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입구 꽃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줄지어 있는 앙증맞은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만삭의 몸을 최대한 감춰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며 한 발자국 떨어져 살폈다. 수습사원인 남편의 빠듯한 생활비로 식물을 사는 것은 사치 같았다. 시장 가는 날이면 꽃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때 되면 바뀌는 식물을 보고 보고 또 보았다.
시장에서 반찬거리를 사 묵직한 장바구니를 들었지만 빈손인 듯 허전했다. 푸릇하고 탐스런 화분이 갖고 싶었다. 남편에게 부담 주지 않고 내가 버는 돈으로 원 없이 식물을 살 방법을 생각했다. 보고 싶고 알고 싶은 마음은 대형서점과 도서관에서 원예바카라을 보며 위로하였다. 그 허허로운 마음을 채우던 발걸음이 지금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뱃속 아기가 유아기를 벗어날 때 원예강사로 첫 수업을 시작하였고 어느덧 스물세 번째 해가 되었다.
그 시절 그만둔 연구원 실험동물사육실 앞에 있던 장미화단도 나를 지금으로 이끌었다. 마우스케이지를 갈며 몸에 밴 사료와 배설물의 꿈꿈 한 냄새를 없애려 장미꽃에 코를 묻고 향을 맡았다. 시들어가는 꽃잎을 따 실험실 구석 구형 건조기에 말려 포푸리를 만든 것은 자발적 원예치료였다.
매주 만나는 사람들에게 계절을 전하고 있다. 철 따라 변하는 자연을 소개하며 꽃시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식물의 주인을 찾아준다. 자연은 때가 있기에 그 시기가 지나면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잠시 멈추어 지금의 시간과 계절을 같이 생각해 본다.
그들과 식물을 만지며 나누는 이야기, 표정, 변화되는 공간에는 이야기가 있다. 때로는 시장에서 주저하던 어린 나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긴 시간 식물과 사람과 같이 걷다 보니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일이 되었다.
열두 달 원예이야기로 계절을 건네주고 싶다. 삶의 속도가 빨라져 혼미할 때, 시간과 계절의 악보에 쉼표가 생겨 한 박자 쉬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장미꽃에 얼굴을 묻고 거친 것을 잊었던 오월 그 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