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는 것과 더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AI를 도입하면 일이 잘 될 거라 기대하지만, 막상 사업 성과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회의와 보고와 지시처럼 매일 지나치는 상황을 리더, 팀장, 실무자가 다르게 보고 있고, 아무도 그 차이를 서로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AI로 더 말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이 글은 출발했습니다.
요즘은 다들 빠짐없이 적어 보냅니다.
리더는 "이거 참고해서 해봐"라며 AI로 정리한 자료를 붙이고, 팀장은 AI로 다듬은 검토 의견을 위로 올리고 아래로 내리고, 실무자는 AI로 검증한 결과물을 올립니다. 세 사람의 문서에서 빠진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배경, 근거, 절차, 유의사항까지 있기 때문에 받는 쪽이 되물을 데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AI 덕분에 일이 잘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만나본 회사들에서 양쪽이 똑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리더는 "다들 열심히 하는데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다"라고 하고, 실무자는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라고 합니다. 둘 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서로 주고받은 문서상으로 봐서는 대부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데도 서로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 무엇이 빠졌거나 부족한 것이 아닐까요?
일단 문서상으로는 빠진 것은 없습니다. 빠진 것은 문서 바깥에 있습니다.
적힌 것을 다 채운 다음에 누군가 '한 걸음 우리 모두가 원하는 쪽으로 더 나아가려는 시도', 그것을 찾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을 아무도 안 가는데 문서가 빠짐없이 채워져 있기 때문에, 누구도 그 부족함을 알아채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더하는 것은 문장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입니다
'채우는 것'은 형식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들어가야 할 항목이 다 들어가고, 빈칸이 없고, 읽는 사람이 되물을 데가 없게 만드는 것이니, 기준은 '완결'입니다. 따라서, 채워야 할 어떤 템플릿이 있고, 거기에 빠짐없이 내용을 채운 것을 기준으로, 서로 여러 이야기가 형식적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더하는 것'은 목적을 향하는 과정상의 일입니다.
이 일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이게 되면 무엇이 좋아지는지, 실제 되게 만들기 위해 어떤 절차와 방법에 의해 만들어진 계획대로 진행되어야 하는지, 그래서 내가 이게 꼭 되기를 바란다는 것까지 담는 일이니, 기준은 '우리의 진심이 담긴 목표'인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형식이 있더라도 목표와 목표 달성 방법론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럼, 그 마음을 문장으로 쓰면 될까요?
안 됩니다. "우리 모두 잘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적어봐야 그건 또 하나의 형식일 뿐입니다. 더하는 것은 문장에 담기지 않고 행동에 담깁니다. 예를 들어, 적힌 것을 보고 되묻는 것, 걸리는 데가 있으면 말하는 것, 지시에 없던 것을 보고 올리는 것처럼, 적힌 것 바깥으로 '한 걸음' 가는 순간에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더 하지 않는다'로 잡았습니다. 더한다는 것은 쓰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 채우는 것입니다.
몇 줄만 주면 배경, 근거, 절차를 빠짐없이 채워줍니다. 그리고 채워진 문서는 더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빈 곳이 없으니 그 안에 마음도 들어 있는 것 같고, 그 결과물을 받아 든 쪽도 많은 분량(열 장)을 받았으니 충분히 들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참고로 AI가 못 하는 일이 하필 더하는 쪽입니다. 우리 목표를 모르거나 그 배경을 확실히 이해해서 나온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향후 어디로 한 걸음을 가야 하는지 알 수 없고, 적힌 것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형식이 완성되면, 목적도 이룬 것 같기 때문입니다
보고서가 완벽해 보이면 일이 잘 되는 것 같고, 검토 의견이 깔끔하면 검토가 된 것 같고, 결과물이 완결되어 있으면 결과가 나온 것 같기 때문입니다. '형식 기준의 내용'이 채워지는 순간 '목적'도 달성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느낌이 틀렸다고 누가 말해줄까요? 문제는 그 문서를 보는 사람은 대부분 같은 느낌을 받고 있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형식에 대해서도 평가받습니다.
리더는 보고서의 완성도로 일의 진척을 읽고, 팀장은 위에 올릴 수 있는 모양을 만든 것으로 자기 일을 했다고 보고, 실무자는 결과물의 완결성으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업무가 우리 목표에 닿았는지, 그걸 위해 어떤 부분이 개선되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누구의 평가에도 없습니다. 그러니 각자가 위에서 내려준 일반화된 형식을 채우는 쪽에 더 많은 에너지를 할애하는 것이 효율 측면에서 합리적 선택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고 AI 도입 전이 나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형식에 급급한 사람은 늘 있습니다. 다만 그때는 채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배경을 쓰려면 생각해야 했고, 근거를 대려면 찾아야 했고, 그 시간 동안 "이걸 왜 하지"가 한 번은 스쳤습니다. 물론, 그로 인해 업무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힘이 길러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기 쉽습니다. 채우는 데 10분이면 되니, 그 질문에 더 깊이 생각할 틈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AI로 인해 급급해도 티가 안 나는 상태가 된 것 같습니다.
