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처럼 피어나기를

오늘의 식물

by조이 영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절기 경칩이 왔다. 경칩의 한자를 보면 놀랄 경(驚)과 동면할 칩(蟄)이다. 봄기운을 느끼는 절기지만 멀리 가지 않은 추위는 옷깃을 여미게 한다. 해마다 경칩 즈음 수업 시작할 때 하는 말이 있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경칩에 봄인가 해서 잠에서 깨어 밖에 나왔다가 너무 추워 깜짝 놀라서 다시 들어가는 때라고.


따뜻해져서 경탄하고 쌀쌀해서 놀라는 3월 첫 주 원예치료 수업은 꽃이 있는 식물을 준비했다. 복지관 수업은 재료비가 여유롭지 않아 여러 명이 한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경칩 즈음엔 인원수만큼 재료를 준비하려 노력한다. 수업에서 만든 식물을 가정으로 가서 보호자들에게도 봄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수업을 위해 수선화 구근을 준비하였다. 노란색의 수선화는 3월의 색이다. 구근화분은 해가 부족해도 대부분 꽃대를 올리고 생화보다 오래 볼 수 있어 유용하다.


주간보호센터로 수선화 화분 20개 한 판 가득 챙겨 들어서니 어르신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지난달 히아신스 구근 수업을 보아 구근식물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보았다. 양파처럼 생겼네, 한 어르신이 말하자, 다른 어르신이 아줌마네 양파는 그렇게 작으냐고, 내가 보기에 마늘처럼 생겼다고 알은 체하며 가까이 다가오신다.


수선화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청년 나르키소스가 죽은 자리에 핀 꽃이라 나르시스라고 불린다.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다른 사랑을 할 수 없었고 신들의 분노를 샀다. 어느 날 우연히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 나르키소스는 만질 수 없고 안을 수도 없는 슬픔으로 결국 연못에 빠지게 되었다. 그 자리에 수선화가 피어올랐고 이름을 나르시스라고 하였다. 수선화(水仙花)는 물가에 피는 신선이라는 의미로 꽃말이 자기애이기도 하다. 자아도취를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둥근 알뿌리 위로 올라온 노란 꽃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꽃으로 피어나서도 물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려는 나르키소스를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은 죽어 꽃이 되어서까지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고 여긴다.


어르신들께 화분을 나눠주고 수선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르키소스가 물에 빠졌다고 할 때 놀라고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슬픈 자리에서 어르신 손에 들고 있는 이 꽃이 피었다고 하는 대목에서 어이구머니나! 하며 화분을 이리저리 살피셨다.


완성된 화분을 포장하는데 한 어르신이 말씀하신다. “나는 집에 가져가면 안 되는데 두고 가도 될까?” 그 어르신의 보호자는 기관에서 가져오는 결과물을 원하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가정으로 가져가는 소품에는 원예 수업 결과물 외에도 종이접기, 풍선아트 등 다양했다. 집안이 어지럽혀지는 것을 보호자가 원하지 않아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장기 요양 보험 등급을 받으신 부모님을 모시는 보호자들의 노고를 모르지 않기에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센터에 두고 가셔도 된다고. 여기서 아침부터 집에 가는 오후 늦게 까지 꽃 피는 거 구경하시면 된다고 하였다. 꽃 피고 지는 것까지 다 보실 수 있고 시들면 베란다 화단에 심어 보자고 베란다를 가리켰다. 어르신은 내년에도 꽃을 볼 수 있다는 말에 밝은 표정을 지었다.


센터 창밖 쌀쌀한 베란다 화단에는 집에 가져가지 못한 알뿌리들이 여러 해 모여있다.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깨어나 싹을 올리고 있다. 경칩이 지나면 구근들이 꽃대를 올린다. 따뜻한 날 베란다로 모두 나가 꽃 피우는 모습을 보고 올해 집으로 가지 못한 구근들도 심으려 한다. 구근 식물의 한 살이를 보면 어르신들은 내년 봄을 기다릴 이유가 하나 더 생긴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선화는 할미꽃처럼 굽은 어깨와 허리를 가진 어르신의 모습을 닮았다. 굽은 몸으로 수선화를 손에 든 이 봄에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를, 연못에 빠져도 꽃으로 피어 자신을 바라보는 수선화처럼 서로의 지친 몸을 바라보고 아껴주는 봄이 되길 소망한다. 고독한 일상 속에서도 노란 수선화처럼 밝게 웃으며 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