않은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어야 했다. 때로는 밀고, 때로는 물러서면서 어느 한쪽으로 너무 기울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균형을 맞추었다.
나는 그 일을 좋아했다. 사람 사이에 흩어져 있는 말을 듣고, 어떻게든 하나의 방향으로 이어내는 데서 오는 보람도 있었다.
다만 오래 하다 보니 저녁 무렵에는 가끔 이상한 상태가 되었다.
내 생각은 별로 남아 있지 않은데 남의 문장은 많이 남아 있었다.
누구의 기대와 누구의 서운함, 지나치게 크게 나온 말과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 낮 동안 받아둔 것들이 퇴근과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장 하나가 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잠자리에 누운 뒤에야 그 사람의 표정이 생각나기도 했다.
몸은 퇴근했는데 말들은 퇴근하지 않은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이 이어지면서 점심시간만큼은 누구의 것도 아닌 채로 있고 싶었다. 사람들이 식당으로 빠져나간 뒤 조금 조용해진 사무실에서 바카라상에 엎드려 십 분쯤 눈을 붙였고, 편의점에서 사온 것을 늦게 꺼내 먹기도 했다. 일이 밀리면 그냥 건너뛰었다.
누군가와 한 끼를 먹는 일조차 그 무렵에는 또 하나의 일정처럼 느껴졌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야 할 것 같고, 적당한 질문을 해야 할 것 같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다가 오후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별것 아닌 한 시간인데도 사람 앞에 앉는 순간 또 다른 내가 근무를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싫어진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사람을 피한 것도 아니었다.
사람 앞에서 계속 괜찮은 사람으로 있어야 하는 일을, 한 시간쯤 쉬고 싶었던 것에 가까웠다.
그런 때 점심을 물어온 사람이었다.
우리는 동갑이었다. 다만 회사라는 수직의 선 위에서는 서 있는 자리가 꽤 달랐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부서도 아니었고 함께 업무를 할 일도 많지 않았다. 조직의 운영을 받치는 쪽에서 오래 일하며, 사람들 눈에는 크게 띄지 않는 채 자기 몫을 하는 동료였다.
그래서인지 나를 직함으로 잘 부르지 않았다.
이름 뒤에 ‘님’을 붙였다.
그 호칭이 묘하게 편했다. 직급의 차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말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차이를 먼저 테이블 위에 올려놓지 않아도 되는 느낌이 있었다.
처음 제대로 알게 된 것도 큰 업무 때문은 아니었다. 회사 안의 작은 모임과 몇몇 행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얼굴을 익혔고, 내가 진행하는 일이 있을 때면 뒤에서 조용히 손을 보태기도 했다. 앞에 서는 사람보다는 뒤에서 비어 있는 곳을 먼저 보는 쪽이었다. 누가 알아주는지에 크게 마음을 쓰지 않고, 있어야 할 때 있고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
회사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조직도에서 이름을 크게 발견하기는 어렵고, 중요한 회의에서 자주 목소리를 내지도 않지만, 그 사람들이 조용히 받아내는 일들 덕분에 하루가 별 탈 없이 굴러가는 경우가 있다.
나는 그 동료를 대략 그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정작 그쪽에서는 나를 꽤 오래 보고 있었다.
내가 인사 일을 하며 교육장 앞에 서던 때도 기억했고, 회사의 크고 작은 행사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모습도 기억했다. 내가 이미 잊어버린 장면을 먼저 꺼낼 때도 있었다. 가까이에서 함께 일했던 적은 많지 않은데, 이상하게 내가 지나온 시간의 몇 장면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놀랐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사람이 바라본 방향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개 내가 무슨 일을 맡았는지, 다음에는 어디로 갈 것 같은지, 얼마나 바쁜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동료는 가끔 그 뒤를 궁금해했다. 밖에서 보이는 모습과 혼자 있을 때의 내가 꽤 다를 것 같다고 했고, 여러 일이 잘 풀리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쪽에는 다른 것이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아주 조심스럽게 꺼내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캐묻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나 역시 굳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쉽게 보여주지 않는 쪽에 오래 시선이 머무는 듯했다.
왜 이 사람이 거기를 보지.
처음에는 그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 앞에서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었다. 맡은 일이 커질수록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괜찮지 않은 날에도 괜찮다고 답했고, 일이 많아질수록 더 빨리 움직였다. 어쩌면 너무 오래 그러다 보니 나 자신도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 잘 모르게 되었을 것이다.
회사에는 나를 훨씬 오래 알고, 훨씬 가까이에서 일한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보지 못했던 것을 멀찍이 있던 이가 본다는 게 묘했다.
한참 뒤에야 그 동료 역시 자기 마음의 아주 깊은 곳을 혼자 오래 지나온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자세한 이야기를 캐묻지는 않았다. 사람에게는 굳이 다 알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있고, 설명하지 않은 채 남겨두는 것이 더 맞는 사정도 있다.