이 일이 어디에 닿아야 하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리더가 적어주는 것도, 적어달라고 내려주는 것도 '자료'입니다.
"이거 참고해서 해봐."라는 말 뒤에 AI로 정리한 시장 현황, 경쟁사 동향, 참고할 만한 사례가 붙습니다. 예전 같으면 한 줄로 끝났을 지시가, 읽어야 할 것이 뒤따라 붙은 열 장이 되어 넘겨지고, 받는 쪽은 그 열 장을 읽느라 바빠집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의도(왜, why)가 빠져있습니다.
지금 내려준 내용이 우리 목표에 어디에 닿았는지, 그래서 리더가 이걸로 무엇을 만들거나 되기를 바라는지는 빠져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말씀드린 네 가지 중에 '목표'와 '다음 지점'이 자료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걸로 아래 직원은 두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 의도를 파악해야 하고, 둘, 파악한 의도를 바탕으로 어떤 실천된 결과를 가져가야 합니다.
그럼, 리더는 그 두 줄도 안 되는 의도를 밝히지 않는 걸까요?
리더가 짊어진 넓은 범위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착각합니다. 쉽게 말해 바카라임지는 일이 많으니 하나하나 설명할 시간이 없고, 그 자리를 자료로 대신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건네준 자료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마치 설명을 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듭니다. 게다가 받는 쪽도 충분한 분량의 내용(열 장)을 받았으니 어떤 문제의식도 없이 잘 들었다 느끼고, 그러니 양쪽 다 진심이 충분히 더해진 줄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자료는 붙이셔도 됩니다. 다만 자료 앞에 의도를 직접 충분히 담아서 쓰십시오. "이 일이 되면 우리 매출에서 이 부분이 달라진다." "내가 제일 걱정하는 건 이것이다." 그 몇 줄은 AI가 쓸 수 없고, 그게 있어야 받는 쪽이 적힌 것 내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AI는 이렇게 쓰시면 됩니다.
자료 정리에는 AI를 써도 됩니다. 그건 채우는 일이고 AI가 사람보다 더 잘합니다. 다만 "이 지시에 뭘 더 넣어야 할까"를 AI에게 묻지는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AI는 들어가야 할 항목 중 일반적 영역을 더욱 잘 채우고, 거기서는 사람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듭니다. 그러면 문서는 더 길어지게 되면서, 공동의 목적과 목표로부터는 자칫 더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 팀이 이걸 해내면 무엇이 되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팀장이 빠짐없이 적어야 할 것은 '검토 의견'입니다.
실무자로부터 올라온 것 또는 리더로부터 내려온 지시사항을 AI에 넣고 검토 의견을 써달라고 하면 장단점과 보완점과 리스크가 정리되어 나옵니다. 그럼 깔끔하게 정리된 결과물을 위에 올리거나 아래에 내려도 흠잡을 데가 없고, 쓰는 데 5분이면 충분합니다.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도 빠진 것이 있습니다.
우리 팀이 이걸 하면 사업의 어떤 부분에 도움이 되는지, 그래서 팀원들에게 왜 같이 하자고 하는지입니다. 아래로는 지시를 전달하고 위로는 검토 의견을 올리는데, 그 사이에서 팀장 자신이 이 일을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는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지난 글에서 팀장이 하는 일을 맥락을 전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전할 맥락을 만들지 않았으니, 어쩌면 팀장다운 일을 못한 셈입니다.
그럼, 팀장은 왜 그 한 줄을 못 쓰는 걸까요?
더하게 되면 때로는 거스르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내려온 것에 "저는 이렇게 봅니다"를 붙이면 토를 다는 것이 되고, 아래에 "이게 왜 중요한지"를 풀어주려면 자기 생각을 먼저 세워야 하는데, 그럴 시간에 올릴 모양을 만드는 편이 당장은 안전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AI가 쓴 검토 의견은 매끄러워서 더하지 않아도 누구도 잘 모릅니다. 더한 것과 안 더한 것이 겉으로는 똑같이 생겼고, 티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검토 의견 맨 아래에 한 줄을 직접 쓰십시오. "우리 팀 입장에서 걸리는 건 이것입니다. 혹은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은 이것이고, 그 이유는 우리 사업의 어떤 문제(혹은 목표) 때문입니다."라고 리더 혹은 팀원에게 내용을 넘길 때 한 줄을 직접 더하는 것입니다. 대신에 팀원에게 말할 때는 한 줄을 더 추가해야 합니다. "이게 되면 우리 팀이 내년에 이걸 할 수 있게 됩니다." 참고로 둘 다 AI가 쉽게 쓸 수 없는 내용입니다. 팀에 대해 팀장만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AI는 이렇게 쓰시면 됩니다.
