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미술 감상법

by와이아트



아카이브(Archive)는 두 가지 뜻을 지닌다. 첫째, 기록을 보관해 놓은 곳, 둘째, 정보를 모아 구성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이처럼 아카이브는 기록보관소의 의미에서부터 문서나 이미지를 재배치하는 활동을 아우른다. 예술에서의 아카이브는 이미지 배치를 통해 의미를 구성하는 흐름으로 나타난다. 아카이브가 단순한 기록과 수집을 넘어 선택과 편집을 통한 창작 과정의 한 방식이 된 것이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아틀라스>


동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꼽히는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아카이브’라는 방법을 사용해 자신의 작업을 전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60년 중반부터 자신이 수집하거나 직접 촬영한 사진, 스케치, 인쇄물 등으로 <아틀라스(Atlas)>를 제작했다. <아틀라스>는 리히터 작업의 원천이자, 그 자체로 독립적인 작품이 되는 아카이브다.


[이미지 01].jpg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아틀라스>(1962-2013). © Gerhard Richter (출처: 작가 홈페이지)


<아틀라스>의 시작은 리히터가 동독에서 서독으로 망명했던 시기인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9살이었던 리히터는 동독에서도 예술가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는 중이었는데, 슬롯주의 체제 안에서 자신의 예술 활동에 부과되는 제한들에 한계를 느껴 서독으로 이주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정권에 대한 트라우마부터 가족들과 함께한 따뜻한 추억까지 자신의 <아틀라스>에 저장해왔다. 미술사학자 헬무트 프리델(Helmut Friedel)은 “<아틀라스>의 시초는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로 명명할 수 있는 보고서이자 기록”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리히터는 <아틀라스>를 통해 트라우마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억으로 확장시키고, 자신의 아카이브를 애도와 치유의 공간으로 만든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아틀라스> 연작 중 일부. ‘Photographs from Newspapers, Books, etc’(1964-1967). © Gerhard Richter


<아틀라스>의 여러 패널 중 697번부터 736번을 차지하는 ‘전쟁 장면’의 경우,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2003년부터 진행된 작업이다. 리히터는 자신의 추상사진 작품 옆에 이라크전쟁 관련 기사를 병치해 전쟁에 관한 자신만의 아카이브를 만들었다. 아카이브는 트라우마를 동반하는 기억과 경험에 연관된다는 게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주장이다. 가령 팔이 절단되었음에도 팔이 아직 본래의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환각지’ 증상처럼, 트라우마가 내재돼 있을 때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아카이브 열병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거나 한때 존재했던 것들을 아카이브에서 발견하려는 충동을 의미한다. 리히터는 이처럼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들을 아카이브 매체인 <아틀라스>에 남겼다.


<아틀라스>가 단순 ‘스크랩’이 아닌 ‘아카이브’로 불릴 수 있는 이유는 작가의 선택에 의해 일관된 구성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치 방식 또한 연대기적이 아니라 상호 문맥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이는 과거의 사진을 기록하고 보존한다는 의미를 넘어 사건을 생산하고 창조하는 예술적 잠재력을 의미한다.




아비 바르부르크의 <므네모시네 아틀라스>


이미지 배열만으로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는 방식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의 이미지 아카이브 프로젝트 <므네모시네 아틀라스(Mnemosyne Atlas)>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0년대에 수행된 이 프로젝트는 아카이브 작업의 시초로 불리며, 서양 정신의 발전 과정을 총결산해 보여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미지 03].jpg아비 바르부르크의 <므네모시네 아틀라스> 79번 패널 (출처: The Warburg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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