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선택을 따라가는 시장의 원리
어렸을 적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분식집에 들르곤 했습니다. 떡볶이에 튀김을 먹고 마지막으로 어묵국물까지 홀짝이며 마셨습니다. 주머니에 돈이 넉넉했던 것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가면 저녁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떡볶이나 튀김을 많이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는 말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그래도 친구가 "떡볶이 먹고 갈래?"라고 물으면 쉽게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학교 앞에는 늘 비슷한 음식이 있었습니다. 떡볶이, 어묵, 튀김, 닭꼬치, 핫도그는 물론이고 동전 하나로 사먹을 수 있는 불량식품들도 많았죠. 학교에서는 매일 건강한 식습관을 가르치는데 교문만 나서면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죠.
교사로서 슬픈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건강한 식생활 교육은 교문을 넘는 순간 이렇게 힘을 잃을까요?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사 먹을지 말지 결정하는 사람은 현재의 나입니다. 그런데 그 선택의 건강상 비용을 주로 부담하는 사람은 미래의 나입니다.
오늘 떡볶이를 한 번 먹었다고 내일 아침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오늘 참았다고 내일 눈에 띄게 건강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식습관의 결과는 작은 차이가 오랫동안 쌓이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냅니다.
반면 떡볶이를 먹는 즐거움은 바로 옵니다. 돈을 내고 몇 분이면 끝입니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먹는 재미도 지금 생깁니다.
결국 아이가 학교 앞에서 마주하는 것은 지금 바로 받을 수 있는 즐거움과 먼 훗날 받을 건강 사이의 경쟁입니다. 애초에 공정한 싸움이 아니죠.
사람은 먼 미래의 이익보다 지금 받을 수 있는 이익을 더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만족을 유난히 높게 보는 현상을 현재편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운동은 내일부터 하고, 저축은 다음 달부터 하고, 야식은 오늘까지만 먹습니다.
아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부모는 아이의 건강을 걱정하고 학교는 건강한 식생활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분식집 계산대 앞에서는 둘 다 투표권이 없습니다. 돈을 가진 아이가 결정합니다.
그리고 더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미래의 나에게는 지금 지갑을 닫을 힘이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학교 앞 분식집 주인이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은 아닐 겁니다.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같은 2천 원을 들고 두 가지 간식 가운데 하나를 반복해서 고른다고 해보겠습니다. 한쪽은 달고 짜고 맵고 바삭해서 먹는 순간 만족스럽습니다. 다른 한쪽은 건강에는 더 좋지만 아이들이 별로 찾지 않습니다.
첫 번째 음식이 더 많이 팔리면 가게는 그것을 더 준비합니다. 옆 가게도 비슷한 음식을 팝니다. 반대로 잘 팔리지 않는 음식은 하나둘 자리를 잃습니다. 이 과정이 계속되면 누가 회의를 열어 결정하지 않아도 학교 앞 상권 전체가 아이들이 지금 가장 사고 싶어 하는 음식에 맞춰집니다.
가격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팔려면 싸야 하고, 맛있어야 하고, 금방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친구들과 같이 먹기에도 좋아야 합니다. 실제 청소년의 학교 주변 음식 선택에서도 가격과 편의성, 선택의 폭,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환경 같은 요소들이 함께 영향을 줍니다.
결국 이런 조건에서 강한 음식들이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학교 앞에 건강에 덜 좋은 간식이 많은 이유를 "아이들이 그런 걸 좋아하니까"라고만 설명하면 절반만 본 셈입니다.
시장은 아이들의 욕구를 무시해서 이런 결과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들의 욕구를 잘 읽어서 이런 결과를 만듭니다. 시장은 오늘 돈을 내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데 꽤 능숙합니다.
하지만 20년 뒤 그 아이의 혈압이나 혈당은 분식집의 고객이 아닙니다.
미래의 건강은 매출로 잡히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면 국가가 왜 학교 앞 음식에 굳이 간섭하는지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실제로 '어린이 식품안전보호구역'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아마 학교 앞을 지나가면서 한번쯤 표지판을 보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각 지자체가 학교 경계선에서 직선거리 200m 안의 구역을 지정해 어린이 기호식품을 판매하는 업소를 관리하는 제도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학교 주변의 고열량·저영양 식품과 일부 고카페인 식품의 판매를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학교 앞에서 파는 떡볶이나 어묵이 모두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엇을 얼마나 자주 먹느냐가 중요하고, 판매 제한 대상 역시 일괄적으로 지정되기보다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국가가 왜 이런 규칙까지 만들었느냐는 점입니다.
시장이 소비자의 말을 안 들어서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이 소비자의 말을 너무 잘 들어서 국가가 개입합니다. 아이는 지금 맛있는 것을 고릅니다. 가게는 잘 팔리는 것을 팝니다. 옆 가게는 그것을 보고 따라갑니다. 아무도 규칙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꽤 합리적으로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소비자가 지금 원하는 것을 잘 공급하는 것과 소비자에게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결국 학교 주변에 선을 하나 긋습니다.
학교에서 200m.
모든 것을 시장논리에 맡겨두기에는 아이들의 현재편향이 너무 강하다고 판단한 거리입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죠.
왜 학교 앞에는 건강에 덜 좋은 간식이 많을까요?
아이들이 유난히 어리석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지금 가진 몇 천 원으로 지금 가장 만족스러운 것을 고릅니다. 그리고 시장은 그 선택을 아주 충실하게 따라갑니다.
문제는 즐거움과 비용이 도착하는 시간이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떡볶이는 지금 맛있지만 건강의 결과는 나중에 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건 아이들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운동하면 미래의 몸이 좋아지지만 소파는 지금 당장 편합니다. 저축하면 미래의 내가 좋아하겠지만 오늘 돈을 쓰는 편이 즐겁습니다. 야식을 참으면 내일은 조금 낫겠지만 치킨은 30분이면 도착합니다.
어른이 된다고 현재편향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사실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오늘 저녁은 떡볶이로 정했습니다.
저도 현재편향에서 자유롭지는 않거든요.
O'Donoghue, T., & Rabin, M. (1999). Doing It Now or Later. American Economic Review, 89(1), 103–124.
Kelly, C., et al. (2021). ‘It’s Hard to Make Good Choices and It Costs More’: Adolescents’ Perception of the External School Food Environment. Nutrients, 13(4), 1043.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 제5조 및 제8조. 국가법령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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