검토 의견의 뼈대를 잡는 데는 쓰셔도 됩니다. 다만 AI가 뽑은 리스크 목록을 그대로 올리지 마십시오. 그 목록은 어느 회사의 어느 팀에나 해당되는 것이라, 그중에 우리 팀에서 실제로 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르는 일이 남습니다. 그 고르는 일이 팀장이 더하는 것입니다.
잘되면 무엇이 좋아지는지는 모른 채 만듭니다
실무자가 빠짐없이 적어 기한 내에 만들어야 하는 것은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받은 지시를 AI에 넣고, 해석도 AI에게 묻고, 중간에 "이 방향 맞나"도 AI에게 묻고, 검토도 AI에게 받아서 완성본을 올립니다. 어떤 결과물을 지시에 의해 진행할 때 제공받은 템플릿 항목의 빈칸을 모두 채우고, 그 과정에서 주변 누구에게도 한 번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빠진 것이 있습니다.
이 일이 잘되면 무엇이 좋아지는지를 모른 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전혀 모른다는 말보다는, 실무자 레벨에서 이해 및 관심 가는 부분을 중심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표를 올바르게 이해 못 하기 때문에, 적어야 할 것 바깥에 무엇과 함께 봐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게다가 진행 중에 이상한 것이 보여도 그게 중요한 것인지 판단할 기준과 안목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간 없다는 핑계로 그냥 넘어가는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간혹 AI에게 물어보지만, AI도 실무자와 마찬가지로 우리 목표를 깊게 이해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괜찮습니다"로 자주 돌아옵니다.
그럼, 실무자는 이해 못 한 부분에 대해 왜 안 올리는 걸까요?
뻔하지만, 더하면 바카라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적어준 대로 하면 바카라임이 없거나 무겁지 않은데, 적어야 할 것 이상을 올리면 그게 틀렸을 경우 내 바카라임이 됩니다. 게다가 어떤 문제의식에서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내용을 올렸는데 바뀌지 않았던 경험이 한두 번 쌓이면 더는 올릴 이유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보통은 채워달라고 요구받은 것에 충실하여 AI를 통해 완성하고, 사람에게는 그 과정이 공유되지 않고 결과물만 갑니다. 그 자체만으로 진행 과정상의 '협의 또는 상의'가 실종된 것입니다. 과정은 린(Lean)할 수 있지만, 결과까지는 그렇게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받자마자 팀장 혹은 리더에게 질문하십시오. "이 일이 잘 되면 뭐가 좋아지는 걸까요." 그 답을 알고 시작하면 하면서 무엇을 위주로 봐야 하는지가 보입니다. 또한, 그 지시를 한 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보입니다. 그리고 완성본을 올릴 때 한 줄을 더하면 됩니다. "하면서 이게 걸렸는데, 지시에는 없던 것이라 따로 말씀드립니다." 그 내용이 위에서 보기에 틀려도 됩니다. 그 한 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더한 것'입니다.
그리고, AI는 이렇게 쓰시면 됩니다.
결과물을 만드는 데는 얼마든지 쓰셔도 됩니다. 다만 AI가 짚어준 내용을 바탕으로 혼자 고치고 끝내지 마십시오. AI가 "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합니다"라고 했으면, 그걸 혼자 처리하지 말고 나와 함께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가져가서 대화를 해야 합니다. AI가 찾아준 빈칸이 곧 되물을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급해서 한 번, 바빠서 한 번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자료만 붙이고 넘긴 날, 검토 의견을 AI로만 쓴 날, 완성본만 올린 날. 그런 날은 누구에게나 있고, 그 하루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모습이 구성원 대부분에게 나타나고 여러 차례 반복될 때입니다.
한 번이 열 번이 되고, 그게 되면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부터는 '더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됩니다. 자료 앞에 두 줄을 쓰는 리더는 말 많은 사람이 되고, 검토 의견에 자기 생각을 붙이는 팀장은 토를 다는 사람이 되고, 지시에 없던 것을 올리는 실무자는 시키는 것이나 잘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AI로 잘못 일하는 방식이 관습이 된 뒤로는 '더하는 행위의 가치가 전보다 하락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러한 귀중한 모습은 쉽게 발견하기 어려워집니다.
문서는 여전히 빠짐없고, 회의는 유려하게 진행되고, 아무도 대충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AI 덕분에 오히려 전보다 더 빠르고 깔끔해졌다고 평합니다. 그래서, AI와 일하는 방식의 잘못 형성된 관습이 우리의 조직문화가 되었는지 아닌지를 아무도 모르게 되고, 단기에는 오히려 더 효율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세 단계로 정리하겠습니다.
