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버스에서, 우리는 우리는 같은 노래에 취해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는 가는 버스 안, 밤은 깊어 있었고 거리에는 하루를 다 쓴 사람들의 냄새가 떠돌아다녔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 분위기가 한껏 가라앉아 보이는 내 나이 또래의 온라인 게임인, 과잠퍼를 입고 돌아가는 학생 무리들. 광역버스 안 정거장이 멈출 때마다 꽤 많은 사람들이 탑승했다.
버스기사는 손님이 한 명씩 오를 때마다 다정하게 인사를 했다. 감각이 예민한 탓일까, 그날은 술에 전 냄새가 유난히 강하게 났다. 내 왼편에 앉은, 얼굴 벌건 아저씨의 고개가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오늘 거하게 드셨나 보다. 누군가는 고개를 떨군 채 졸고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의 버스는 사람을 태우고 가는 공간이 아니라 각자의 하루가 흘러넘치는 것처럼 보였다.
ㅡ 나도 좀 취해봤으면 좋겠네
서울에서 경기도를 향하는 고속도로를 탈 때는 정차하는 구간이 없다. 안전벨트를 바로 매고 집 근처 정류장까지 가려면 족히 삼십 분에서 사십 분은 걸린다. 지루한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가 버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라디오를 틀었나 싶었는데 연달아 나오는 노래가 음악 디제이 저리 가라다.
나는 속으로 술 마신 사람처럼 탄성을 보냈다. 아마 술을 마셨다면 캬아, 살아있네 등의 말을 했을 것이다. ‘성시경의 거리에서’ ‘임창정 소주 한 잔’ ‘팀 사랑합니다’ ‘부활 네버엔딩스토리’
90년대를 지나온 세대라면 아는 명곡들이 연달아 버스 안을 메웠다.
누군지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뒤쪽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여기저기서 후렴구가 나오면 같은 가사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돌아봐주겠죠♪ 한없이 뒤에서 기다리면
오늘도 차마 못 한 가슴속 한마디 그댈 사랑합니다.
버스 안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은 노래를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마치 같은 순간 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따라 불렀다. 노래의 분위기나 가사도 좋지만 노래가 흐르면 시절을 떠올릴 수 있다. 어느새 나도 허밍음으로 뭐라 뭐라 노래를 따라 하고 있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조금 취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그건 술 때문이 아니라 밤이어서였을까.
하루를 다 써버린 사람들, 조금 느슨해진 마음들,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드는 게 음악일 것이다.
그 모든 게 섞여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떤 밤은 굳이 술이 필요 없다. 누군가의 목소리와 익숙한 멜로디 하나가 피곤한 몸을 이불처럼 덮어준다. 버스 안에서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으며 취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취해 있었다.
그리고 문득 알게 됐다.
우리는 가끔 술이 아니라 같은 감정을 나누는 순간에 취하는 것이라고.
버스 너머 창밖으로 보이는 별이 유독 밝게 빛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