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요리를 잘하셨다. 할머니가 잘하시니, 할머니에게 엄마가 요리를 배웠을 거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할머니에게 요리를 배우셨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
"아니, 엄마는 결혼할 때 할 줄 아는 거 하나도 없었어."
"그럼 어디서 배운 거예요?"
"그냥 요리바카라 보고, 하다 보니 할 줄 알게 된 거지."
예전에 해외에 머물며 일하던 당시, 하루는 냉장고 속의 재료들을 이용해 주말에 국을 끓였다. 딱히 어떤 국을 만들겠다는 생각 없이 가진 재료들을 넣어가며 맛을 내서 대충 먹을 요량이었다. 그 당시 국거리 고기가 있었고, 부추도 있었는데- 완성된 국을 맛본 순간 굉장히 익숙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엄마표 육개장의 맛이었다. (엄마는 육개장의 고사리를 좋아하시지 않아 부추를 넣어 끓이시곤 했다.) 내 기억 속 엄마의 맛이 맛있는 맛으로 기억되어 나의 요리를 엄마의 맛으로 이끌었듯, 엄마의 요리 또한 할머니의 맛을 따라간 건지 모르겠다. 할머니와 엄마의 요리들은 어딘가 닮은 맛이었으니까.
엄마는 다정다감한 분은 아니셨다. 엄마는 대문자 T에 가까운 분이다. 엄마가 하는 말에서 엄마의 따뜻함은 느껴지지 않는 편인데, 엄마의 음식은 따뜻했다. (온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엄마의 음식에는 언제나 정성이 들어가 있었다. 대충이란 게 없다고 할까.
나는 요리를 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의 취향도 들어가겠지만, 가족들을 위해 요리하는 메뉴들이 있었다. 엄마는 잘 드시지조차 못하는데도 말이다. 그런 요리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엄마의 돌게장이었다. 흔히 간장게장을 꽃게로 만드는데, 엄마는 돌게장으로 간장게장을 담그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돌게를 어디서 사 오셨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비릿한 맛에 예민해 해산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다. 해산물을 먹기 시작한 것도 해산물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결혼한 후였다고 한다. 아버지를 위해 해산물을 요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돌게장도 담그셨다. 엄마의 돌게장은 집을 떠난 후 맛본 식당들의 간장게장보다 훨씬 짠맛이 강했다. 돌게장이 숙성되면, 식탁 위에 돌게장이 자리 잡았고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 말고는 나만 돌게장을 먹을 줄 알았다. 돌게장은 워낙 크기가 작아서 먹을 것이 많지도 않아서 나는 그 작은 돌게에서 살을 쪽쪽 빨아먹으며 작은 게딱지를 긁어 밥 위에 내장을 얹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게장을 못 드셨다. 그런데도 해마다 아버지와 나를 위해 그 작은 돌게들을 손질하고, 간장을 끓여 게장을 담그셨다. 집에서 엄마의 돌게장을 먹던 시절에는 가족을 위해 돌게장을 담근 엄마의 정성 같은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식탁 위에 게장이 있으니, 그걸 맛있게 먹었을 뿐이다. 그때는 몰랐던 그 돌게장에 담겨 있던 엄마의 마음에 이제야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남이 좋아하기에 요리하는 적이 없었다. 나의 요리에는 남에게 차려주는 요리조차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차려지곤 했다.
내 나름 마음과 정성으로 차린다고 했지만, 먹는 사람만을 생각한 더 큰 마음이 내게는 없었다.
엄마의 돌게장을 생각하며, 내가 아닌 나의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는 마음을 떠올린다.