(1) 구성원 간의 '동상이몽'이 쌓입니다.
리더는 자료를 줬으니 뜻이 전해졌다고 믿고, 팀장은 검토했으니 걸러져 정리됐다고 믿고, 실무자는 적힌 대로 했으니 자신은 바카라임을 다했다고 믿습니다. 셋 다 형식과 절차상으로는 문제없이 했는데, 같은 목표를 보고 했는지는 아무도 확인한 적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를 AI가 형식에 기댄 문서의 완성도를 높여줌으로써 그 믿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습니다.
(2) 중요한 일이 엉뚱한 곳으로 갑니다.
함께 일하는 과정 중의 서로 간의 작은 어긋남은 실행이 진행될수록 크게 벌어집니다. 대신에 일하는 과정 중에 작성된 여러 문서는 형식 기준으로는 거의 완벽하게 채워졌기 때문에, 어디서 틀어졌는지를 찾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래서 같은 어긋남이 다음 일에서 또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를 알아차린 누군가 뒤늦게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AI에게 기댄 채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면, 자칫 여기서 더 큰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성과가 한 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떨어질 수 있고, 그때마다 원인을 다시 AI에게 물으면 또 그럴듯한 일반론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구성원 간의 관계가 차갑게 식어버립니다.
(3) '시키는 사람과 하는 사람'으로 굳습니다.
리더는 지시를 내리고 그 결과를 받는 사람이 되고, 실무자는 지시를 받고 결과를 내는 사람이 되어,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로만 남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관계는 원래 그런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함께 목표를 정하고 이루는 데 동참하는 관계였습니다. 그 관계가 거래로만 남으면, 거기서는 아무도 더 하지 않습니다. 딱 요구받은 만큼, 적힌 만큼만 하는 것입니다.
정해놓은 템플릿에 채우는 것은 AI에게 맡기셔도 됩니다.
배경, 근거, 절차, 유의사항, 리스크 목록 등등은 AI가 사람보다 빠르고 빠짐없이 해낼 수 있습니다. 단, AI를 최대한 잘 학습시켰을 경우에 말입니다. 그럼, 그 시간을 누군가 아끼게 되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분명히 좋아진 것이기 때문에, AI가 해놓은걸 다시 사람이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가치와 의미를) 더하는 것은 사람이 합니다.
리더는 자료 앞에 "이게 되면 우리한테 어떤 긍정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그걸 위해 어디에 초점을 맞추거나 유의해야 할지 등에 대해" 쓰고, 팀장은 검토 의견 뒤에 "우리 팀에서 할 수 있지만 걸리는 것 혹은 우리가 해내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하면 좋을지"에 대해 쓰고, 실무자는 완성본 뒤에 "하면서 본 것과 그에 따른 담당자로서의 의견"을 적습니다. 전부 몇 줄 되지 않고, AI가 쓸 수 없는 것이고, 적힌 것 바깥에서 한 걸음 간 것이 됩니다. 그 몇 줄이 들어가는 순간, AI가 만든 문서가 비로소 우리 회사만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 회사가 AI를 잘못 활용하는 관습이 되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한 가지만 보시면 됩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올라온 문서 중에 이미 적힌 것 바깥의 이야기를 한 줄이라도 더한 것이 있었는지, 있었으면 아직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일을 되게 만드는 쪽으로 집중되었다는 뜻이고, 없거나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그 한 줄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이는 제도를 만들 일이 아니라, 누군가 먼저 한 줄을 써서 가치와 의미를 더하는 일입니다.
빠짐없이 적어 보냈는데 아무도 더 하지 않는 것은 게을러서도 아니고 AI 때문도 아닙니다.
채우는 것과 더하는 것이 분명 다른 일인데, 채우는 것이 AI 덕분에 너무 쉬워지고 형식까지 갖추어지면서, 더하는 것까지 한 줄 안다고 착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형식에 지나치게 치우치면, 일의 완성도 향상에서는 멀어지고, 그것이 관습이 되면 함께 목표를 이루는 관계가 '시키고 하는 관계'로 내려앉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하는 것만은 사람이 하셔야 합니다.
몇 줄 정도면 충분합니다. 우리의 일이 잘되어야 한다 혹은 잘되기 위해서는 이런 것을 해야 한다는 식의 내용이 실제 겉으로 드러났을 때에만 비로소 어떤 의미 있는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몇 줄이 우리가 같은 목표를 보고 있다는 내 생각을 담은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적힌 것을 다 하고도 일이 안 되는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답은 30분 만에 나왔는데 일은 두 달째인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AI로 빨라진 구간과 그대로인 구간이 어디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