다만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몇 가지가 뒤늦게 이해되었다.
왜 다른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표정 하나를 조금 더 오래 보는지, 왜 잘 풀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한번쯤 괜찮은지를 묻는지.
같은 아픔을 겪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한 번 깊은 곳까지 내려가본 사람은 자신이 지나온 길과 어딘가 닮은 흔적 앞에서 조금 더 천천히 걷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내게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
어쩌면 내가 감추고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먼저 보았는지도.
그런 사람이 그날 점심을 물었다.
나는 메신저 창을 잠시 바라보다 답했다.
“아직 없습니다.”
곧 문장이 하나 더 왔다.
“그럼 같이 점심 드실까요?”
“좋습니다.”
그렇게 한 번의 점심이 시작됐다.
처음 무엇을 먹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상하게 음식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그 사람과 밥을 먹는 일이 별로 힘들지 않았다는 느낌만 또렷하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몇 번의 점심이 이어지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준비할 것이 없었다. 좋은 식당을 찾아야 할 필요도 없었고, 한 시간을 채울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고 갈 필요도 없었다.
근처에 가볍게 갈까요.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말이 끊기면 그냥 밥을 먹었다.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각자 앞에 놓인 음식만 한동안 먹다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를 툭 꺼내기도 했다. 말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져도 그 시간을 누가 서둘러 살려내려고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농담처럼 말했다.
“우리 오늘 말 거의 안 했네요.”
그 사람이 웃었다.
“그래도 대화는 한 것 같은데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회사에서 대화는 대부분 무언가를 위한 것이었다. 정보를 얻고, 설득하고, 결론을 만들고, 다음 행동을 정하는 일. 말에는 목적이 있었고 침묵은 대개 메워야 하는 빈칸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과의 점심은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됐다.
말이 없다고 다음 화제를 서둘러 찾지 않아도 되었고, 잠깐 침묵한다고 관계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같이 있는 동안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그때 비로소 내가 점심시간에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혼자가 아니었다.
사람이 없는 곳도 아니었다.
사람이 있어도 애쓰지 않아도 되는 곳.
혼자 먹는 점심만이 안전한 줄 알았다. 그런데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서도 자기를 지키기 위해 힘을 주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사실이 조금씩 내 점심을 바꾸었다.
예전 같으면 미뤘을 약속에 그냥 나가기도 했고, 오래 함께 일했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는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동료와 마주 앉기도 했다. 내가 먼저 밥을 먹자고 한 날도 생겼다.
거창하게 사람이 다시 좋아진 것은 아니다.
회사생활에 쌓여 있던 염증이 어느 날 깨끗하게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람 때문에 지쳤다고 해서 사람에게서 완전히 물러날 필요까지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 받은 피로를 꼭 혼자서만 회복해야 하는 것도 아닐 수 있겠다고.
지금 생각하면 조금 묘한 일이다.
나를 다시 사람들 쪽으로 데리고 나온 사람은 조직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이도 아니었고, 나와 가장 가까이 일한 사람도 아니었다. 직급으로도 꽤 멀고 업무상 이해관계도 거의 없던, 조직의 한쪽에서 자기 몫을 묵묵히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이 내가 어느 궤도에 올라 있는지를 보았다.
그 사람은 이상하게도 그 궤도 위에서 내가 어떤 얼굴로 걷고 있는지를 보아주었다.
처음 받았던 문장을 가끔 떠올린다.
“혹시 오늘 점심 약속 있으신지요.”
그때는 정말 흔한 한 줄이었다.
하지만 그 한 줄 뒤로 꽤 많은 식탁이 생겼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울었고, 누군가는 자신이 붙잡고 살아가는 것을 말했다. 떠난 사람의 빈자리를 이야기한 날도 있었고, 아주 오래된 사람을 다시 만난 날도 있었으며, 어떤 날에는 별다른 말 하나 없이 밥만 먹고 돌아왔다.
그때는 아직 그런 이야기들이 생길 줄 몰랐다.
한 사람이 점심을 물었고, 사람에게 조금 지쳐 있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이었다.
문을 연 것은 나였지만, 누군가 밖에서 가볍게 두드리지 않았다면 나는 조금 더 오래 그 안에 있었을 것이다.
아마 이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회의실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얼굴을 식탁에서 만나고, 몇 년을 함께 일하고도 몰랐던 마음을 한 끼 사이에 뒤늦게 알아가게 된 시간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동안, 나 역시 조금씩 다시 사람 쪽으로 걸어 나오게 된 시간들.
돌이켜보면 처음 열린 것은 점심 약속 하나가 아니었다.
오래 비워두었던 한 시간이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